2025년 9월 17일. 예술의 전당. 라 스칼라와 정명훈의 밤
아시안 최초, 밀라노 오페라 명가 라 스칼라의 명예지휘자가 된 정명훈이 9월 한국을 찾았다.
이번 투어는 단순한 내한 공연이 아니다. 한때 클래식 불모지라 불리던 한국은, 이제 세계 오케스트라의 무대와 자연스럽게 호흡하는 나라가 되었다. 정명훈의 이번 방문은 그 여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9월 17일, 예술의 전당. 세계 오페라의 심장이 서울에서 뛰는 순간을 나는 객석에서 지켜보았다.
정명훈이 무대에 오르자 객석은 이미 뜨거운 박수와 존경의 함성으로 그를 맞이했다.
첫 번째 곡은 오페라의 명가 다운 주세페 베르디의 <La Forza del Destino> 운명의 힘 서곡이다.
이 작품은 라 스칼라 극장과 각별한 인연을 지니고 있다. 베르디는 초연 이후 곡을 한 차례 개정했는데, 바로 그 개정판이 밀라노 라 스칼라 무대에서 올려졌다. 그때부터 이 서곡은 라 스칼라를 상징하는 대표적 레퍼토리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금관악기의 인트로는 장중하면서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차분히 관조하듯 시작되었고, 그 첫 음만으로 라 스칼라와 정명훈이 만들어갈 음악 세계가 단숨에 응축되어 전해졌다.
첫 비극의 주제는 시지프의 형벌처럼, 운명의 바위를 끊임없이 밀어 올리는 듯한 반복과 고뇌로 가득 차있다. 굴려 올려도 다시 굴러 떨어지는 바위처럼, 숙명 앞에서 반복되는 고통과 집요함이 느껴졌다.
곧이어 2주제인 목관이 등장하면서 잠시 평화와 안식을 제공한다. 하지만 끝없이 계속되는 일상의 굴레처럼
다시금 운명의 그림자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오페라에 누구보다 능한 정명훈과 라 스칼라답게, 이번 연주는 악보를 넘어선 인간의 드라마와 감정의 파고를 완벽히 직조해 냈다.
첫 무대에서 이들은, 삶의 고통과 무게와 평화가 끝없이 맞부딪고 되풀이된다는 사실을 음악으로 선언했다.
이 거대한 서사가 막을 내리자, 이번에는 개인의 서사로 시선이 옮겨간다. 교향곡 1번의 대실패로 몇 년간 작곡을 중단할 정도로 심적 고통에 시달렸던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그 어둠을 뚫고 세상에 내놓은 복귀작이 바로 피아노 협주곡 2번이었다. 절망 끝에서 다시 시작한 이 음악은, 개인적 치유의 기록이자 러시아 낭만주의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 곡은 그를 절망에서 구해낸 의사 니콜라이 달에게 바쳐진 곡이기도 하다. 대작곡가의 고통과 재기의 드라마를 펼쳐낼 주인공은 라흐마니노프의 연주의 권위자로 꼽히는 피아니스트 니콜라이 루간스키였다. 라흐마니노프를 연상케 하는 큰 키와 위엄 있는 자태로 등장한 루간스키는, 마치 작곡가의 환생을 보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
1악장 마치 운명이 문을 두드리며 다가오는듯한 , 생각보다 느긋하게 그러나 확신에 찬 8번의 타견은 이 거대한 협주곡이 어떤 궤적을 그려나갈지 어렴풋이 보였고, 그 궤적은 마치 눈앞에 선명한 선으로 그려지듯 오감으로 느껴졌다. 1악장이 끝나고 피아니스트의 손끝이 허공에서 멈추자, 공연장은 숨조차 삼킨 듯한 침묵 속에 잠겼다. 그 고요를 가르듯 불현듯 튀어나온 ‘카톡’ 알림음은, 마치 예기치 못한 사고처럼 모든 몰입을 산산이 흩뜨려 버렸다. 관객들은 예기치 못한 ‘카톡 뺑소니’에 일제히 탄식을 내뱉었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고, 안타까움과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2악장은 서정적이되 절제를 잃지 않고 흘러갔다.
이어진 3악장은 압도적이었다.
특히 오케스트라와 주고받는 멜로디는, 협주곡을 넘어 마치 하나의 교향곡처럼 완결된 형상을 이루고 있었다.
교향곡 1.5번’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았다. 3악장에서는 루간스키의 장점인 강한 타건과 그 속에서의 유연함이 돋보였다. 그의 연주는 음악이라기보다 건축 같았다. 단단한 골조와 섬세한 장식이 어우러진, 장대한 구조와 치밀한 균형이 감각적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라흐마니노프의 성공적인 재기와 한 인간의 구원의 이야기는 막을 내렸다
이전엔 개인의 구원이었다면 이제는 모든 인간이 피할 수 없는 보편적 운명과 절망을 풀어나갈 차례이다.
