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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영 Mar 29. 2019

살 빼려고 운동하는 건 아닙니다만

 10여 년간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다. 종목만 바뀌었을 뿐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이는 중이다. 한 가지 운동을 계속했다면 지금쯤 아마추어 선수가 됐을 텐데, 이상하게 어떤 운동을 만나는 것도, 또 헤어지는 것도 운명처럼 왔다 갔다. 사람과의 인연처럼 운동도 연이 닿는 시기가 있는 거였다.


 내 인생을 통틀어 살을 빼기 위해 운동해본 적이라곤 대학교 1학년 시절 단 몇 개월, 헬스장에 다녔던 게 전부다. 3개월쯤 다녔을까? 그때야 말로 이를 악물고 열심히 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 후로 '헬스'라는 단어만 들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걸 보면 썩 즐거운 경험은 아니었나 보다. 물론 짧은 기간 동안 체중을 상당히 감량할 수 있었지만.




 나는 살 빼려고 운동하지 않는다. 음식으로 하는 다이어트도 해본 적이 없다. 내 의지가 얼마나 약한지 잘 안다. 그래서 그만 두면 요요라는 후폭풍이 반드시 올 걸 아니까 유행하는 온갖 다이어트에 관심 가져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로 운동을 하느냐. 당연히 '재미' 때문이다. 재밌으니까. 지금까지 짧거나, 혹은 길게 나와 만난 운동들의 매력을 살펴보자면 이렇다.


 락 클라이밍 - 반백수 시절, "너랑 잘 어울릴 듯한 운동을 내가 기사로 봤는데"라고 시작하는 친구의 말에 다니기 시작했다. 벽에 붙어보기 전까지 얕봤다가 처음 홀드를 잡고, '어? 어? 내 다리가 왜 덜덜 떨리지? 고작 돌 두 개를 잡고 있을 뿐인데 팔은 끊어질 것 같아!' 하며 보통이 아니란 걸 깨닫고는 영영 발길을 끊거나 아주 깊게 빠지는 운동으로 명성이 높다. 나 같은 경우는 단연 후자였다. 한량처럼 살던 시기라 한 번 암장에 가면 죽치고 몇 시간을 보냈다. 그의 매력은 잡념 할 새 없이 고도로 집중하게 만든다는 것. 한눈팔 틈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이때 처음으로 근육과 대화하며 내 근육의 쓰임을 느끼기 시작했다. 2년 여의 시간 동안 뜨겁게 사랑했지만 직장이 생기고 연일 이어지는 야근으로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어 눈물겨운 이별을 했다.


 농구 - '역시 혼자가 최고!' 라 생각했던 내게 팀워크의 묘미를 알려준 운동. 당시 다니고 있던 회사 동료가 설립한 여성 농구 동호회 '미엔(미녀들의 엔비에이)'에 입동해 8개월간 격주 주말마다 만났다. 우리에겐 팀워크가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실력이 없어 단 한 번도 경기에서 이긴 적이 없다. 승리는 쉽게 얻을 수 없다는 것을 통렬히 깨달으며 퇴사와 동시에 자연스레 이별했다.


 로드 싸이클링 -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처음 만났다. 좋은 계절이었고, 운동 동호회 중 활동이 가장 활발해 보여 입동했다. 처음 나간 모임에 접이식 미니벨로로 로드바이크를 따라 얼떨결에 가평인가 청평인가 하는 곳까지 다녀오며, 남들이 한 번 굴릴 때 나는 두 번을 굴리느라 애를 먹고는 곧 비앙키를 뽑게 되는데...... 1년 동안 간혹 탈뿐, 주로 좁은 집에 방치되어 있어 1년을 더 가지고 있다 팔아버렸다. 하지만 간혹 탔을 때, 내 힘으로 낼 수 있는 최고 속력으로 갈 수 있는 최장 거리를 여행할 수 있다는 매력에 매료되곤 했다.


