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락의 거세

숏폼의 시대, 클래식을 듣다.

by 여자 말러리안

우리는 숏폼의 시대에 살고 있다.

베토벤이 지금 태어났다면 '운명' 교향곡은 도입부 네 마디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편집당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시대에 1시간이 훌쩍 넘는 교향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는다는 건, 누군가에겐 고문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른다. 클래식 입문자들이 토로하는 고충은 단순하다.


“너무 지루해요...”


숏폼을 보는 것은 에베레스트 정상에 헬기를 타고 정상에 ‘뚝’하고 떨어지는 것과 같다.

정상의 정경은 화려하겠지만 거기에는 '맥락(context)'이 없다. 산소 부족으로 헐떡이던 폐의 고통도, 터질 듯한 허벅지의 근육통 그리고 그 모든 걸 이겨내고 정상에 올랐을 때의 쾌감까지 말이다.

'맥락이 거세된 감동'은 감동이 아니라 자극일 뿐이기 때문이다.


클래식 음악, 특히 말러와 같은 대곡들은 철저히 ‘맥락’의 예술이다.

1악장의 처절한 비극과 2악장의 랜들러 풍의 춤곡, 3악장 냉소와 덧없는 방황과 같은 빌드업 (Build-up)이 없다면, 마지막 악장에서 터져 나오는 합창은 결코 ‘부활’이나 ‘구원’으로 느껴질 수 없다. 앞선 고통과 지루함이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가 되어주어야만, 결론이라는 화살이 청중의 심장에 깊숙이 박힐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클래식의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게 되었다는 건, 어쩌면 우리 인생의 소중한 ‘맥락(context)’들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는 슬픈 신호일지도 모른다.


인생은 결코 10초짜리 하이라이트 영상들의 집합이 아니다. 지루한 출근, 지지부진한 전개, 그리고 고통스러운 인내의 시간이 서사를 이루어 결론으로 나아가는 '롱폼(Long-form)'의 서사시다. 클래식 음악에서 주제가 변형되고 부딪히는 '발전부'가 가장 고통스럽고 지루하게 느껴지듯, 우리 삶의 진정한 성장은 늘 그 지루함의 한복판에서 일어난다. 지루함을 견디는 힘은 곧 삶을 사랑하는 힘이다. 맥락을 잃어버린 시대, 나는 여전히 '지루한' 클래식의 구원을 믿는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