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바트로스 Aug 14. 2024

8. 치과의사, 파트릭

이가 너무 아파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다. 며칠 째, 거의 뜬 눈으로 앉은 채로, 긴 밤이 지나갔다. 출국 전, 한국 치과에서 치료받은 치아 8개가 일제히 흔들거리며, 데모를 해대는 까닭이다. 

제대로 못 자고, 안 먹은 과로가 원인일 것이다. 

치아들도, 더 이상 못 견디겠단다, 주인인 나처럼. 

잇몸도 합세해서, 치솟았다. 

그래도 막무가내로 참을 수 있는 데까지, 버티고 있었다.       

보유하고 있는 외국인 의료보험은 치료 후, 개인 부담금이 상당히 많다는 막연한 정보가 치과치료 두려움보다 더 무서웠던 것. 

치과에서 치료받은 한국유학생이 없는 까닭에, 정확한 정보는 도대체가 알 수는 상황이다. 

2주가 지나자 양쪽 볼이 부어오를 정도로 염증이 커지고, 구취까지 났다. 

BNP은행 내 통장 잔액을 알 리가 없는 욜랑, 치과에 덜커덩 예약한 후에 용감하게 나를 자동차에 싣고 갔다.     

치아 상태를 본 파트릭이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어이없다는 어투의 그의 질문. 

“무서워서요!” 

“치과 치료가 왜 무서워요?” 

“4개나 발치한 우리 어매가, 고열로 죽었거든요!” 

그 순간, 그만 목이 콱 막히더니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이런 주책바가지!

가슴속 깊은 곳에 숨어있던 상처를, 그가 툭 건드린 것이다.      

치과 트라우마가 어머니 죽음과 관련 있다는 것을 직감한, 그는 어린애를 치료하듯이 긴장 완화용으로 대화를 계속 이어갔다. 

한국 치과에서 듣던 “좀 참으세요, 금방 끝나요”라는 말 대신, 통증이 느껴질 때마다 손을 들라고 했다. 

더 가늘고 섬세한 기구를 사용해서 치료하면 통증은 거의 없고, 다만 치료 시간이 좀 더 오래 걸린다는 부연설명과 함께. 

마침내, 치료비를 지불해야 하는 시간.

“보험회사 몫을 제외한 본인 부담금은 치료 완료되는 날, 청구할게요.” 

통장 잔고를 떠 올리며, 가슴을 쓸어내린 순간이다!      


치료 끝난 후 귀가했을 때, 도서관 가기에는 다소 애매한 시간.

작은 방에서 멍 때리다가 치과에서 울컥했던 장면, 어머니가 돌연사하신 그날이,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올랐다. 

만약 되돌아 갈수만 있다면~앞니 삐뚤어진 할매 사위누가 하겄소?”

이런 무지막지한 말을 내뱉지 않았다면, 어머니는 겨울번개처럼 돌아가시지 않고, 지금도 멀쩡히 살아계실 것이다. 

삶이 비정한 이유는 그날로 다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주사위처럼. 

그날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하겠다?’ 말은, 속절없는 회한의 탄식일 뿐.

어머니가 번개처럼 떠난 순간, 그 내리친 벼락으로 와해된 내 영혼.    

따뜻한 온기로 유일하게 나를 감싸주던 존재, 위중한 질병 없던 어머니를 죽음으로 내몬 죄책감이 다시 솟구쳐 올라, 밤새우는 뻐꾸기처럼 뻐꾹뻐꾹! 

어머니의 죽음과 치과의사는 청실홍실로 엮어진 내 트라우마 실체.

그 속에 둥지 튼 회한의 뻐꾹새는 곧잘 “뻐꾹~뻐꾹!”     

 

파트릭 치과에서 4달이나 치료받았다. 

치료는 고통스럽지 않았다. 

그가 던지는 한국 관련 질문공세에 적절한 단어를 찾아내느라고 내가 애쓰는 동안, 치료는 어느새 끝나 있었던 것이다.

오후 진료 가다가 카페에 들러서, 그가 커피 마시는 횟수가 잦아질수록 제법 친숙해졌다, 우리는.     

드디어 치료가 종료되는 날.

내가 반쯤 얼어붙은 떨리는 목소리로 

“청구서 주세요.” 

“그냥, 가요.” 

“뭐라고요? 다시 한번, 말해 주세요.” 

“그냥 가면 돼요.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요. 관리 잘하고. 더 이상, 아프지 마요!”  

치아 8개 치료비, 천 원짜리 한국 전통인형 1쌍이 전부!

고맙다는 인사로.       


그날부터 욜랑은 자작곡 샹송 ‘1등 신랑감’을 매일 불러댔고, 그와 결혼한 나의 애들을 돌보는 그녀의 소망은 너무나도 빠르게 부풀어 올랐다. 

그는 훤칠하고도 듬직한 체격의 따뜻한 녹색 눈빛인, 잘 생긴 새내기 치과 의사. 

어느 저녁에 대학 옆까지 평소보다 멀리 나간 산책길, 우연히 마주친 우리는 아무런 관객 없는 덕분에 처음으로 자유롭고 유쾌한 수다쟁이가 되었다.

