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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병원 풍경

by 글바트로스

병원 가는 날,

오래 살고 싶지 않다던 혼잣말

은여우 꼬리처럼

흔적 없이 사라진다.


금속 기계보다

더 차가운 젊은 검사원에게

밉보이면 안 될 것 같아

고양이털처럼 응답하는데도,

돌아오는 건

갯마을 겨울 마파람보다 쌩한 목소리.


긴 복도에는

유통기간 임박한 통조림처럼

불안한 숨소리 팽팽하고,

세파에 깊게 파인 어느 주름도

아직은

이승 떠날 채비 안 됐단다.


쉼 없이 중얼대는 노모와

스마트폰 삼매경인 중년 아들,

제각기

다른 염원 숨긴 망망대해 섬처럼,

은밀하게 멀어져 간다.


언제 왔을까?

바로 옆 자리엔

넉넉한 엄마품에 안긴 갓난아기

고운 눈동자 눈부셔

민망하게 웃었더니

단풍잎 작은 손 활짝 편다.


순결한 작은 손

차마 마주 잡지 못하고,

아무도 몰래

하늘 향해 모았던 염치없이 큰 손,

무릎 밑으로 슬그머니 숨겼다.


겁 없이 다가오는

30일 갓난쟁이 맑은 눈빛에

무딘 가슴 녹고 말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자꾸만 치솟았다.


" 아가야,

이 세상에 온 걸 축하해!

건강하고 씩씩하게 착하게 자라라.

근데, 세상이 그리 만만치 않단다.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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