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디로 흘러가는가

나이 서른, 갈림길에 서다 #0

by 이든

2020년 1월 1일. 독일 에센에서 나는 한국보다 조금 느리게 서른을 맞았다. 새해를 축하하는 폭죽 소리가 마치 총소리처럼 들려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던 서른의 나. 바깥에서는 새로운 해를 기대하는 희망찬 환호 소리가 들끓는데, 나는 혼자 어두운 방 안에서 두려움에 떨었다. 내 서른의 시작은 우울에 잡아먹힌 채였다.


2019년 1월, 처음 프랑크푸르트로 출국하고 나서는 모든 게 희망적이었다. 뭐든 다 잘될 것만 같았고, 뭐든 다 내 편일 것만 같았다. 평생을 대도시에서만 살아온 나에게 프랑크푸르트는 아주 살기 좋은 도시였다. 어학원 수업이 끝난 뒤 친구들과 펍에 가서 맥주를 마시기도 하고, 한인 포차를 찾아 소주를 마시기도 했다. 처음 맛보는 독립을 해외에서 한다는 생각에 마냥 들떠 피곤하지도 않았다. 외국인이 많은 도시라 눈에 띄는 차별도 없었다. 아니,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몰랐던 것 같다. 아직은 독일어도 서툴렀고, 눈을 돌리는 곳마다 새로운 것들이 가득해 설레기만 했으니까.


늘 남들보다 운이 좋았던 나는 그 운이 이번에도 내게 따르리라 믿었다. 특별하게 노력을 더 쏟지 않고 하던 대로만 해도 다 이루어지리라 오만한 착각을 했다. 나에게는 재능이 있으니까. 하지만 얄팍한 재능 하나만 가지고 살아남기에 세상은 너무나 컸다. 그해 여름, 나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커다란 벽에 부딪혔다.


한국이 그렇듯 독일의 입시도 엄청나게 바늘구멍이었다. 특히나 내가 준비하던 음대 입시는 더 그랬다. 만약 백인 학생이 1만큼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동양인은 10의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만 눈에 띄었다. 어떤 대학은 출강하는 교수의 제자가 이미 합격자로 내정되어 있기도 했다. 그들 가운데 나는 특출 나게 어리고 예쁘지도 않았고, 가진 거라곤 남들보다 높은 음역대와 목소리뿐이었다. 그마저도 늦게 시작해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인 부분이 많았다.


한국에서부터 쭉 레슨을 맡아주던 선생님은 전 세계로 공연을 다니는 오페라 가수였지만 불행히도 입시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내 목소리와 잘 어울리는 곡을 찾아주고 섬세하게 다듬어주시기는 했지만, 어떤 레퍼토리가 입시에서 경쟁력이 있을지는 나도 선생님도 잘 몰랐다. 고심해서 고른 아리아와 가곡을 들고 첫 시험장에 갔던 날 나는 직감했다. 아, 이걸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난 떨어지기만 하겠구나.


예상대로 나는 그 해 여름에 있던 시험에서 전부 낙방했다. 하지만 아직 희망의 끈은 놓지 않았다. 실력은 내가 보기에도 쑥쑥 자라는 나무처럼 나아지고 있었고, 독일어도 이제 가벼운 스몰 토크 정도는 가능할 정도가 되었으니까. 첫 술에 배부를 수 없으니 경험을 바탕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리고 그즈음 선생님이 도르트문트의 한 극장에 전속으로 계약하게 되며 이사가 결정되었다. 이게 내 세 번째 갈림길이었다.



매일같이 걸어 다니던 Zeil거리 부근 광장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