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에 찾아온 인연

나이 서른, 갈림길에 서다 #2

by 이든

현실의 쓴맛을 보고 난 뒤에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더욱 어려운 곡들을 연습했고, 요령 부리던 버릇을 버렸다. 한 해에 한두 명만 오를 수 있는 협연 무대도 복수 전공생 신분으로 턱턱 합격하고, 졸업연주까지 무사히 마쳤다. 학교에서 한 명만 대표로 내보낼 수 있는 신인음악회는 전부 내 차지였다. 이 세상이 전부 다 내 위주로 돌아갈 것만 같은 착각에 빠졌다. 오페라의 유령 속 크리스틴처럼, 누군가 내 진가를 알아봐 주길 꿈꿨다.


졸업 후에는 바로 동대학원에 진학했다. 졸업과 동시에 유학길에 오르려는 나를 더 가르쳐서 보내겠다는 담당 선생님의 의견이 컸다. 나 역시 아직은 불안했고, 석사는 따 두면 좋으니 그 의견에 동의했다. 한국에서 철저하게 준비하고 나가 입시기간을 줄이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그리 현명하지만은 않은 선택이었다.


대학원을 다니고 레슨을 받으면서 혼자 독일어를 공부하다가, 한계에 부딪혀 독일어 과외를 구했다. 독일에서 오래 살았던 피아노 전공 선생님이었는데, 남편이 독일에서 활동 중인 오페라 가수라고 했다. 궁금한 게 많았던 나는 독일어 선생님을 통해 그곳에서의 생활과 음대 입시에 대해 많은 것을 들었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은 귀찮은 내색 없이 친절히 대답해 주셨다. 지금 생각해도 참 감사한 분이다.


그렇게 레슨과 과외를 병행하며 대학원을 다니던 어느 날, 오스트리아에 있는 모차르테움 음대에서 여름방학마다 진행하는 아카데미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비용이 제법 들기는 하지만, 참가하면 디플롬도 무조건 나오니 나쁘지 않았다. 인터넷을 수소문해 연계해주는 매니지먼트와 계약하고, 동영상을 보내 간단한 오디션을 보았다. 해외라고는 가까운 일본에 가본 게 전부였던 터라 마냥 설렜다. 그곳에서 나의 팬텀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환상에 사로잡혔다.


아카데미 기간 동안 레슨을 해주실 현지 교수님을 배정받을 즈음, 나는 한국에서 레슨 해주는 선생님에게 차츰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 단계 더 도약할 준비가 된 내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한다고 생각한 탓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다른 교수님께서 봐주시기는 했지만, 그분은 바빠도 너무 바쁘셨다. 다들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나를 방치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정도면 됐지 뭐, 하고. 아무것도 모르던 백치를 데리고 끌어올려 준 고마움은 다 잊어버리고 반항심이 피어올랐다. 이십 대 중후반이라도 생각은 여전히 어렸다.


그리고 정말 귀신같은 타이밍으로 독일어 선생님께서 한국에 남편이 잠시 들어왔으니 노래를 들려줘 보겠느냐고 제안했다. 당연히 감사하게 수락했고, 약속을 잡아 아카데미에 가져가려고 준비하던 곡들을 들려드렸다. (이런 걸 독일에서 Vorspiel이라고 한다) 내 노래를 들은 남편분의 반응은 생각보다 더 긍정적이었다.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없으면 포기하라고 쓴소리를 할 마음으로 오셨다는데, 자신이 한번 가르쳐보고 싶다는 말까지 덧붙었다. 약 3년간 같은 선생님께만 배워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나에겐 절호의 기회였다. 그렇게 독일어 선생님의 남편 분은 내 두 번째 선생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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