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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바트로스 Aug 07. 2024

7. 그해 겨울, 프랑스 카페에 출몰한 이들!

책상 앞에 앉으면, 창문을 통하여 들어오는 건축 양식은 마치 한 폭의 중세 풍경화처럼 고풍스럽다. 비 내리던 성탄 오후, ‘방 빼라’는 벼락같은 통보로 3층에서 1층으로 추락한 날부터, 새로운 피난처인 카페 밖은 고품격 풍경!

강변에 위치한 카페에 거주하는 방은 작지만, 무료(?)라서 좋다. 

카페 지붕은 둥근 왕관 모습이고, 돌 벽으로 마무리된 외양은 세고에도 끄떡없는 옹골찬 모습.

내부는 3층으로 되어있다. 지하는 온갖 주류와 음료들을 쌓아두는 창고.  

지층(rez-de-chaussé; 한국 1층)은 카페. 각종 음료, 잡지, 담배까지 판매하는, 담배 가게(TABAC) 겸용 카페.  1층(한국 2층)은 도로 쪽 방에는 욜랑 언니, 가운데 커다란 방은 욜랑과 필립, 그리고 내방이다. 카페에 거주하는 식구는, 나까지 포함해서 4인이다.      


아침 6시 30분, 카페 문 여는 시간. 

덩치 큰 프랑스 여인이 계산대 앞에 앉아서, 사발 모양의 큰 커피 잔에 투샷의 진한 커피에 우유를 섞어 마시고. 그녀 맞은편의 작은 동양 여자가 핫초크 한 잔을 마신 후, 작은 잔으로 진한 커피를 연달아 마시는 모습, 새벽 카페 안 정경이다. 어미닭 졸졸 따라다니는 병아리 같은, 나의 아침 일과는 8시 45분은 등교할 때까지 계속된다.     


매일, 대학에 간다. 수강할 강의가 없는 날은 대학 도서관에서, 종일 죽치고 앉아 전공인 시인 보들레르 시 작품과 관련 교재에서 석사 논문 주제 알맹이를 찾는 탐색작업을 한다. 프랑스는 대학 간의 자료 교류가 아주 원활해서 편리하다. 도서관에 없는 자료를 신청하면, 그 자료가 비치한 대학은 대부분 일주일 이내로 보내주기 때문이다. 원본 자료는 복사하여 책으로 제본한 후, 거침없이 줄 그어가며 마음 편하게 읽는다. 이런 시스템 덕분으로, 교재 구입비용은 많이 절감된다.

      

프랑스 우기는 가을부터 시작된다. 한국과는 거꾸로 가는 절기다.

오늘도 겨울비가 질척거린다. 수면 부족과 과로로 초대한 적 없는 편두통이 나에게 찾아와서, 다시 괴롭힌다. 유독 무거운 몸 상태는 안간힘을 쓰는데도, 자꾸만 가라앉는 느낌이다. 계속 내려 감기는 눈꺼풀에는 별다른 뾰족 수가 수 없는지라, 맛없는 자판기 커피만 연달아 뽑아마셨다.

다시 자리로 와서, 맘을 다잡고 책에 집중하려고 애써보지만, 이번에는 목 주변이 가렵다. 스웨터를 젖힌 뒤, 긁어대는 손가락에 뭔가가 잡힌다. 펴본 손바닥 안에서, 뭔가가 꼬물거린다. 반대편 목 주변에서도 잡힌 것도, 꼬물댄다. 까만 개미도 아니고. 개미보다 더 작은 이것은? 도대체, 뭐야? 한참 들여다보다가, 예전에 국민학교 입학 전에 봤던, 바로 그놈이다!

으~으~으에엑 이다, 이!!!      


누가 볼세라, 재빨리 책가방을 챙겨서 부리나케 도서관을 나선 나. 

완전히 뚜껑 열린 채로, 씩씩대며 카페로 귀가했다.

계산대 앞에 앉아 있던 욜랑, 내막을 알 리 없는 사람 좋은 느긋한 얼굴로 “왜 일찍 왔누? 

