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다르게 거동이 불편해진 부모님의 모습을 새삼 느낀다. 작년부터 공부한답시고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 얼마 전 휴가 중에 부모님을 모시고 가까운 곳에 다녀왔다. 오전에 둘째 아이 교정치과 상담을 하고 대형마트에서 쇼핑한 후에 오후 세 시가 돼서야 부모님께 갈 수 있었다. 잠시 들린 것뿐인데도 마음은 시간에 쫓기듯 여유가 없었다. 나와 아이들을 위한 시간은 충분히 마음의 여유를 가지는데, 부모님을 위한 시간은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운전을 못 하는 부모님은 우울할 때 훌쩍 어디론가 다녀오는 게 어려웠다. 게다가 어머니는 허리 수술을 하셔서 오랫동안 걷거나 앉는 게 불편하셨고, 아버지는 오른쪽 눈이 거의 실명 상태이고 나머지 한쪽도 잘 안 보인다. 사정이 이러하니 집에만 머무는 것이 답답하시라 생각한다. 자식 놈은 자주 찾아오지도 않고. 많이 서운하셨을 텐데 내색하지 않으셨다.
결혼 전에는 두 분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많이 다녔다. 추억이 많다. 지금도 가끔 추억을 되새긴다. 결혼 후 아이가 생기고 나니 부모님 하고 여행은 점점 횟수가 줄어들었다. 가끔 못 모시고 다녀서 죄송하단 말씀을 하면 예전에 많이 데리고 다녀서 괜찮다고 한다. 아이들이 크면 모시고 다닐 수 있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부모님을 더 못 모시는 나를 본다.
두 분을 모시고 평소 자주 가는 궁평항 방조제를 지나 제부도를 거쳐 탄도항까지 갔다. 탄도항에서 자주 가는 회센터에서 칼국수를 한 그릇 먹고 다시 집으로 오는 여정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있는 시간에 나는 왜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두 분을 모시고 집으로 오는 길에 속도를 높여 곡예 운전을 하고 왔다. 하루밖에 남지 않은 휴가 일정과 휴가 기간에 하려고 했던 과제를 못 했다는 것이 불편했다.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는 나를 알아챘지만, 여전히 마음은 조급했다.
나이가 들고 쇠약해진 부모님과 보내는 시간보다 나를 위한 시간이 더 가치 있고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마음은 달랐다. 밤 10시가 넘어서 공원에 나와 걸으면서 우연히 가수 양희은님의 '그럴 수 있어' 세바시 강연을 청취했다. 젊어서 아이들 기르느라 정신없다가 아이들 다 떠나보내고 고향으로 돌아오려는 시간이 되었을 때가 되어서 불편하지 않은 상태로 친구들을 만나는 게 과연 몇 번이나 더 만날 수 있겠느냐는 양희은 선생님의 말씀에 마음이 울컥했다. "과연 나는 몇 번이나 부모님을 모시고 다닐 수 있을까?"
소중한 사람과 사는 동안에 얼마나 함께 있을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마음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많이 남아 있을까?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소중히 여길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것은 중요하다. 마음껏 표현하고, 마음껏 사랑하라. 그리고 있는 힘껏 애써야 한다. 그래야 조금은 후회를 덜 할 수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우리의 인생을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