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청첩장

by 김재인

재활병원에서 퇴원하고 온라인으로 화상 재활치료를 요청했다. 보통 화상으로 상담을 진행하기 위해선 2달의 대기 시간이 소요되지만 우선 신청하고 봤다(캐나다는 환자가 많다기보단 선생님 별로 인원 제한을 두어서, 그만큼 면밀히, 꼼꼼하게 챙겨 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한국은 어떤지 모르겠다). 마냥 기다릴 수 없었기에 재활에 도움 되는 각종 출력물을 받아왔다.

수술 부작용인지 잠이 없을 때라 오전 6시면 눈이 떠졌다. 그럼 난 6시에 일어나 명상을 조금 하고 책도 읽었다. 사실 난 책과 거리가 먼 편이었다. 마지막으로 읽었던 책이 유아시절 때 엄마가 주는 용돈 받으려 읽은 책들, 대학 때 교과서와 권장도서 몇 권 정도였던 거 같다. 새해마다 올해는 책 읽기 목표를 잡고 항상 실패해 왔던 나다. 새해 결심하고 처음 읽었던 책이 ‘50 - 홍정욱 에세이‘였는데, 수술 후에 다시 완독, 정독했다. 다시 읽은 책과 정독한 책은 아마 처음일 것이다. 원래 홍정욱 님을 유튜브인지 인스타그램인지 우연히 접하고 그의 삶을 동경해 왔다. 하버드 대학 로스쿨을 졸업하고 뉴욕주 변호사 시험을 합격했다. 언론기업 헤럴드를 인수하고 국회의원까지 했으며 지금은 건강음식을 만드는 올가니카(Organica)를 창업해 회장직을 맡고 있는 그야말로 사기 캐릭터였다. 게다가 잘생기고 영어로 연설하시는 유튜브 영상을 보는데 남자인 내가 봐도 반할 정도다. 참고로 난 한국에는 정치색이 없다. 아무튼 아침에 일찍 일어나 짧은 명상 후, 책을 보고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9시가 되면 여자친구의 도움을 받아 재활을 시작했다. 한국어는 어느 정도 가능해져서 영어로 말하고 쓰는 연습부터 했다. 이제 Animal이라는 카테고리를 주면 Dog, Cat, Monkey 정도는 기억해서 쓸 수 있었다. 반대로 Dog, Cat, Monkey가 예시로 있으면 공통점인 Animal을 유추하는 거도 어느 정도 가능했다.


종양은 연간 0.3~0.6cm 자란다고 하는데, 4.3cm 면 거의 10년가량 자라 온 것 같다. 이민 당시 건강검진 때 흔히 하지 않는 뇌스캔까지 받았는데, 그때만 해도 아무 이상 없었다. 이민온 후 국어와 영어에 가장 취학했던 고등학생일 때 유학생 신분이었던 난 대학에 입학하려면 토플을 봤어야 해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원체 공부와는 담을 쌓아왔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별거 아닌데 그땐 왜 그렇게 크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이때 한 번 머리가 깨질 거 같이 아팠는데 난 그냥 두통이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쯤 시작된 게 아닐지 예상해 본다.

사실 지금까지 건강하게 산 것만은 아니었다. 많은 사람이 그러하듯 20대 초중반까지는 숙취로 고생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혼자 살기 시작하며 매일 퇴근하고 운동을 다녀오면 입이 심심하고 적적해서 거의 매일 맥주를 몇 캔씩 마셨다. 그러고 나서 술을 싫어하는 지금 여자친구를 만나기 시작하며 줄이기 시작했다. 원래 식습관 자체가 디저트, 빵, 튀김 등 맵고 자극적인 건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그런 음식에 돈 쓰기도 아까워, 가끔 술을 마시는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흡연은 원래 하지 않았고 수술 후에는 가공육, 설탕, 커피와 술도 자제하라는 의사 선생님의 권고사항이 있었는데, 설탕이야 원체 잘 안 먹는 편이라 쉬웠다. 가공 육도 정말 가끔 먹기 때문에 절제하는 게 쉬웠다. 커피도 많이 마시진 않지만 마실 땐 Decaf로 일반 커피 카페인 함유량의 약 97%로 비교적 낮은 함유량을 갖고 있기 때문에 쉬웠다. 술이 가장 어려웠다. 원래 줄이고는 있었지만 가끔 가족, 지인들과 모이면 나 혼자 안 마시기가 모호했다. 그러다 보니 이젠 약속도 줄였을뿐더러 평소에는 제로콜라를 마시고 한 달에 한 번꼴로 생맥주 500ml를 마시기로 했다.


토론토의 여름이 한창일 때 넷플릭스 채식 다큐멘터리인 'WHAT THE HEALTH'를 접하곤 음식에 대한 내 관점이 온전히 달라졌다. 원래 다큐를 가끔 보긴 했지만 채식 다큐는 난생처음이었다. 워낙 채식만 한다는 건 이해할 수 없던 나였고,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을 골고루 섭취해야 한다고 했던 나였기에... 찾아보니 비건으로 내추럴 운동하는 사람들도 꽤 됐었다. 단백질은 콩, 생선, 두유 등으로, 지방은 아보카도, 아몬드 등으로 섭취 방법을 연구했다. 캐나다야 채식 인프라가 어느 정도 갖춰져 있어 거리에서 볼 수 있었지만. 한 번도 들어가 본 적도 없고 외식비도 비싼 편이라 외식할 거면 맛있는 단백질을 먹을 생각에 관심도 없었다. WHAT THE HEALTH는 감독인 킵 안데르센이 각종 성인병(당뇨, 암 등)에 노출된 인물들을 대변하여 여러 의문점일 제기하며 건강협회에 인터뷰를 다니는 내용이다. 이 중 가공육이나 유제품이 당뇨, 암 발병 확률을 높이는 데 건강협회 웹사이트 추천 음식 목록에는 가공육, 유제품이 떡하니 있어 조사해 보니 배후에는 대형 육류, 가공육, 낙농업 관련 기업들이 있었고 막대한 돈을 지원하는 스폰서(Sponsor)로 있었다. 감독은 과도한 육류, 가공육, 유제품 섭취가 얼마나 해로운 지 설명했고 섭취 시 발병 확률을 데이터를 기반으로 설명했다. 어릴 때 항상 들어왔던 말이 "우유 마셔야 키가 크지, 뼈가 튼튼해지지, 건강해지지"였는데, 아이러니 한 부분이다. 사실 어릴 때도 우유는 맛이 없어서 항상 같은 반 친구에게 주거나 ‘제티(초코맛 가루)’를 타먹었다.

