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책 한 권을 손에 집었다. 글밥 김선영 작가의 책 <따라 쓰기만 해도 글이 좋아진다>이다. 이 책은 필사 문장 30개를 소개하고 있다. 필사하면 글쓰기 기술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체화된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러면 내 글을 쓸 마음이 생긴다고. 2023. 11. 14. 첫 필사를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못 쓰는 글씨이지만 용기를 내었다. 그 이후로 매일 필사한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필사하다 보니 글씨를 못 쓰는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글씨를 이쁘게, 보기 좋게 쓰고 싶은데, 몇 번을 써봐도 삐뚤빼뚤 영 아니었다. 사실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것도 민폐이다. 내 글씨를 보는 사람들의 눈이 피곤할 것 같아 미안했다. 꾹꾹 눌러써도, 힘을 빼고 써도 똑같았다. 마음이 반듯하지 않아서 그런 건지 의심도 했다.
평소 책을 읽다 마주하는 좋은 문장을 기록했다. 필사 말고 키보드로 어딘가에 적어 놓았다. 에버노트, 노션, 마인드맵. 여기저기에 명언, 좋은 문장, 좋은 글이라는 제목으로 차곡차곡 쌓여 있다. 문제는 다시 보질 않아서, 어떻게 하면 모아 놓은 문장을 잘 정리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때 여기저기가 아닌 하나의 저장소에 넣는 방법을 택했지만, 책처럼 손에 잡히지 않으니, 눈으로 확인하려면 프로그램을 여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전자책보다는 그냥 책이 좋다. 손에 잡히고, 내가 보고 싶은 부분을 넘겨서 볼 수 있다. 책장을 넘기는 대로, 손에 잡히는 대로 읽을 수 있지만 전자책은 그냥 책만 못하다. 필사 노트가 전자 기록보다 다시 보는 데 편하다. 사실 기록이라는 것은 다시 보기 위함이다. 다시 보기를 해야 내 안에 깊이 넣을 수 있고, 내재화된 지식을 다시 꺼낼 수 있다.
필사든, 글쓰기든 근육과 같다. 필사하다 보니 이제 하지 않으면 찜찜하다. 글쓰기도 일주일 만에 뭔가를 쓰려면 안 써진다. 걷기도 습관처럼 매일 걷다 보면 몸이 먼저 움직인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도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기 시작하면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일어난다. 뭐든 21일 동안 반복하면 습관화가 되기 시작하고, 66일 동안 반복하면 무의식적인 습관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길을 걷다가 불현듯 떠오른 글감을 바로 쓰지 않고 뒤로 미루면 떠오른 순간의 영감이 하늘로 날아간 듯 떠오르지 않는다. 떠오른 순간 바로 메모하고, 메모한 것을 모아서 글을 쓰는 것은 운동하면 생기는 근육과도 같다.
한 편의 글을 완성한다는 것은 뿌듯한 일이다. 글은 세상에 없던 무언가를 창조하는 일이다. 남의 글만 읽다가 내 글을 써냈을 때 나도 해냈다는 성취감으로 다가온다. 메시지를 세상에 전달하고, 조금은 좋은 영향력을 미쳤다고 생각될 때 살아 있음을 느낀다. 처음 쓴 글과 현재 글을 비교해 보면 성장한 느낌도 받는다. 필사는 그런 면에서 글이 더 글답게 만드는 좋은 방법인 듯하다. 책 한 권도 제대로 읽지 못했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한 권을 보려고 노력하고 미력한 글을 쓸 수 있었던 이유는 좋은 글, 문장을 읽고, 써본 결과라고 생각한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서서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라." 아이작 뉴톤의 말처럼.
누군가 좋은 사람이 되는 방법을 묻는다면 '필사를 해보세요'라고 권하고 싶다. 글을 쓰면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게 된다. 좋은 글을 쓰려면 먼저 글 쓰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말한 대로 행동이 따라가듯, 쓴 글대로 행동하게 된다. 글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더라도 일치하는 삶을 살려고 애쓰게 된다. 그런 면에서 필사는 여러모로 유용하다. 책에서 만나는 좋은 문장을 흘리지 말고 차곡차곡 담아서 더 맛있게 버무려 세상에 내놓는 방법, 참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