분노조절 안된 큰 목소리로, 냅다 지른 나.”이가 있어서요!” 

마치 그녀가 이를 나에게 보낸 장본이나 되는 것처럼, 소리 질렀다.

비명처럼 찢어지는 목소리에 카페 안에 있던 손님들이 깜짝 놀라,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큰 목청에 잠깐 당황한 나머지 일순 멈칫했던 그녀도,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무슨 소리야? 얼랄라아, 우리 식구들은 이가 없어요. 일평생 단 한 번도, 이를 본 적이 없네요. 단 한 번도, 결코!” 

칙칙폭폭 소리 내며 달리던 예전 시골 기관차처럼, 씩씩대며 서로 마주 보며 소리를 질러댔다. 그녀가 쏟은 마지막 말, “단 한 번도!”는 뚜껑 열린 나에게, 기름을 끼얹은 모양새가 되었다. “그럼, 나란 말이요? 미치고 환장하겠네, 정말로!”  

주간 근무자인 포르투갈에서 이민 온 쟈크린까지 얄밉게 합세했다. “내가 얼마나 청소를 깨끗이 하는데? 어떻게 카페에 이가 있겠냐? 네가, 학교에서 옮아온 거겠지.” 

기막힌 억울한 눈빛으로, 카페 안에 있던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을 번갈아 쳐다보며 SOS청했지만, 전부 하나같이 외면했다. 나와 눈 마주치는 대신에 욜랑이 옳다고 자기네들끼리 쑥떡 쑥떡. 그들 눈에 비친 나는, 심덕 좋은 주인에게 당돌하게 대드는 배은망덕한 동양 여자일 뿐이었다. 

     

오전 11시의 카페 손님 대부분은 인접 국가에서 온 실업자와 노숙자들이다. 

마음씨 좋은(de bon coeur) 카페 주인인 욜랑이 제공해 주는 무료 점심 수혜자들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순간적으로 망각했던 나. 

같은 이방인끼리 평소 느끼던 애틋한 연대감은, 무료 점심 식사 존폐 앞에서 연기처럼 흔적 없이 꼬리를 감추고 있었다.

그 누구의 지지나 도움 없이 나 홀로, 반드시 이의 생산자를 찾아야만 했다. 더는 물러 설 수 없는 벼랑 끝에서, 절망과 분노를 숨긴 호랑이가 먹이를 탐색하는 것처럼, 등교 전에 머물렀던 모든 장소를 되짚어가며 수색했다. 

나의 애끓는 열망에도, 그 어느 곳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 

이번에는 잃어버린 바늘 찾는 여인처럼 처음보다 더 꼼꼼하게, 다시 한번 탐색했다. 다급함과 긴장감이 뒤엉킨 계속적인 수색작업에도,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못 찾으면, 영락없이 ‘이 생산자’로 낙인찍힐 순간. 

이 생산자도 근원지도 찾아내지 못한 채로, 수습 불가한 난처한 이 상황에서, 결국 머리 숙여야 하는 나. 

전혀 내키지 않을 뿐 아니라 억울해서 미칠 지경이지만, 사과해야 하는 분위기다. 또다시 이삿짐을 싸지 않으려면! 

조금 전까지는 우리는 거침없이 쏟아냈다, 각자의 모습대로. 

그녀는 집주인 거위답게 “꽤~애~액!~” 

나는 겁 없이 맞선 병아리처럼, “삐~야~악!~” 

그러나 뒷수습은 병아리의 몫, 지금은 “삐약 “하고 사과해야 하는 순간이다.

     

계산대 앞에서 여전히 냉랭하게 굳어있는 욜랑 맞은편, 붙박이 테이블로 다가섰다. 쟝은 그녀 맞은편에서 아침 등교 전에 봤던 모습대로 서 있었다. 

황소 같은 큰 눈을 끔뻑대며 오전부터 붉은 포도주를 마시는 그 옆에서, 아무런 말없이 한동안, 나도 가만히 서 있었다. 

