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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영 Mar 21. 2019

계절을 만끽하고 싶을 땐 달리기를

 "아...... 나 또 왜 달리고 있지?"

 달리기를 할 때면 어김없이 읊조린다.


 그렇다. 나는 달릴 때마다 후회한다. 걷는 것보다는 빠르게, 전력질주보다는 느리게 다리를 움직이는 이 단순한 행위는 매번 내게 고통을 안겨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면 또다시 달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6년이나 이 일을 반복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단언컨대 달리기는 달리기 전과 달리고 난 후에 가장 행복하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늘 '어디 한 번 달려볼까?' 하는 마음이 채 들기도 전에 러닝복 차림으로 러닝화를 신고 튕겨져 나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뇌가 가동하기 전에 몸이 먼저 움직이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무래도 날씨의 영향이 가장 크지 싶다. 요즘처럼 공기의 질이 겨울에서 봄으로 바뀔 때나 내리 계속되던 미세먼지가 잠시 걷혀 맘껏 공기를 마실 수 있을 때, 간혹 밤공기에 묘한 무드가 섞여 하염없이 배회하고 싶을 때 나는 달린다. 물론 신나게 달리기 시작한들 500M만 지나도 숨을 몰아 쉬며 ‘또 당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어쩌면 그 뜨거운 들숨과 날숨에 공기가 섞인 가학적인 맛을 즐기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터라 주로 혼자 달리는 편이지만 가끔 회사 동료들에게 런치런을 제안하기도 한다(사내 달리기 동호회인 '뜀박질러' 소속. 점심시간에 달리는 것을 우리는 ‘런치런’이라 부른다). 운동에 미쳐서 그런 건 절대 아니고. 그저 가끔씩, 올림픽공원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건물에서 정신없이 일하다, 정작 계절이 돌아온 공원을 밟을 여유조차 없다는 사실에 서글퍼져 몸을 흔들어 깨우는 것이다. 이럴 때도 날씨는 그럴싸한 미끼가 된다. "날이 많이 풀렸는데, 내일 점심에 뛰실 분?", "내일 미세먼지가 보통이래요! 저는 달릴까 해요." 그러면 누군가는 반응한다. 다음날 오전 11시 30분, 두세 명이 모여 회사 앞 올림픽공원 한 바퀴를 돈다.

 그렇다고 날이 좋아야만 달리는 건 아니다. 날씨로 큰 동기부여가 되긴 하지만, 대개 '달리다 보니 이런 날이더군' 하고 감지하는 경우가 많다. 비가 내리면 비의 무게를, 바람이 불면 바람의 힘을 평소보다 더 극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게 달리기의 묘미다. 생각 없이 나왔다가 공기에서 칼칼하고 매캐한 맛이 느껴져 미세먼지가 심하다는 걸 알게 되기도 하고. 추운 겨울에도 달리면 땀에 흠뻑 젖을 수 있다는 걸 나는 달리기를 통해 알았다.

 계절마다 각기 다른 색채와 향을 경험할 수 있으니 내 몸은 계절이 변하며 내뿜는 에너지를 온전히 느끼기 위해 달리려 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달리는 내내 몸뚱이 무게만큼의 고통을 감내하면서.


 때마침 비가 내린다. 내일이면 미세먼지가 씻겨진 맑은 봄날을 만끽할 수 있으려나. 내일은 모처럼 런치런을 해야겠다. 저와 함께 달리실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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