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 잊히고 있는 앵그리버드
천안시외버스터미널 앞 조형물, 고헤이 나와 <매니폴드>
명상에 관해 진심인 어떤 교수님의 유튜브를 즐겨보는데, 라이브에서 신년명상회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예약 사이트에 들어가서 보니 살짝 비싼 금액도 그랬지만 200장 중 남은 것은 4장. 조용하고 소심한 성격인 나는 가고 싶다..... 하다가 또 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선지 예약하려고 로그인을 하려는데 잘 안되고 있던 터였다. 그때 채팅창에 들어온 질문을 읽어주시는데 나는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정지화면이 됐다.
"제가 많이 내성적인 편인데, 참여할 수 있을까요?"
"참여는 물론 가능하신데,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프로그램도 있어서 좀 힘드실 것 같습니다."
- 괜찮습니다. 용기를 내 보세요.
- 자꾸 도전해 봐야지요, 한번 와보세요.
그런 말이 아니어서 참으로 안도했다. 그래 힘들 거야. 서비스업이라 낯선 사람 대하는 건 많이 자연스러워졌지만 갑자기 자기소개라도 시키면 ( 이토록 참신한 상상력이여! ) 어떡하냐. 오지 말라는 그 말이 정말 감사하기까지 했다. 또다시 무대공포증을 피해서 저 멀리 도망갈 변명이 생긴 거니까.
그냥 오지 말래잖아. 오지 마.......
잊고 있던 명상회가 다시 떠오른 건 컨디션이 좋았던 어느 날이었다. 인터넷을 하다가 갑자기 생각이 난 거다. '취소한 사람이 한 명은 있지 않을까?'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13장이나 남아있는 것이 아닌가. 아무래도 명절연휴를 코앞에 둔 주말이라 그랬던 것 같다. 나는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이게 맞을까? 하면서도 엉겁결에 결제버튼을 눌렀다.
서울로 명상을 하러 가기 전날이 되자 예상대로 이런저런 걱정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다른 명상 앱으로 나름 혼자 꾸준히 해 왔던 터라 이번에 정말 좋은 기회니 교수님의 설명도 들으면서 여러 사람들과 한번 해보자... 큰 결심으로 결제는 했는데 저녁이 되자 예민해졌다. 큰아이를 마중 갔다 돌아오는 길에 별일 아닌 것으로 분위기가 잠깐 안 좋아지기도 했는데 아이는 몇 해 전 서운했던 일을 토로하기도 했다. 아마 수년 전 같으면 몇 시간 계속 냉전이었을 것이다. 다행히 정신이 바로 들었다. 화장실에서 긴 호흡을 몇 번 하고 안정을 찾은 후 아이에게 그때는 미안했다는 말을 전했다.
돌아보면, 아이들이 어릴 때는 전 남편과 엄청 싸워댔었다. 성격이 불같은 나르시시스트 남편에게 풀어내지 못한 감정들은 아이들에게 쏟아지곤 했다. 그러고는 울면서 후회하고 미안해했다가 다시 또..... 못나고 나쁘고 참 어리석었던 나였다.
수년 전, 우연히 어떤 다큐를 봤다. 화면에 모자이크 처리 된 남편이 인터뷰했다."전에는 엄청 싸웠었어요. 저는 욱하고 와이프는 예민하고 잔소리도... 그런데 명상인가 그걸 시작하고 나서 차분해지고 하더니 요즘은 거의 안 싸우고 사는 것 같네요." 역시나 모자이크 화면 속에 아들도 비슷한 대답을 했다. "엄마가 요즘에는 짜증도 안 내고, 잔소리도 거의 안 해요."
명상을 미리 시작했다면 나도 이혼을 피했을까? 그건 아닐 것 같다. 암튼.
명상이란 것이 사람을 변신시켜 주는 무언가가 있는 것 아닐까? 마찬가지로 싸움이 일상이었던 그때부터 관심이 생겼나 보다.
하지만 처음 시작할 때는 무작정 가만히 앉아 생각들을 없애버리는 것인 줄 알고 밀려드는 생각들에 흐지부지 그만둬 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다 한 5년 전쯤 명상전문 앱을 깔았다. 그때부터 명상이란 것을 한 달에 커피 한잔 값으로 시작하게 된 것 같다. 제대로 자리 잡기까지는 또다시 시간이 필요했다. 조용한 음성의 여러 선생님의 설명을 따라가며 호흡으로 돌아오고,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머무름을 아주 조금씩 알게 되었다. 내 경우엔 가만히 앉아서 하는 것보다 발바닥의 느낌에만 집중하면서 천천히 걷는, 걷기 명상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명상의 종류도 여러 가지라는 것. 숙달이 되면 일상의 움직임 속에서도 순간순간 알아차림이 되는..... 수십 년 전 틱낫한 스님이 여러 사람들과 들판 같은 곳을 아주 천천히 걷는 것을 TV에서 본 적이 있는데, 이상하게만 보였던 그 행동이 바로 걷기 명상이었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됐다.
많이 불안했는지 꿈자리도 사나웠다. 아침에 깼을 때는 신기하게도 컨디션이 많이 나아져서 서울까지 갈 만큼 충분한 기운이 느껴졌다.
나쁜 습관이 있는데 외출할 때마다 막판에 바쁜 것이었다. 초반에는 여유 있게 느긋함을 즐기다가 아니 게으름을 피우다가 시간이 닥쳐서는 허둥대곤 하는. 그런데 그날은 아주 천천히 현관문을 닫고 나왔고, 바로 택시를 잡아탄 덕분에 여유 있게 터미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시골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높디높은 빌딩의 도시 풍경은 언제나 낯설다. 빌딩이나 도로에는 삭막, 경쟁, 열심히, 쓸모 있음, 1등...... 그런 단어들이 건조하게 새겨져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지하철 역에서 도보 5분 거리라는데,
다 와서도 비슷한 건물들 사이에서 잠시 헤맸다.( 집안 대대로 길치... ) 그러다 지하 1층, 미리 와 있던 몇몇의 사람들과 입구에 걸린 커다란 현수막을 발견했다. "신년 명상회" ' New Year Meditation Party' 그 흘림체 영어문구가 얼마나 반가웠던지. 나는 조금 일찍 도착한 편이라 운 좋게 세 번째 줄에 앉게 되었다. 신발을 벗고, 설레는 마음으로 매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 글이 길어져서, 다음 글로 이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