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밖의 세상

나이 서른, 갈림길에 서다 #3

by 이든

테너로 활동하고 있던 두 번째 선생님은 내가 답답해했던 부분들을 가볍게 해소해주었다. 두루뭉술하게 설명하지 않고 어떤 부분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어떤 방식으로 고치면 되는지 명확하게 짚어주었다. 하지만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이미 학교에서 사사받고 있는 선생님이 있는데, 외부에서 다른 사람에게 레슨 받는다는 사실이 교수님 귀에 들어가면 뒤집어질 일이었다. 소문이라도 잘못 났다가는 내가 살던 지방에서의 음악 활동은 그냥 못하는 거라고 생각해야 했다.


하지만 노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학교에서 레슨을 받던 도중 선생님께서 심각하게 물었다. 요즘 소리가 많이 바뀐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있느냐고. 당연히 나는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 곧 아카데미를 이수하러 가니 혼자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중이라고 둘러댔다. 그리고 돌아오는 대답은 '그러지 말라'였다. 학교 선생님은 내가 소리를 가볍고 예쁘게 내길 원했고, 테너 선생님은 단단하고 힘 있게 내길 원했다. 그 간극 사이에서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오히려 헷갈리기만 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다 빈 손이 되어버린 꼴이었다.


그렇게 갈팡질팡한 마음을 안고 2018년 7월에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로 향했다. 밤 비행기를 타고 터키를 경유해서 가는 노선이었다. 잘츠부르크에 도착해 아카데미 기간 동안 도와줄 매니저님을 만나 숙소를 안내받았다. 전형적인 유럽의 1인실 기숙사였고, 부엌과 식당은 공용이었다. 여름이라 많이 덥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건조해서 그런지 방에 있으면 나름 바람도 선선히 불고 시원했다. 짐을 풀어둔 뒤 간단하게 저녁을 챙겨 먹고 레슨에 필요한 악보를 정리했다. 이곳에서의 레슨은 어떻게 진행될지 설레는 마음에 잠도 뒤척였다.


본격적인 아카데미가 시작되기 전 클래스 미팅이 있던 다음날, 그곳에는 동양인이 딱 세 명 있었다. 그마저도 둘은 같이 온 홍콩 사람이라 한국인은 나 하나뿐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독일어 통역을 도와줄 친구를 구했던 게 다행이었다. (교수님께서 영어로도 레슨을 진행해주셨지만 그래도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같은 클래스에 있던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은 다들 참 다정하고 친절했다. 아카데미가 끝나갈 때쯤 내 나이를 듣고 화들짝 놀란 것을 보면 아마 나를 한참은 어리게 본 듯하다.


우물 밖의 세상은 정말 대단했다. 공개 레슨이 처음이었던 나는 내 레슨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사람의 레슨을 청강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이래서 마스터 클래스를 듣는구나. 이래서 유학을 나오는구나. 고작 한 평의 레슨실이 전부였던 내게 아카데미는 신세계를 선사했다. 너무 재밌었고, 또 도움도 많이 되었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고 싶은 욕구가 들끓었다. 세상이 나에게 오라고 온몸으로 소리 지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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