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편
꽤나 심각하고 큰 수술로 힘들었을 때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고마웠던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감정 기복도 크지 않고 표현하는 것도 어설픈 나로서는 ‘고마워’,‘사랑해’라는 말이 나오기까지 정말 쉽지 않았지만, 수술한 지 1년이 지난 지금은 그래도 표현을 잘하는 편이 된 거 같다. 예전부터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운이 좋은 편은 아니었고 알아주는 '똥 손'이었다. 친한 친구들끼리 내기를 할 때마다 열에 아홉은 꼭 내가 걸리거나 나를 포함한 다른 친구가 걸렸다. 한 번은 오타와에서 친하게 지내던 동생인데 내가 별거 아닌 내기에서 이길 때였다.
"원래 큰일 겪고 나면 운도 좋아진다 던데, 앞으로도 그럴 듯"
이라며 친한 동생이 던지듯이 말했고 원래 그 친구가 그런 말을 건네지 않는 스타일인 것을 아는 나에게는 별거 아닐 수 있는 그 말이 내심 감동받았다. 모두가 그렇듯 원체 그런 표현을 안 하다가 해주면 더 크게 와닿는다. 노렸나. 이렇게 작은 한마디에도 감동을 받을 정도로 수술하고 나서 내가 감수성이 풍부해졌다고 느낀다.
가장 고마웠던 지인 중 한 명은 수술 전부터 매주 빠지지 않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남겨줬던 누나다. 심지어 그렇게 가깝게 지내던 누나도 아니었고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단체로 모여 식사 자리를 갖는 게 전부였다. 그랬던 누나가 4월에 쓰러지고부터 7월까지 매주 조직 검사, MRI 일정까지 챙겨주면서 카카오톡으로 응원의 메시지를 남겨줬다. 그때 당시에는 나도 수술 때문에 경황이 없을 때라 제대로 대답하지도 못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정말 큰 힘이 됐다. 재활 병원 퇴원하고 나서는 밥까지 사주는 멋진 여성이었다. 수술하고 나서 실어증으로 인해 카카오톡 하는 거도 어려운 시기였기 때문에 답장도 짧고 제대로 고마움을 표시하지 못한 게 한이다.
재활 병원 당시 면회가 가능해지자 여러 친구들이 왔지만 그중 기억에 남는 건 단연코 매주 주말 맛있는 먹거리를 사 와서 먼 길 발걸음을 해주고 말동무가 되어준 부부였다. 이 부부와의 인연은 오타와 교회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교회에서 만난 귀중한 인연들 중 한 쌍으로 꼽을 수 있다. 아무래도 같은 남자다 보니 형과 더 친했는데 나보다 10살이나 많은 형이지만 축구, 게임, 캠핑, 록 음악 등 취미를 공유하며 가깝게 지내기 시작하고 형도 ‘재’ 자 돌림이라 동생까지 삼 형제 같다고 불렸다.
이후 형과 누나는 본가와 직장을 따라 토론토로 이주했고 그곳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고마운 게 많은 부부지만 당시, 학생이었던 나와 동생은 100불 정도 되는 토론토행 버스 값 밖에 없어 축의금도 하지 못한 것이 지금도 한으로 남아있다. 지금도 ‘언젠가 살면서 갚을 날이 오겠지’하며 그 시기가 오기만을 기다렸고 지금은 어느 정도 보답한 듯하다. 지금 내가 현재 직장을 잡게 된 것도 부부의 도움이 큰데 본인들 방 중 하나가 남는다며 룸렌트를 한 것이 토론토에 오게 된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현 직장까지 10분가량 걷고, 버스, 지하철, 전철까지 3번은 갈아타야 해서 힘들기는 했지만 함께한 1년은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나는 보통 형에게 존대를 쓰는데 재활 병원에 있을 때는 언어 장애를 앓고 있어서 말이 계속 짧게 반말로 나왔다. 방문 첫 주에는 형이 질문하면 나는 짧게 대답할 수 있었다.
형: “오늘 뭐 했어?”
나: “응.”
동문서답이고 반말이었지만 나름 야자타임 느낌도 나고 그 순간이 재밌었다는 건 인식할 수 있었다. 매주 눈에 띄게 좋아졌고 퇴원 직전에는 원래 주로 사용하던 존댓말도 나왔다. 여러모로 인생의 많은 부분을 보고 배우는 부부다. 룸렌트 했을 당시 20대 중반으로 여전히 모든 것이 어설펐던 나로서는 10년이란 세월을 채우기에는 처음 겪는 것이 너무나도 많아서, 부부가 다른 상황으로부터 힘든 일을 겪을 때 제대로 위로가 되어주지 못한 것이 후회로 남는다. 그만큼 내게는 항상 고마운 부부고 아픈 친한 지인이 있다면 '이렇게 챙겨줘야 하는구나'라고 배우기까지 했다. 언젠가 이 부부에게 필요할 때 힘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수술 후 가장 고마웠던 건 단연코 친동생과 여자친구였다. 매일 곁에서 힘이 돼주고 내가 버거워하는 것을 해결해 줬다. 이 둘에게는 살면서 평생 보답해도 부족할 거 같다. 외에도 내 소식을 듣곤 같이 눈물을 흘리며, 응원 편지와 메시지를 주던 부모님, 형, 누나, 친구, 동생들 정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