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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석민 Mar 05. 2023

행복을 결정할 수 있을까

행복을 의미와 가치에서 나타난다

  일요일 아침 일주일 동안 못 잔 잠을 더 자는 것도 중요하다. 주중에 5시간도 채 못 자니, 주말이라도 채워야 살아갈 수 있으니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 씻고, 늦은 아침을 먹고, 살기 위해 산책을 갔다. 주말에 아침 햇살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걸으며 새들이 종종 대며 물 위를 걷는 모습도 보고, 햇볕을 쬐기 위해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본다. 책을 들고 물가에 앉아 책을 보는 노인의 모습이 무척이나 멋지다. 잔잔하게 물결이 흔들리고 그 위로 햇빛이 반짝 반짝이는 물을 보면서 책을 읽는 여유로움이 행복해 보인다.


  일요일 내내 책상에 앉아 있었다. 브런치에 쓴 글도 고쳐보고,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네이버 블로그 등에 쓴 글을 정리해 보기도 한다. 이 책 저 책 수많은 책을 뒤져보기도 한다. 책의 물상은 중요하다. 책이 책꽂이에 꽂혀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어떤 책이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 아는 것은 책을 다시 끄집어내어 보는 힘이 된다. 디지털 서재에 있는 책들은 눈에 보이지 않아 다시 읽으러 디지털 속으로 들어가지지 않는다. 종이책은 눈에 보이면 일단 펴 보고 읽게 된다. 몇 번을 다시 읽어낸 그 책은 이제 온전히 내 것이 된다. 짧게 짧게 본 책의 내용은 더 오래 기억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짤막하게 읽어낸 책을 다 읽게 되면 전체를 얽을 수 있다. 초역 니체의 말에서 제일 안 좋은 독자가 책의 전부를 보질 않고 짧게 읽은 것을 갖고 해석하거나 왜곡하는 독자가 가장 안 좋은 독자라고 쓰여 있다. 뜨끔했다. 나를 가리키는 말처럼 들렸다. 전체를 꼭 다 알아야 하나? 왜곡하면 안 되겠지만 짧은 글을 통해 내 경험과 지식과 견주어 해석하면 되는 것 아닌가? 지금은 그리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나 어떻게 생각하게 될지는 모르겠다.


  최인철 교수의 저서 <프레임>에서 '행복을 결정하는 것' 주제의 글을 봤다. "행복은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의 문제다. 행복은 대상이 아니라 재능이다." 헤르만 헤세의 글이다. 그냥 하루를 되는대로 살아내는 사람과 의미를 담아 살아내는 사람은 분명 차이가 있다. 책을 인용하면 "다시는 사랑하지 못할 것처럼 사랑하라.", "늘 마지막으로 만나는 것처럼 사람을 대하라."라는 글을 읽으면 삶을 새로운 방식으로 대하게 된다. 삶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사람은 행복을 결정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이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말이 떠오른다. 세바시 강연 중 김민식  MBC PD가 했던 주제다. 큰 집으로 이사를 하거나, 새로운 차를 갖거나, 승진을 하는 것은 기분이 좋은 일이다. 기분 좋은 날을 일주일도 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다. 다시 최인철 교수의 <프레임> 책을 인용해 보자. 환경미화원이 있다고 하자. 먼지를 뒤집어쓰고 냄새나는 것들을 다루며, 거리를 치우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어떤 환경미화원이 힘든 일을 하고 있지만 항상 웃으면서 행복하게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표정이 밝고 웃는 얼굴이기에 이유가 궁금했다고 한다. 힘든 일을 하는데 어떻게 밝은 표정을 지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환경미화원은 "나는 지금 지구의 한 모퉁이를 청소하고 있다네" 하고 답했다고 한다. 표정이 안 좋을 이유가 없었다.


  정지우 작가의 페이스북 글에서 '행복한 일'에 대한 글을 봤다. 정지우 작가의 글을 인용해 보면 "일 자체의 속성에서 '행복'을 찾으라고 말하는 건 무언가를 은폐하고 있다고 느낌을 준다"라고 말한다. "일을 해나갈 때 그 일이 주는 행복감에 집착하기보다는 그 일의 가치에 고민을 두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막연히 일에서 행복을 찾기보단 일에서 가치를 찾으라는 시각이다. 일이 곧 행복이라는 말보다 일에서 가치를 느낄 때 행복이 찾아오는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최인철 교수의 말이나, 정지우 작가의 글이나 모두 의미와 가치를 찾을 때 행복을 가져올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일을 할 때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내가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고 여기고 일을 한다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이겠는가. 그 누구도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존엄함이다. 타인의 기준과 잣대, 그리고 사회가 결정지어 놓은 틀에 맞추려고 하지 말고, 내가 만들어 놓은 존엄한 기준과 잣대로 일과 삶에서 의미와 가치를 찾아보자. 누구에게도 당당하게 다가설 수 있고 자신에게도 힘이 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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