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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와 기도

by 자겸 청곡

가까이 지내던 지인의 어머니께서 쓰러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새벽 찬바람 가르며 파지 주우러 나가셨던 어머니께서 잠깐 집에 들어오셨는데 바깥과의 온도 차 때문인지 갑자기 쓰러지시자, 119에 전화를 해서 구조 요원들이 도착할 무렵에는 정신이 들어 괜찮다고 그냥 가라고 하셨단다.

그래도 요원들은 일단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권했지만 끝내 거부하시더니 구조원들이 돌아가고 몇 시간 후에 다시 쓰러지셔서는 일어나지 못하고 혼수상태로 계시다 돌아가신 것인데, 그때 그분들의 말을 들었더라면 어머니는 바로 병원으로 이송돼 돌아가지 않으셨을 것이라는 생각에 경험을 갖춘 전문가들의 헌신적인 수고가 헛되지 않도록 따라주는 것에 중요성을 새삼 느끼면서

제목은 기억나지 않으나 엘리베이터에 갇힌 청년을 구하고 순직한 소방관의 딸과 그 소방관으로부터 구조된 청년의 운명적 만남을 그린 연속극을 떠올려보며 연속극 중에 인상 깊었던 ‘어느 소방관의 기도’가 마음 안에 큰 울림으로 남아 인터넷으로 찾아보았다.


신이시여, 제가 부름을 받을 때에는 아무리 뜨거운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주소서. 너무 늦기 전에 어린아이를 감싸 안을 수 있게 하시고 공포에 떠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 언제나 집중하여 가냘픈 외침까지도 들을 수 있게 하시고, 빠르고 효율적으로 화재를 진압하게 하소서.

저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케 하시고 제가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하시어,

이웃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게 하소서. 그리고 당신의 뜻에 따라 제 목숨이 다하게 되거든, 부디 은총의 손길로 제 아내와 아이들을 돌보아주소서.


미국의 어느 소방관이 화재 현장에서 미처 구출하지 못한 아이들로 자책감에 시달리며 쓴 글임이 알려지면서 지금은 전 세계 소방관들의 복무 신조처럼 사용되고 있다고 하는데 한 문장 문장이 모두 절절한 가슴에서 나오는 기도이기에 가슴을 파고든다.


이런 마음으로 달려왔을 119 요원이 나중에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가슴 아플까. 그때 더 강하게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했어야 되는 것은 아닐까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초등학교 몇 학년 때인지 교과서에서 빨간 불자동차가 달려가는 모습을 보고 소방관 아저씨가 멋있어 보여 이다음에 자라면 나도 소방관이 될 것이라고 다짐하는 이야기를 읽고 어린 나이에도 무척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기억 때문이었을까 어른이 되기 전에는 소방차가 지나가면 걱정스러움에 가슴이 쿵쾅이면서도 소방차 뒤에 달려가던 아저씨들의 뒷모습이 무척 멋있어 보였다. 아마도 어린 친구들에게 소방관은 위기에서, 재난에서 생명과 재산을 구하는 용감한 슈퍼맨이기에 유년기 만화영화에 소방관 이야기가 많지 않을까 싶다.


사실 만화 속 장면에서는 재난 구조팀의 활약상만 부각될 뿐 그 뒤에 가려진 고난과 아픔이 보이지 않으나 가끔 씩 뉴스에서 나오는 소방관들의 모습, 불길에 맞서느라 땀에 젖은 얼굴 속에 보이는 비장함, 마지막 한 명이라도 구하려는 애정 어린 발걸음이 있기에 구조받은 기쁨을 누릴 수 있음에도 작은 실수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욕하는 시민들의 비정함에 마음 아프다.


작은 실수로 시작된 산불이 경북 일대를 태우고도 완전히 진화되지 않아 고통을 이어가고 있는 오늘, 불길을 피하지 못해 희생된 분들의 안식을 빌고, 삶의 터전을 잃고 힘겨운 날을 보내는 해당 지역 주민들께 위로를, 자신의 생명을 내걸고 여전히 불 끄기에 전력을 다하고 계시는 소방관님들께 위로와 감사의 마음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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