“소리 질러서, 미안해요”는 억울함과 분노 때문에 쉽게 나오지 않아서, 계속 뭉그적거리는 중.      

미안하다고 총알처럼 말하고, 학교로 내빼자’고 굳게 다짐한 그 순간! 

쟝이 입고 있던 검은 스웨터 어깨 부위의 희뿌연 색깔이 눈에 들어왔다. 

속으로 “머리나 좀 자주 감지. 저 허연 비듬 좀 봐, 더럽게.” 

그런데, 뭔가가 꼬물댄다? 어? 어? 이가?~이들의 행렬!!! 

쟝의 팔꿈치로 타고 테이블로 내려오는 이의 무리들!!!

마치 군함에서 하선하는 군대처럼 내려오는 무리가, 이들임을 확인하는 순간에 내가 지른 함성.

“이~다!, 이~! 이~들이다!”

      

 생산자는 바로, 쟝이었다. 그의 검은 스웨터 위에서 허옇게 무리 지어 꼬물대는 이들은 더럽다기보다 참으로 반가웠던 것은 나의 누명을 벗겨준 은인 같은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해방감은 곧바로 서글픔으로! 

 모두들, 놀랐다. 장본인 쟝을 제외하고. 그는 알고 이미 있었던 것이다.

곧바로 지하실로 달려 내려간 필립은 더러운 이불 뭉치를 들고 나와서, 강변에서 모조리 소각했다. 지하실에도 거주자가 있다는 사실을 내가 까맣게 몰랐던 것은, 새벽 6시에 지하실을 나가는 조건을 쟝이 엄수했던 것이다.


이불 전부를 소각하고 난 뒤,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는 필립의 재촉에도, 이 생산자 쟝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참다못한 욜랑이 소리 질렀다. “오늘밤부터, 지하에서 못 자요!” 

캡틴의 지하실 퇴거명령에야, 비로소 그가 움직였다. 

쟝의 옷을 전부 벗겨서 불태운 필립은 자신의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혔다. 

매달 실업급여를 무려 이만 오천 프랑(한화 삼백만 원 정도)이나 받는 쟝, 왜 노숙할까? 

도무지, 그가 이해되지 않았다. 풍족한 경제적 여유를 누리는 대신, 하루 종일 술만 마시는 알코올중독자였다, 그는.      


카페에 출몰한 이가, 몰고 온 소동? 

새로운 생존지역으로 출몰한 이들 앞에서, 각자 생존권 다툰 인간들의 모습!

카페 주인인 욜랑은 카페의 매출 하락 방어선을 지키려고, 

이민녀 캬트린느는 일자리를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노숙자들은 무료 점심 대신, 종일 굶을 수 있다는 공포로,

나는 이 생산자의 낙인을 무서워하며, 

각자의 생존권 방어선 앞에 버티고 선, 전사들이었나? 

      

도서관으로 가고 싶은 어떤 열망도 없는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 

카페 2층 방에 틀어 박혀서, 오후 내내 창밖만 내다봤다.

그 누구와 눈 마주치거나,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머물고 싶지 않다는 마음속으로 맴도는 ‘또 어디로 가야 하나?’ 

“스튜디오에 이사 가고 싶어요. 얼른, 돈 가방 찾아주세요, 주님!"  

    

지난해 10월, 국내 각 언론에 장식된 뉴스 헤드라인들!

‘빈대와 전쟁하는 프랑스’....... 

‘올림픽을 앞둔 프랑스에 출몰한 빈대’......, 

지금, 모든 언론들은 프랑스에서 개최 중인 올림픽 경기를 보도하고 있다. 

‘출몰한 빈대’ 헤드라인 대신. 

빈대들은 전부 박멸시켰나? 

“여름은 빈대의 계절은 아니지. 이가 출몰하는 계절도 아니지 “ 중얼중얼.

갑자기 떠오르는, 투박하게 진한 터치의 펜드로잉화!     

그해 겨울프랑스 카페에 이가 출몰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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