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봤다니까

by 자겸 청곡

토요일에 하루 종일 외부 행사 스케줄이 있어 며칠 전부터

남편에게는 내가 없는 동안 손녀 책상 옆에 앉아서 숙제하는 것 봐주라고

손녀예게도 할아버지 말씀 잘 듣고 숙제 다 해놓고 놀아야 한다고 부탁을 했더니

둘 다 알겠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자신 있게 말을 해 아주 편한 마음으로 다녀왔다.


오자마자 손녀가 자랑스럽게 숙제도 다했고 가방도 챙겨 놓았다고 자랑하길래

큰 칭찬을 하고는 일요일 밤까지 책가방 챙기는 것도 학교 숙제도 신경을 쓰지 않고 지났는데

잠을 자다가 번뜩 혹시 제대로 안 되어있으면 어쩌나 싶은 마음이 들어

일어나서 손녀 가방을 뒤져 과제물을 살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숙제를 하기는 했는데 틀린 것이 여기저기다. 어휴.

알림장에 산수 몇 쪽까지 풀고 확인받아오기였으니

할아버지가 틀린 것을 가르쳐 고쳤어야 되는데 그대로 있었다.


손녀는 이미 잠이 들었으니 내일 아침 고쳐 보내야 하는데

아침부터 고치고 확인하려면 바쁘고 손녀가 짜증 날 것을 생각하니 화가 끓어

잠자는 남편에게 잘 봐달라고 했음에도 숙제가 틀린 것이 많은데 어떻게 그냥 두었느냐고 하자

"보라 그래서 옆에 앉아서 봤다니까"하고는 또 잠을 잔다.


앉아서 하는 것을 지켜보았으니 할 일 다 했다는 말인데

순간, 오래전 티브이에서 한 연예인의 남편이 아기를 봐달라고 했더니

지켜보고 있더란 말을 들으면서 그런 사람이 있구나 했는데

남편이 바로 그 사람 일 줄이야.


화를 참으며 남자의 언어 이해능력이 여자와 다른 것인지 네이버를 뒤졌다.

그러다가 어느 블로그에

대만에서 주방일 바쁜 엄마가 강아지에게 우는 아기 좀 가서 보라고 했더니

강아지가 아기에게 가서는 빤히 바라보고 앉자 울던 아기가 울음을 그치길래 안심하고 일을 계속하던 중에

갑자기 우는 소리가 들려보니

계속 바라보는 강아지가 부담스럽고 눈이 무서웠는지 다시 울음 터뜨렸다는데


남편의 언어 이해 수준이 강아지 이해 수준인 것인가 싶어지는 것이

웃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결국은 월요일 아침 틀린 것 찾아 고쳐 보내느라 바빴다.

이런 남자의 언어 인식의 차이를 알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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