BNP은행 앞에서 멈춘 그가, 나에게 ‘따라 들어오지 말고 문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지금은 한국 도처에 있는 은행 현금인출기였지만, 그날 처음 본 나에게는 차단선을 긋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다음날,  도서관에서 만난 부산 새댁이 들려준 정보. 

“BNP은행장 부인이요. 겨우 40프랑(한화 육천 원 정도) 짜리 티셔츠를 사는데 에도, 남편의 허락받고 샀다고 하네요.”

“설마요? 한 푼도 없었나요, 그녀는?”

“4명인 아이들 육아에 전념하는 전업 주부래요. 그러니, 은행 계좌도 수표책도 없대요. 직장 다니겠다고 울먹였대요, 주인집 아줌마 말로는.”

가정생활에 필요한 소비품목을 맘대로 지출하는 현실이, 오늘 처음으로 감사하게 느껴진다는 그녀의 말은, 경고의 징소리처럼 나에게 들렸다. 

‘가정공동체는 곧 경제공동체다’라는 한국적 인식을 가진 우리에게는, 참 낯설고도 차갑게 느껴지는 가정경제권에 대한 정보였던 것이다.

그동안 파트릭이 보여준 따뜻한 배려로 서서히 해빙하던 내 맘, 바로 그 순간 다시 결빙되었다. 

40프랑 수표 결제받는 내 모습을 떠 올리며, 고개를 살래살래. 


갑자기 내가 고슴도치처럼 변모한 원인을 모르는 채, 어색한 6개월이 지나간 뒤의 연말 어느 날. 

그가 쭉쭉빵빵 짝꿍을 데리고 나타나면서, 욜라의 꿈이 사라지고. 

덩달아 나도 허전해졌다, 키 큰 해바라기 밑에 핀 작은 민들레처럼. 

썸탄 것도 아닌데도! 

프랑스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피어나던 민들레가 낙화된 날이다!


2024년 6월 28일 금요일, 한국

치과 임플란트 시술 상담시간. 

“고객님이 복용 중인 골다공증 약명을 알려 주세요.”

“약명, 모르는데요.”

“처방해 준 내과에 전화해서 물어보세요. 약에 따라서 임플란트 부작용이 있어요.”

그녀가 시키는 대로, 내과에 전화해서 약명 ‘라본디’를 알려주었다.

상급자에게 약명을 보고한 그녀는 아무런 언급도 없이, 7월 1일 임플란트 시술예약금 결제까지 일사천리로 완료시켰다.

임플란트 시술 예약 절차가 끝난 뒤, 문을 열고나서는 내 등 뒤에다 대고,   

“고객님, 내과 의사에게 전화하셔서 복용 중인 골다공증 약, 임플란트 시술 후에 부작용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

“네? 좀 전에, 샘이 확인하지 않았나요?”

“그래도, 내과에 다시 확인하면, 더 좋을 것 같아서요.” 

뭔가 미심쩍다.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적중한다.

귀가 후, 곧바로 통화한 내과 의사는 임플란트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고, 구체적인 내용은 환자 본인이 내원해야만 알려 줄 수 있단다. 

통화 끝나자마자, 7월 1일 오전 10시 임플란트 시술을 할 수 없는 이유가 복용 중인 골다공증 약 부작용 때문이라고 치과에 통보했다.  

    

7월 1일 월요일 

6월 28일 금요일, 결제했던 치과 데스크 반응.

‘지금부터 4개월 후, 임플란트 시술하는 것이 좋다’는 내과 의사의 소견서를 읽은 후에도, 취소가 불가능하다는 기막힌 대답이다. 

이유는 결제 당일이 아닌 경우, 일주일 후에나 취소가 가능하고, 확인서는 양식이 없어서 못해준단다. 

그냥, 집에 가서 기다리라는 말만, 목청 좋은 앵무새처럼 번복했다.     

마침내 뚜껑 열린 나.

복용 중인 약명을 알려주었을 때는 아무런 언급도 않고, 결제까지 진행시킨 비정상적인 절차를 지적하며, 최고 관리자 면담을 요청했다. 

지하 사무실에서 만난 책임자도 의사 소견서를 읽은 후, 비슷한 태도로 장황한 이유를 늘어놓았다. 

예전에 진행하다가 중단된 ‘100인의 한국 명의’까지 내가 들먹이는 블랙 코미디 연장전까지.   

  

겨우내 ‘임플란트 치료 예약금 반환서’를 받아 들고.

강렬히 내리쬐는 여름 뙤약볕 아스팔트 위로 무거운 발걸음으로 터벅터벅 귀가하는 중이다.

“임플란트 8개 수입 금액만 보이고, 고통받는 환자는 보이지 않나?”

구시렁대는 중에, 갑자기 떠 오른 얼굴!

유학생의 가난한 호주머니까지 염려한 치과의사!

치과의사 트라우마인 어머니 죽음 상처도 완화시켜 준, 치과의사 파트릭! 

“원조, 산 넘은 패밀리나 만들걸, 그랬나?” 

보다 더 현실적인 이유로, 오늘 유난히 보고 싶은 치과 의사 파트릭!     

이전 07화 7. 그해 겨울, 프랑스 카페에 출몰한 이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