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바트로스 Jul 31. 2024

6. 성탄 메시지, 방 빼라!

이자벨 부모님 댁에서 귀가하는 거리의 불빛은 따뜻함보다 차갑게 느껴졌다. 12월 1일부터 거리에 온통 넘실거리는 화려한 조명은 번쩍대는 불빛 바다 같다. 이 인위적인 불빛은 성탄의 거룩한 메시지보다는 가톨릭 국가의 오래된 전통의례 위상을 뽐내는 것처럼 보였다. 


난생처음 보는 눈부신 불빛에 감동했던 처음과 달리, 점차로 나와는 무관한 축제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형광 불빛은 몸과 영혼 속으로 파고드는 차가운 얼음처럼, 거부 충동이 일어나는 정도였다. 세례 나이가 겨우 2살 인 나는,  분실한 돈 가방을 성탄 선물로 돼 돌려받고 싶은, 어린애의 소망뿐이었다.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열어주는 할머니의 얼굴빛이 냉랭하게 느껴진다. 

평소에도 그다지 따뜻한 성품도 아니지만. 

지난밤에 화젯거리였던 공주의 긴 망토를 벗어 행가에 거는 순간, 불현듯 어머니의 속정 깊은 따뜻한 얼굴이 떠오른다. 내 나이 25살 겨울, 구정 9일 앞둔 날, 어머니는 겨울번개처럼 떠나셨다. 아무런 징조도 없이 벼락 맞은 날, 내 존재를 감쌌던 온기 자체인 ‘어머니 우주’가  붕괴된 날부터, 그 상실감으로 넋이 나간 채로 유랑하던 시기! 그 허망한 심연을 들키지 않으려고,  숨고 싶다는 꿩의 열망으로 구입한 화려한 옷들 중의 하나인 겨울 망토다!  

     

갑자기 들려오는 노크 소리. 할머니가 할 말이 있으니, 거실에서 보잔다. 불길한 예감이 든다. 불길함은 언제나 적중하나 보다. 소파에 앉자마자, 할머니의 통보 

“방 빼라!” 

이 간결한 한 마디, 내게는 핵폭탄! 

방금, 터진 핵폭탄의 파편들에 패인 줄무늬 형태들이다.   

그동안에 귀가 시간인 오후 7시를 한번 어겼고, 대학에서 귀가한 후에는 충분히 말벗이 되어주지 않았고, 또 주말도 마찬가지였단다. 할머니가 뿔난 결정적인 이유는 성탄을 함께 보내지 않고, 홀로 남겨 둔 서운함!

그녀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합당한 결론인 통보였겠지만, 내 쪽에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다! 어제 아침에 설명할 때는 잘 알아들었다더니……무슨 뚱딴지? 메시지 내용은 이해했지만, 그 상황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할머니 집으로 이사 온 지, 겨우 한 달 정도. 대학원 합격 후, 무엇보다도 스튜디오 사용료가 나에게는 가장 큰 부담이었다. 이런 사정을 눈치챈, 발음 교정 샘인 열랑이 주선해 준 알바. 그녀의 빅 마우스로 알선된, 알바 업무는 할머니와 말벗해 주는 대신, 방세가 무료였다.   

참으로 닮은 꼴인 할머니와 나는, 마치 두 마리 고슴도치 같았다. 그녀는 짧은 대화에서조차도, 나의 문어체 대화나 발음 오류를 그냥 지나치는 법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또한 탐색하듯이 바라보는 압권인 눈빛에, 나는 점점 오그라들었다. 그녀와 대화를 가능한 피하려고 애쓰거나, 아니면 대화를 짧게 끝내고 싶어 하며, 어쩔 수 없이 버티는 불편한 동거였다. 주변머리 없는 나의 무뚝뚝함과 집주인 할머니의 권력이 맞부딪힌 결과, 오늘 내쫓기는 것이다.

예수님 탄생한 12월 25일, 내가 통보받은 “방 빼라!” 

이 짧은 말은 통보라기보다는, 벼랑 끝으로 밀어붙이는 비정한 폭력으로 느껴졌다. 내가 대응할 수 있는 최고의 대답은 “잘 알겠습니다.”


