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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꿩

아버지의 지게

by 글바트로스

어느 덤불에 숨어 있는지

도대체 알 수 없지만,

봄마다 거침없는 목청으로

아침 강변을 일깨우는데도,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던 너.


연분홍 진달래 지고

꽃분홍 철쭉도 뒤따라지고

봄꽃 떨어진 잔가지마다 돋아난 초록 새순,

높고 낮은 산자락에 온통 초록물 들면

어디선가 숨어 우는 너.


꽃내 건너 다랭이 논배미마다

보리이삭 실바람에 흔들리는 나른한 오후.

겨릿소 앞세우고 꼴베러 가던 까까머리 백발노인

황혼보다 앞서 서둘러 귀가하던 날,

낡은 지게에 거꾸로 매달려 왔던 너.


늙은 아비 호롱불아래

백두 장콩 바늘구멍 뚫던 다음날,

대청마루에 책보따리 내던지곤

화롯불 석쇠에 바짝 쪼그리고 앉아

제비새끼처럼 야무지게 꼬치구이 먹던 봄날,

몽환처럼 어른거린다.


억새풀 잘려나간 빈터

비로소 오늘 처음으로 마주친 너.

야생자태 뽐내며

제 집 마당인양 걷다가 멈춰 서서,

기묘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한 뒤에 수풀 속으로 사라진 아침.


꿩 울음소리 들리면

뒤따라 들려오는 지게 진 아버지 큰 목소리

막둥아~~~!

봄마다 시린 메아리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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