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서른, 갈림길에 서다 #4
약 2주간의 아카데미 기간은 정말 행복했다. 레슨이 없는 날은 곳곳을 여행하거나 공연을 관람하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에 있는 마트에서 납작 복숭아도 실컷 사 먹었다. 기숙사에 사는 고양이인 '데이지'가 나를 특히 잘 따라서, 바깥 잔디밭으로 난 기다란 창문을 열어두면 내 방에 들어와 침대에서 같이 낮잠을 자곤 했다. 베르디 다음으로 모차르트를 가장 좋아했던 나에게 잘츠부르크는 천국이었다. 비록 모차르트는 그곳을 떠나 빈에 남고 싶어 했지만,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그리고 데이지 때문에라도 꼭 모차르테움에 입학해 이 기숙사에서 지내고 싶었다.
교수님의 섬세한 티칭도 정말 마음에 들었던 나는 통역을 도와주던 친구에게 부탁해 교수님과의 면담을 잡았다. (통역 친구에겐 보상으로 피자를 사 주었다) 면담에서는 지금 한국에서 유학 준비를 하고 있는데, 후에 이곳에서 제자로 받아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솔직히 말을 꺼내면서도 상당히 회의적이었다. 특히나 유럽은 학생의 나이가 어릴수록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만 나이로도 이십 대 중반을 훌쩍 넘긴 나는 꽤 많이 불리했다. 그래서 얼굴이라도 한번 더 익혀 두려는 심산이었다. 혹시나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된다면, 희미하게나마 기억해 달라고.
그러나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승낙과 함께 구체적인 방향까지 제시해준 것이다. 독일어 공부는 어떻게 하면 좋은지, 입시는 어떤 방향으로 준비하면 좋은지까지 알려주시는 교수님에게 나는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교수님께서는 내 나이가 조금 걸린다고 하셨지만, 그만큼 실력을 갖추면 될 일이고 충분히 가능할 거라며 희망적인 말을 해주셨다. 심지어 메일로 다시 돌아올 때까지 연습하면 좋을 곡들까지 리스트를 만들어 보내 주셨다. 그날 면담하며 적었던 메모를 보며 기숙사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진흙 속에서 발견된 진주처럼 선택받은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즐거웠던 아카데미 기간이 끝난 뒤, 한국으로 돌아와 이 사실을 테너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나는 뜻밖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테너 선생님께서 자신이 레슨을 도와줄 테니 프랑크푸르트로 오지 않겠냐고 제안한 것이다. 갑작스레 세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선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학교 선배를 소개받아 유학을 시작하느냐, 테너 선생님과 함께 프랑크푸르트로 가느냐, 지금 당장 잘츠부르크로 가느냐. 그 순간의 선택이 미래를 좌우할 것임을 직감했다.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고민이었다.
그리고 프롤로그에서 보았듯, 나는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것을 택했다. 물론 가는 과정이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2학기가 시작되기 전 대뜸 휴학계를 낸 나에게 학과장 교수님은 화를 내셨고, 잘츠부르크의 교수님은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많이 아쉬워하셨다. 이 결정을 이제와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 만약 다른 선택을 했다면 내 모습도 지금과는 많이 달라져 있을지 종종 궁금하기는 하다. 어쨌든 나는 그때의 결정에 스스로 책임지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