신데렐라의 마법은 자정에 풀리고, 글바트로스 마법 해제는 오후 5시?

방에 들어오자마자, 갑자기 소낙비 같은 눈물이 쏟아졌다.

주변에서 들어본 적이 없던 그런 늦둥이가 초등학교 입학하러 가는 날, 남들 앞에서 절대로 울면 안 된다는 어머니의 최초 엄명을 지켰던 꼬맹이. 수업 중에 노쇠한 부모님이 갑자기 죽을지도 모른다는 극심한 공포에도 울지 않고 약속에 충실했던 아이. 모범생 애늙은이로 성장한 뒤, 혼자 있을 때조차도 지켜졌단 그 약속은 이국땅 프랑스에서는 시효가 종료되었나 보다. 

요즈음은 시도 때도 없이 꼭지 풀린 수돗물처럼 눈물이 흐른다. 계속 울었다, 기가 막혀서! 이 추운 겨울, 비까지 내리는 늦은 시간에 어디로 가나? 어떤 묘안도 떠오르지 않는다. 이 낯선 나라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죽치고 앉아서, 우는 것밖에는. 평소 부르던 호칭인 ‘어머니’ 대신, 눈물 쏟을 때는 꼭 아이처럼, 왜 ‘엄마아~’를 불러대는지?     


오후 6시, 발음교정 수업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래도 가야 한다. 사전 암기 후에 하던 단어 발음 교정 수업은 이미 종료됐고. 최근부터 1단계 업그레이드된 수업 내용은, 그날 있었던 일상을 이야기하는 과정에 발견되는 문어체 화법을 실용 불어로 바꾸는 훈련과 동시에 발음을 교정을 받는다.     

출발 전에 거울을 비친, 얼굴은 과히 목불인견! 삶아서 물에 퉁퉁 불은 해삼 같은 흉측한 몰골이다. 그래도 가야 했다. 약속된 수업 장소인 카페로 갔다. 욜랑에게 Angers 여행을 요약 보고한 후, 오늘 수업은 쉬고 싶다고 했다. 눈치 백 단인 그녀다. 기분이 언짢아 보인다며,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계속 물었다. 그만 울음이 터졌고, 아이처럼 서럽게 꺽꺽대며. 

“그 할매가 나가라는데요!”      


잠깐 아무런 말이 없던 그녀. 갑자기 휘익 일어서더니, 날더러 당장 앞장서라고 했다. 주저하는 내 손을 잡아끌며, 헌병보다도 더 씩씩한 큰 보폭으로 앞장서서 걸었다.

문 열어주는 할머니의 인사도 무시한 그녀. 어찌할 바를 몰라 우두커니 서있는 나 대신, 행거의 옷들을 주섬주섬 트렁크에 챙겨 넣은 뒤, 곧바로 방을 나온 그녀를 보고. 

놀란 할머니가, “이 저녁에, 당장 나가라는 말은 아니요”라는, 다소 기죽은 목소리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그녀는 문을 꽝~소리가 날 정도로 세차게 닫았다.

 

어두운 길에 멈춰 서서, 우리는 마주 보며 큰 소리로 웃어댔다. 그녀도 달리 뾰족 수가 없었던지, 우선 카페로 가자고 했다. 물 한잔을 쭉 들이 킨 후, 그녀가 트렁크를 끌고 2층으로 먼저 올라가면서, 나에게 뒤따라오라고 했다.     

작은 방에 입성한 우리. 큰 키에 버금가는 긴 두 팔로 나를 끌어안고, 

양 볼에 연신 입맞춤을 해대면서 소리치는 그녀. 

“나의 애기야! 네 방이란다, 지금부터! 가엾은 내 딸아! 좋으신 하느님의 선물이란다, 너는!(Mon bébé! A partir maintenant, c'est ta chambre, ma pauvre fille! Toi, c'est un cadeau de Bon Dieu!)    

   

성탄 12월 25일, 내가 받은 통보, “방 빼라!”

느닷없이 내리친 겨울벼락으로, 날개 없는 글바트로스가 추락한 오늘!

예수님이 마구간에서 탄생한 오늘, 나도 카페의 딸로 태어난 날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