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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 생각

진정한 시대의 영웅

by 김정룡

2024년

김민기가 세상을 떠났다

2018년

그와 손석희 앵커와의

마지막 방송 인터뷰를 본다


그는 기력이 약해진 듯 보이지만

그의 말 하나하나에는

전에 없던 무게가 실려있다


한국 저항문화의 상징이었던 그는

사실 저항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저 좀 더 따뜻한 세상을 바라며

삶이 힘든 사람들을 도왔다


그는 ‘학전‘에서 공연예술의 아름다움과 완벽성에 몰입했고

예술인이 제대로 대우받는 환경을 만들고자 했다


그는 유명인이 될 수 있었지만

‘뒷것’으로 남아 그러지 않았다


그는 순수함에 중독된 사람 같았다

그는 돈 안 되는 어린이 극에 정성을 다했다

그리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공연장에 울릴 때

행복해했다


유명세가 가져다주는

온갖 부자연스러움을

싫어했다

그는 그의 예술혼으로

사람들에게 왜 저항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었다


인간의 마음속에

자유와 희망을 갈망하는

끊이지 않는 에너지가 있음을

노래로 알려 주었다


차갑고 어두운 긴 밤을 지새우고 나면

자연과 새벽의 기운이

진주보다 고운 아침이슬을 맺게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그는 끝까지

인간다움을 지켜내기 위해

자신의 삶과 명예와 부를

손해 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인간의 욕망을 극복한

그는 세상에서

가장 용기 있는 예술인이었다




독재와 군사정권을 겪어내던 나의 청년 시절, 김민기의 노래 가사를 대하고, 처음으로 꺾이지 않는 강력한 무언가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나도 그의 노래 가사처럼 자유와 양심을 지키기 위해 저항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노래와 시는 누구를 때리지도, 비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엄혹한 시절에 한가닥 희망을 멜로디와 노랫말에 담을 뿐이었습니다.


저는 김지하 작시, 김민기 작곡의 '금관의 예수'라는 노래를 좋아합니다.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아,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어디에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 무얼 찾아 헤매이나, 저 눈, 저 메마른 손길.....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이 곡이 주는 암울한 현실 인식은 공감과 위로를 주었습니다. 흐르는 멜로디는 당시의 어두운 사회 분위기를 그대로 담았지만, 절대로 좌절하지 않는 강력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고 있었습니다. 마음속 깊은 곳, 희망으로 절망을 이겨내는 저항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김민기가 갔습니다. 그의 꺾이지 않는 희망이 '아침이슬'이라는 노래에 녹아들었습니다. 청년들은 길거리에서 반독재를 외칠 때마다 뜨거운 가슴으로 노래 불렀습니다. 긴 밤을 지새워야만 영롱한 아침이슬을 볼 수 있듯이, 그의 시는 지치고 두려운 마음에 용기를 주고, 위로하고, 흥분시키기까지 했습니다. 저만이 아니라, 문학적 표현에 문외한이던 모든 사람들도 가사를 통해 그 감정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는 천재 작곡가이자 작사가입니다.


모든 세상의 천재가 그렇듯이, 그 자신은 화려하거나 풍족한 삶을 살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그런 삶을 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연출가로 벌은 돈을 수익이 안 되는 어린이 극에 투자하고, 아이들이 그의 작품에 행복해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아이들의 미소와 웃음소리에서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던 희망과 평화의 기운을 느꼈을 것 같습니다. 순간이 그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김민기와 청년기를 같이 보낸 중노년에게는 그 순수함과 강한 저항의 에너지가 그립습니다. 어느 세대에도 개인의 인격과 자유를 뺏으려는 어떤 것도 정당화되어서는 안 됩니다. 김민기가 남긴 정신적 유산이 2024년 지금에도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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