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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석민 Mar 29. 2023

삶의 높이에 대한 단상

최진석 교수님 <노자와 장자에 기대어>를 읽고

일에서 일상에서 매 순간 고민하는 자세를 취한다. 똑같이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일터에서도 과거에 만든 문서를 그대로 작성한 적이 없다. 새롭게 고친다. 고쳐야 직성이 풀린다. 과거의 것은 이미 생명력을 잃어버렸다. 시간이 흘렀으면 변해야 한다.


안타까운 점은 주변에 이런 수고로움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 과거의 것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수고롭기 때문이다. 바꾸지 않는 문서들을 볼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누르며 고친다. 어쩌면 고치는 것에 자존심이 상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자존심이 상한다면 고치지 못하도록 단단히 해서 문서를 작성하면 그만이다. 일터에서 내 시선의 높이는 높다. 조사하나, 문장하나 허투루 보려 하지 않는다. 읽고, 고치고, 다시 쓴다.


생각이 중요한 이유는 내가 가진 생각의 높이 이상을 살 수 없기 때문이라는 최진석 교수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딱 그만큼만 생각할 수 있다. 기존의 관념을 넘어서는 것은 쉽지 않다. 생각은 일정한 높이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생각의 높이가 높아야 삶의 시선이 높다. 생각의 수준이 상승하지 못하고 머물러 있다 보니 그 이상을 볼 수 없다. 익숨함에 불편함을 못 느낀다. 불편함을 느껴야 예민해진다. 모든 일에 그까짓 것이라고 말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은 생각의 수준이 그것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대수롭지 않게 느끼니 대충대충 보는 것이다.


대충대충 살아도 살아가는데 굳이 시선의 높이를 높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나는 질문하고 싶다. 평생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고 사는 삶을 살고 싶은가? 내가 모르는 것조차 질문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은가? 내 삶이 어디를 향해가는지 모른 채 살고 싶은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질문해 보고 답하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한다. 열정은 질문에서 나온다. 나에 대한 질문에서 열정은 시작된다. 불편함을 느껴야 하고 싶은 것이 생긴다. 불편함을 불편한 채로 살아가지는 말자. 열정은 시간의 유한성을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 죽음을 생각한다면 허투루 시가을 보내지는 못할 것이다.


질문해 보자. 내가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향해 가고 있으며, 무엇을 원하는지를 말이다. 잠시 마음이 무뎌질 때  무뎌진 마음을 추스르고, 힘들 때 잠시 쉬었다 가더라도 뚜렷한 지향점을 갖고 있다면 웃으면서 무거운 짐을 가벼운 마음으로 끌고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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