잠깐의 인터미션동안, 바수니스트가 비창 도입부를 나와서 무대에서 연습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모든 솔리스트는 저렇게 부담스러운 마음을 나도 알아서 웃겼다. 저런 프로들도 부담스럽구나.
마지막 작품은 차이콥스키의 마지막 교향곡, 6번 비창 교향곡이다. 1893년 초연 이후 불과 아홉 날 만에 그는 세상을 떠났다. 콜레라로 인한 급작스러운 죽음이라는 설도 있지만, 자살이었다는 추측, 동성애와 관련한 비극적 맥락, 후원자 폰 메크 부인과의 결별 등 수많은 논란과 스캔들이 얽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화를 제쳐 두더라도, 비창은 그 자체로 충분히 깊이 들여다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기존 교향곡의 형식을 완전히 뒤엎은, 그 과감한 실험을 나는 아직 어떻게 불러야 할지 답을 찾지 못했다. 그것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비극적 고백일까, 아니면 새로운 교향곡 미학을 향한 도전일까. 나는 아직도 확신하지 못한다. 오늘만큼은 해석을 내려놓고, 정명훈이 전하는 음악을 마음 깊숙이 느껴보려 했다.
1악장, 콘트라베이스의 선율 위로 바순이 등장하자 다가오는 절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러나 정명훈은 절제하고 또 절제했다. 아직은 아니라고 말하듯이.
일흔을 넘긴 정명훈이 이 무대에서 비창을 지휘하는, 그의 눈에 이 곡은 어떤 의미일까. 삶의 황혼에 선 지휘자가 바라보는 차이코프스키 마지막 교향곡 그 깊은 내면이 궁금해졌다.
절제된 1악장이 끝나고, 2악장이 시작되기 전 부터 정명훈은 이미 홀로 왈츠의 흐름을 타고 있는 듯했다. 그의 몸짓에는 음악이 시작되기 전부터 리듬이 흘렀고, 그것은 우아하면서도 애수에 젖어 있었다.
행진곡풍의 3악장은 숨겨왔던 절정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끝맺자마자 몇 박수 소리가 객석에서 터져 나왔다가 머뭇거렸는데, 정명훈이 관객을 향해 가볍게 손짓하자 공연장은 곧 뜨거운 박수와 환호로 가득 찼다. 무대와 객석이 함께 만든 작은 해프닝이자, 유머로 한껏 공기가 유순해진 순간이었다. 혹여 무게를 잃는 건 아닐까 걱정되었지만, 정명훈은 주저하지 않았다. 4악장의 도입부에 다시 비극의 공기를 불어넣어야 함에도 그는 박수를 청했다. 그것은 음악과 자신에 대한 배포, 그리고 흔들림 없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4악장은 휘몰아치는 슬픔과 감정의 억겁이 흘러내렸다. 마지막 음을 토해낸 뒤 정명훈은 한동안 손을 허공에서 내리지 않았다. 관객들은 숨을 죽였고, 모두가 차이코프스키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했다. 무대가 끝나고, 그는 ‘감사합니다’라는 한마디와 함께 객석을 향해 인사하며 연주를 마무리했다.
정명훈에게 한국은 늘 돌아올 고향이었고, 한국인에게 그는 자랑스러운 이름이었다. 그의 존재는 곧 한국 클래식 음악사의 한 장이자, 우리 모두의 자부심이다.
나는 정명훈의 뒷모습에서 장군의 그림자를 보았다. 세월이 그의 어깨에 고요히 내려앉았지만, 그의 영혼만큼은 여전히 생명력이 넘쳤고 단단히 선 기개와 무대를 이끌어가는 위엄은 장군의 형상을 떠올리게 했다. 외국인 연주자들을 이끄는 그의 모습은 당당한 한국인의 얼굴이었고, 그 자리까지 오르기 위해 겪었을 수많은 인고의 세월과 타지에서의 고독이 떠올라 자부심마저 느껴졌다. 그는 군대를 지휘하는 장군처럼 감정에 휘말리지도, 격정에 휩쓸리지도 않았다. 언제나 차분히, 철저히 계산하며 음악의 클라이맥스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무엇을 향해 달려야 할지 과녁을 분명히 겨냥한 연주였다. 그 마지막까지 흔들림 없는 지휘 속에서, 나는 한 예술가의 생애와 한 민족의 자부심을 함께 보았다. 앞으로 라 스칼라에서의 그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시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