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차,
오늘은 밴쿠버에서 밴프, 밸마운트를 찍고 삼각구도로 다시 밴쿠버로 돌아오는 전체 일정에서 첫날이다. 캐나다 밴쿠버로 새롭게 취항한 티웨이 항공의 덕인지 탓인지 저가라서 관광객이 한꺼번에 몰린 여행이다. 어제는 54명의 투어라는데 깜짝 놀랐는데 아침에 모여 보니 버스 안에 좌석표가 붙었다. 의례 있기 마련인 좌석 쟁탈전 방지 조치라니 두 번째로 놀란다. 역시 세계적인 한인투어다. 버스 뒤편 좌석 배정은 맘에 들지 않지만 내일이면 3칸씩 이동해 우리가 제일 앞으로 간다는 설명은 거의 아름답기까지 하다.
두 가지 놀란 사실을 제외하고 오늘의 일정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름도 생소한 레블스토크까지 이동하고 숙소에 투숙하는 것이다. 자연과 소통하고 교감하는 여행의 특징이긴 하지만 조금 길게 요약하면, 가다 (점심) 먹고, 가다 (사진) 찍고, 가다 (코) 자고 하는 코스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브라이덜 폭포 앞에 내렸다. 약간의 등산 후 누가 봐도 신부의 면사포 같은 폭포가 나타났다. 사진은 줄을 서야 제 맛이다. 자고로 여러 관광객의 검증을 거쳐 가장 사진이 멋진 곳이 포토라인으로 정해지는 법이니까. 친구와 처음으로 얼굴을 들이밀고 폭포 앞에서 셀카도 찍어 본다.
골드러시의 마을 호프(Hope)를 지나 메릿(Merritt)이라는 곳에 내렸다. 중식당, Bamboo Panda Canada에서 점심을 먹는다. 10명이 둘러앉은 원탁에서 서로 소개도 하고 출신지역도 공개해 본다. 준비 없이 출발해 준비 없이 시작된 여행의 첫날이라선지 낯선 이들과의 원탁 식사도 생뚱맞다. 벌써 하루의 반 토막이 지나가고 있다.
식사 후 밖으로 나왔더니 탁 트인 도로가 멀리 이어진다. 하늘 어디 한 곳도 사각형의 건물이 가리지 않은 길, 그 위에 섰다. 드디어 여긴 캐나다라는 생각이 퍼뜩 든다. 한창 물 폭탄을 때리던 나라에서 도망 나온 망명객이어선지 차마 먼 이국이라 해도 양심상 맑은 하늘을 우러를 수 없다. 일단 사진에는 담는다.
어느 이름 모를 주유소에선 화장실도 가고 물도 사고, 살몽암(Salmon Arm)이란 동네에서 드디어 지루한 잠에서 깼다. 과일을 살 수 있다는 말에 내려 DEMILLE’S FARM MARKET이란 데 들러 체리와 오이를 샀다. 먹기 쉽고 달콤한 체리는 물론 나의 선택이다. 시선을 돌려보니 친구는 손바닥 반만 한 짧은 오이를 한 자루 담아 왔다. 말리지 못했다. ‘그러니까 오이는..... 그냥 시원한 맛에 등산 갈 때나 먹는 채소류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말하지 않았다. 친구의 혜안으로 산 오이는 여행 내내 시원한 간식을 담당했음을 미리 밝힌다. 말 안 하길 잘했다.
드디어 레블스토크, 메리엇 페어필드 호텔에 도착했다. 뭐 딱히 한 것 없이 오늘의 일정은 끝이 났다. 가이드가 바로 옆 라마다 호텔보다 훨씬 좋은 데라고 해선지 기분이 좋다. 무엇이든 의심 없이 믿는 자, 행복하다. 어쨌든 호텔 복도는 양 끝에 유리 통창으로 마감해서 자연을 한껏 받아들인 것이 밝아서 좋다.
창 밖 풍광에 이끌려 친구와 산책을 나왔다. 보통의 나의 여행은 함께 할 친구를 정하고 계획을 짜는 편이다. 누구든 보편적인 순서다. 그럼에도 여행이 너무 고플 때 나는 여행을 정하고 친구를 모집하기도 한다. 그렇게 뭉친 우리인지라 서로의 여행스타일을 잘 모른다. 친한 친구 무리 중 한 명이라 해도 개인적으로 함께 떠난 해외여행은 처음인지라 어색 아닌, 어색 같은, 그런 어색 비스무리한 사이다.
친구는 대학 1학년 첫날, 학과 총대를 뽑는 시간, 제일 먼저 손을 들고 자원했던 친구다. 그날 이후 울 친구의 손은 자주 질문하고, 자주 이의를 제기하고, 뭔가 의견을 모을 때도 자주 사용됐었다. 그만큼 거침없는 그녀의 성격을 말해 준다. 특히 술 취한 친구를 위해 택시를 잡을 때도 항상 과감하게 손을 들어 사용하곤 했다. 그러니까 대체로 거침이 많은 나로서는 어찌 보면 잘 어울리기 어려운 친구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밴프는 친구와 나를 함께 이끌었다.
숙소 주변을 한 바퀴 돌고 들어와도 여전히 해가 지지 않았다. 거기다 깨끗한 숙소까지 분위기에 한껏 취해 우리는 오늘 저녁 가방 안 소주를 털기로 했다. 출국 전 뭔가를 잔뜩 준비하려는 친구를 말렸건만 친구의 가방에서는 볶음김치와 진미채, 조미김과 마른 멸치, 누룽지가 차례로 나왔다. 급기야 물을 데울 포트까지. 그리고 교회 집사님인 친구 손에 마지막으로 들려 나온 소주는 생각보다 용량이 제법 큰 병이었다. 집에 두면 아무도 안 먹을 같아서......라는 말을 덧붙인다.
아무래도 오늘 밤 우리는 친구가 된 지 30여 년 만에 가장 친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