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

나이 서른, 갈림길에 서다 #1

by 이든

인생을 살아오며 수많은 갈림길을 마주했지만 그중 첫 번째는 성악을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당시 문예창작과에 재학 중이던 나는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던 음악에 대한 열망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노래하는 게 즐거웠고, 고등학생 시절 학원에서 친구들과 음악을 만들고 부르던 시절이 그리웠다. 그래서 덜컥 실용음악과 복수전공을 시작했다. 학과 내의 첫 복수전공 학생이었기에 교수님들도 나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잘 모르고 학생들과 어울리기도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좋았다. 본 전공 수업은 빼먹어도 실용음악과 수업은 꼬박꼬박 출석하고 과제도 성실히 했다.


처음엔 멋모르고 합주며 이것저것 들어댔지만 역시 쉽지 않았다. 이미 입학 초기부터 함께 하는 무리가 정해진 그들 사이를 고작 복수 전공생인 내가 파고들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이론수업만 듣기는 싫었다. 그런 걸 원해서 복수전공을 시작한 게 아니니까. 그러니 이것저것 재고 빼고 나면 내가 들을 수 있는 강의는 막상 몇 개 남지 않았다. 담당 교수님께 전공 레슨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일주일에 두 번이 고작이라 그걸로는 부족했다. 조금 더 다양한 강의를 듣고 다양한 음악을 듣고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시선을 살짝 비틀었다. 실용음악과뿐만 아니라 음대 전체로 눈을 돌린 것이다. 4학년이 시작된 뒤 나는 합주 대신 합창 수업을 선택하고, 재즈 대신 뮤지컬 관련 수업을 들었다. 그즈음 좋아하는 가수 덕분에 한창 서울로 뮤지컬을 보러 다니던 때라 관심이 조금 동한 탓도 있었다. 2학점짜리 강의를 하나 더 들으면 좋을 것 같아 뭘 넣으면 좋을지 고민하다 '이태리어 딕션'이라는 강의를 선택했다. 이때부터 내 인생의 방향이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가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뮤지컬에 한창 흥미를 붙이고 있었고, 그에 따라 발성법도 조금씩 바뀌었다. 그리고 합창 강의를 하시던 교수님이 그런 나를 알아보고 이태리어 딕션 강의 교수님께 내 얘기를 하셨다. 복수 전공하는 학생이 있는데, 가진 게 괜찮아 보이니 수업 시간에 한번 봐 달라고. 그렇게 교수님 눈에 띈 나는 그 해 여름방학부터 성악을 시작했다. 취미든 업이든 밴드 음악을 하고 살 거라 생각했던 나에겐 생각지도 못하던 일이었다. 이게 내 인생의 첫 번째 갈림길이 되었다.


성악을 배우고부터는 실용음악을 하던 시절보다 더 승승장구였다. 연습을 하는 만큼 실력이 쑥쑥 늘었고, 뭘 가르쳐주어도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처음 접해보는 이태리어와 독일어도 재밌었다. 실용음악을 할 때처럼 음역대가 높아 고전하는 일도 없었다. 고작 몇 개월 만에 다른 학생들보다 고음도 척척 내고 스케일도 척척 해내는 나를 선생님은 신기하고 기특하게 여겼다. 그럴수록 나는 자신감이 붙어 더 열심히 했다. 하루가 다르게 나아지는 내 모습이 뿌듯했다. 마치 내가 특별한 뭐라도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처음 나가본 대형 콩쿠르에서 나는 현실의 쓴맛을 봤다. 상금이 꽤 큰 콩쿠르인지라 지방에서 열림에도 불구하고 전 지역의 참가자가 몰렸다. 대학일반부 통합이었기에 이미 유학까지 다녀온 사람도 더러 있었다. 각자에게 짧게 주어지는 목 푸는 시간에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움츠러들었다. 자신 없는 부분을 연습하며 목을 풀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같이 간 후배와 반주자 선생님께는 컨디션이 좋지 않다며 애써 웃어 보였지만 그들도 그게 아니란 건 다 알았으리라. 그날 결과는 당연히 엉망이었다. 얄팍한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무수하게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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