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 찾기

by 오이향

제자리란 어딘가?


사람이든 물건이든 있어야 마땅한 자리다.

사람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면 아무리 능력 있어도 비난을 면치 못하고, 물건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면 한마디로 엉망진창이다.

정리라면 일가견이 있는 나다. 그러나 신중을 기하느라 느리다.

화장대 서랍 안은 미궁 같아서 한 칸 정리에 반나절이다. 에너지 소비가 이만저만 아니다.


그래서 작전을 바꿨다.

차라리 자리를 찾지 못한 물건은 하나씩 버리기로 했다.

하루에 한 가지 버리기

좋은 다짐이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스스로 한 약속이라 쉽게 지키는 방법도 있다.

책상 위를 떠도는 휴지라도 뭉쳐 쓰레기통으로 날린다.


여러 가지 노력에도 여의치 않다.

그렇다면 이것은 나의 탓인가, 누구의 탓인가

하는 철학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과연 그 무엇이 됐던 제자리라는 것은 존재하는가?


책상 위를 본다.

얼마 전 사진을 옮기려고 노트북 옆에 가져다 놓은 외장하드 2개, 아직 옮기지 못했다.

사탕 좋아하지 않는데, 누군가 한 움큼 쥐어 준 콩알만 한 사탕들, 작아서 좋긴 한데 까먹을 적당한 시기만 보고 있다.

독서통신과정 참여로 얻은 공짜 책, 매우 물질적인 나에게 너무 정신적인 나를 찾으라 말하는 책이다. 읽다 말았다.

책 밑엔 얼마 전 다녀온 힐마 아프 클린드의 전시회에서 받아 온 리플릿이 깔려 있다. 다녀와 휘리릭 버리지 못한 건 거기 담긴 그녀의 스토리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찌 보면 모두 필요에 따르거나 내 감정선에 따른 적절한 배치다. 다만 한발 떨어져 조망해 보면 한마디로 정신이 없다.

이건 배치의 원칙이 없어서다. 우리 눈은 일률적이거나 반복적이고 모두 단순화되어야 편안하다.

책은 책장에 꽂히고, 사탕들은 그릇에 담겨 거실 테이블 위로, 자료를 품은 외장하드는 어느 서랍 안 보이지 않는 곳에, 힐마 아프 클린트의 자료는 다녀왔으면 버려야 마땅하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배치의 원칙은 누가 정하는가?

물건의 제자리를 걱정하는 나는 또 제자리에 있는가?

질문들이 산으로 간다.


명절을 앞두고 퇴근하던 어제

직원들과 '안녕한 명절'을 기원하며 악수를 하고 나왔다. 어색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는 이제 덕담을 해야 하는 자리로 밀려나 있음을 새삼 느낀다.

제자리 찾기 참 힘들다.


긴 휴일의 첫날, 눈을 뜨니 비가 오고 있다. 어딘가를 반복적으로 때리는 빗방울 소리로 안다.

직장인이라면 어딘가로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이런 날, 비에 갇힌 이 안온함을 안다.

그제야 나는 내 방안 이 온갖 제자리를 찾지 못한 물건들과 함께 있음을 느낀다.


브런치는 참 친절하다. 요 얼마간 글과 좀 먼 생활을 했더니

글쓰기는 운동과 같다며 하루에 한 문장이라도 쓰는 근육을 키우라는 공지를 보냈다. 뭐든 근육이 문제다.

친절한 권유도 있고 하여 노트북을 켰더니 그 간 허술해진 보안 업데이트로 바쁘다.

이 놈도 며칠 세상과 접속을 못해선지 보안 근육이 빠진 모양이다.


내 공간에의 자각과 그간의 노력이 떠올라 몇 자 적어본다.

잠이 덜 깨 선지 내 머릿속은 뭔가 의도치 않게 4차원으로 가는 것 같다.

차라리 이 시간에 정리를 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는 매우 현실적인 결론을 내며 마무리한다.

내 글쓰기 잔근육이 털끝만큼이라도 붙었길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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