50-홍정욱 에세이를 보면 육류, 낙농업자들이 환경 파괴에 얼마나 큰 악영향을 미치는지, 홍정욱 님이 어떻게 채식을 하게 되었는지, 채식에도 종류가 있다는 것이 기억이 나 다시 읽어 봤다. 오랜 고민 끝에 난 페스카테리언(Pescatarian)이 되기로 결정했다. 생선, 유제품, 채식을 하는 비건(Vegan) 종류지만 난 유제품을 먹지 않고 생선, 채식만 섭취하기로 하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 일단 생선은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컸고 식단을 너무 급격히 바꾸면 오히려 독이 될 거 같았다. 사실 그냥 홍정욱 님이 멋있어서 다 따라 하고 싶었던 거 같다.

마침 병원에서 가져온 출력물도 다 풀어서 대책안을 찾았어야 했다. 오랜 고민 끝에 관심을 갖게 된 비건 관련 기사들을 찾기 시작했고 LA 소재의 언론 기사 플랫폼인 ‘VegNews’의 기사를 큰 소리를 내어 읽고 요약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우선, 말을 못 했던 내게 좋은 재활이라고 생각했고 이해, 기억, 인지해서 요약까지 해야 했기 때문에 그야말로 내게 ‘안성맞춤’인 샘이었다. VegNews에서는 비건에 관련된 환경, 기술, 패션, 뷰티 등 다양한 분야의 기사를 다루는데 나는 주로 환경과 기술에 집중해서 말하고 노트북으로 요약하기를 시작했다.

균형 감각 되찾기

수술 후 두 달 반정도 지났을까, 모국어인 한국말은 조금 돌아온 듯했다. 이제 설명하는 거도 가능하여도 버벅대는 거도 조금은 줄어드는 것으로 보였다. 영어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였다. 원래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아직까지 수술 전과 확연하게 다른 게 느껴졌지만 의사 선생님은 내가 회복이 굉장히 빠른 편이라고 했다.​ 늦은 저녁 수술이 후 첫 MRI 추적 검사를 했다.​ 추적 검사하는 누구나 그러하듯 의사 선생님이 결과를 말해주기 전까지는 매우 초조하다. 혹시, 재발하는 것은 아닐지, 다른 종양이 발견되는 것은 아닐지... 이틀 후 담당 의사 선생님을 을 만났고 아무 이상 없다는 소리를 들어야 안심할 수 있었다. 지금은 수술 직후라 3개월에 한 번씩 추적 검사를 한다. 이것도 점차 4개월, 반년, 1년 이렇게 늘어난다고 들었는데, 연간 2회 정도는 받고 싶다고 말할 것이다. 1년에 한 번 검사했다가 병을 키워 시기를 놓치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


토론토에서 만난 친한 친구의 청첩장을 받았다. 차도 없고 운전면허도 임시정지된 나는 한 부부의 차를 얻어 탔다. 나이도 그렇고 코로나 시국도 종결되고 있던 터라 유독 결혼식이 많았다. 한동안은 앞으로도 계속 많아지겠지... 물론 결혼하는 한 쌍은 너무나도 축하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21년 11월에 프러포즈를 하고 올해 결혼 준비를 하며 사소한 의견 다툼도 있었지만 원만한 편이었고 둘 다 계획적인 성향이라 그런지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실제로 구글로 엑셀파일을 정리 및 공유해서 캐나다, 한국 결혼식을 나눠 준비했다. 캐나다에서는 가족을 제외한 서로의 친한 지인들만 모아 작게 하려 했다. 장소도 이미 알아보고 보증금을 넣은 상태였다. 그리고 답례품, 음식, 비용 등합리적이고 소소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플래너님이 전부 준비해 주셨고 여자친구의 진두지휘 아래 예식장과 스드메까지 예약을 해놨었다.

하지만 4월에 난 쓰러졌고, 그로 인해 결혼이 미뤄지고 결국엔 한국에는 위약금을 문채 결혼식을 못 올리게 됐다. 난 그 죄책감 때문에 힘들었다. 온전히 나 때문에 결혼식이 연기된 것이기 때문에 한동안은 그 죄책감에 사로 잡혔다."아직 젊은 데 뭐 어떠냐, 나중에 하면 되지" 생각하고, 실제로 말을 했던 사람도 있다. 정말 위로되지 않았다. 결혼식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같은 생각이 든다. 그만큼 청첩장은 나에겐 마냥 햇살처럼 따뜻한 소식이 아니라 항상 차갑고 슬픈 면도 공존했다. 물론 여자친구 의견도 들어봐야겠지만 무척이나 힘들었을 것이라 예상한다. 결혼으로 설레어야 될 시기에 이런 고민을 떠넘긴 거 자체가 미안했다. 그럴 때마다 결혼하면 여자친구가 원하는 데로 해줘야지라는 다짐을 몇 번이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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