  배드민턴 - 이 역시 회사 동호회로 만났다. 악기를 배운다면 드럼을 배워보고 싶을 만큼 무언가 휘둘러 때리고 싶은 욕구가 있다. 배드민턴도 때릴 때 쾌감을 느낄 수 있어 매력적인 운동이었다. 다만 모임이 점차 음주로 퇴색되어 몇 개월 만에 발을 빼고 말았다.


 수영 - 재작년인가? 1년 정도 회사 앞 올림픽수영장에 다니며 배워보려 노력했다. 일단 물에 대한 실체 없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싶었다. 그리고 단 한 가지, '고개 내밀고 숨 쉬며 수영하기'를 습득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곳의 긴 행렬에서는 음파음파조차 정확하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없어 그만두고 말았다. 언젠가 되겠지, 뭐.


 러닝 - 부부는 사랑으로 사는 게 아니라 우정으로 산다 했던가. 이 친구와 나도 우정으로 만나고 있다. 이젠 제법 오랜 벗이다. 막 찐하게 사랑하는 건 아니지만 오래 안 보면 허전하고 좋은 곳에 가면 먼저 생각이 난다. 익숙한 길에서 함께 계절을 느끼고 싶고 낯선 길을 탐험하며 새로운 장소를 함께 발견하고 싶다. 그렇게 벌써 6년이나 만나고 있다. 단언컨대 의지만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운동이라 할 수 있겠다.


 요가 - 1년 전, 여행 중 운명처럼 만났다. 발리에서 생긴 일이다. 그날의 공기와 습도가 나를 그에게로 끌어당겼다. 첫 만남에서 우리는 불같이 타올랐는데, 우리를 식혀주던 이른 아침의 바람과 들려오던 숲의 소리를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분명 우리를 괴롭히던 모기와 개미가 있었는데 어째서 아름다운 기억만 선명하게 남아있는 걸까. 때때로 락 클라이밍과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그렇지만 분명히 다른 매력으로 나를 사로잡는 요가. 현재 진행형이라 그런지 이 모든 운동의 완결판이라고 느껴진다.


 서핑 - 5년쯤 전인가. 처음 만났을 땐 콧방귀가 나왔다. 그날의 상황만큼이나 첫인상이 좋지 않았다. 소위 '장판'이라 불리는 날이었던 거다. 난생처음 만난 날에, 그것도 아주 매끈한. 서울에서 동해까지 힘들게 갔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니. 두 번 다시 볼 일이 없겠다 싶었다. 그런데 작년 초,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됐다. 낯설지만 포근하고, 살면서 내가 본 것 중 가장 아름답게 파도가 부서지는 곳에서. 그 바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 보였다. 바다가 만드는 마법이었다. 그 모습을 2시간 동안이나 멍하니 바라보다 결심하게 되었다. 너를 만나야겠다고.




 이 모든 운동을 시작할 때 전문가나 고수로부터 소질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운동신경이 좋은 유전자를 엄마로부터 물려받아서다. 엄마가 학창 시절 사이클과 허들 선수로 활약했다고 하니까. 지금도 나와 체형이 비슷한 엄마를 보며 감사하게 생각한다. 딸은 엄마 체형을 닮기 마련이라고들 하잖은가. 평생을 등지고 살다 30대 초중반에 급격히 체형이 변해 관심에도 없던 운동을 시작하려면 그야말로 고역일 거다. 참 다행인 일이다.

 요즘도 난 내 체중이 얼마인지 모르고 산다. 지방보다 근육이 더 무겁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로는 체중에 그리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눈으로 조금씩 변하는 체형을 관찰한다.


 목표를 설정해 운동하지 않으면 어떤가. 어느 기간 동안 얼마만큼의 성과를 내겠다는 생각 없이 재미있게 하다 보면 1년이 되고 5년이 되는데. 내가 좋아하는 일까지 계획표대로 딱딱 맞춰한다면 또 하나의 숙제일 뿐 취미가 될 순 없었을 거다. 적어도 나에겐. 그것에 연연했다면 내가 지금처럼 몸을 즐겁게 사용할 수 있었을까 싶다.


 오늘도 야근으로 요가원에 가지 못했지만 이 글을 쓰기 전 짧게나마 수련을 했다. 재미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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