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곳(11)

살아있는 게 어디냐

by 마짝꿍텝
"나는 그 말을 듣고 천장을 한참 바라보다가, 아주 작게 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뇌에 큰 손상이 없다'는 그 말 하나가 자꾸만 아득해 지는 나를 간신히 붙들고 있었다. 그 때 병실문이 우당탕 하며 열렸다. "



“형!!!!!!!”


제일 먼저 뛰어 들어온 건 강현이었다. 녀석은 가방도 벗지 않은 채 숨을 헐떡이며 내 침대 옆으로 달려왔다. 한참 내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내가 눈을 뜨고 있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겨우 숨을 몰아쉬었다.


“형, 정신 들어?”

“어…”


목소리를 내보려 했는데 목 안이 바짝 말라 있었다. 겨우 한 글자 내뱉는 데도 가슴팍 어딘가가 찌릿하게 아팠다.

강현은 울 것 같은 얼굴로 내 손등 위에 자기 손을 올렸다.


“형, 괜찮아?”

“안 괜찮으니까 병원에 있지…”


농담처럼 말했는데도 내 목소리는 생각보다 힘이 없었다. 강현은 피식 웃지도 못하고 입술만 꾹 깨물었다. 평소 같으면 뭐 하나 걸렸다 싶어 놀려댔을 녀석이 그렇게 조용한 걸 보니, 내가 생각보다 더 크게 다쳤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뒤 이어 아버지가 들어오셨다.
와이셔츠 소매는 한쪽만 조금 접혀 있었고, 넥타이는 느슨하게 풀어져 있었다. 급하게 일하다 말고 나오신 티가 났다. 얼굴은 평소처럼 무덤덤했지만, 눈 밑이 눈에 띄게 꺼져 있었다. 아마 제대로 못 주무신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병실문을 조용히 닫고 내 침대 발치 쪽으로 걸어오셨다. 그러고는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내 오른쪽 다리 쪽을 내려다보셨다. 깁스와 붕대와 낯선 철심들에 감싸인 다리는 내 것이면서도 내 것 같지가 않았다.


“정신이 드냐?”

“네…”

“몸은 좀 어떠냐.”

“그냥… 아파요.”


아버지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셨다. 혼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목소리가 낮고 조용했다.


“겁나게 타더라, 자전거를.”


그 말에 나는 눈을 살짝 내리깔았다. 변명할 말이 없었다. 노래방 생각에, 약속 시간에 늦을까 조급한 마음에, 나는 내가 달릴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페달을 밟았었다. 그 결과가 지금 이 꼴이었다.


“죄송해요.”


아버지는 바로 대답하지 않으셨다. 침대 난간에 손을 얹고 내 얼굴을 한 번, 다리를 한 번 번갈아 보시더니 아주 작게 한숨을 쉬셨다.


“살아있는 게 어디냐.”


그 말은 혼내는 말도, 위로하는 말도 아닌 것 같았다. 그저 아주 먼 데서 겨우 끌어올린 진짜 말처럼 들렸다.

엄마는 내 손을 꼭 붙들고 계셨다. 손끝이 조금 떨리고 있었지만, 아무 말은 하지 않으셨다. 강현은 눈치를 보며 내 침대 옆을 서성거렸다.

그때 또 병실문이 빼꼼 열리더니 커다란 그림자가 하나 안으로 들어왔다.


“실례합니다…”


자라였다.

녀석은 평소처럼 어깨도 크고 덩치도 컸지만, 이상하게도 그날만큼은 문턱 앞에 쭈뼛 서 있는 모양이 꼭 덩치만 큰 초등학생 같았다. 손에는 편의점 봉지가 하나 들려 있었다. 포카리스웨트, 초코파이, 바나나우유, 그리고 왜 샀는지 모를 새우깡까지 들어 있었다.


“새우깡은 뭐냐?”


내가 먼저 말하자 정후가 멍한 얼굴로 봉지를 들어 보였다.


“그냥… 먹으라고.”

“나 지금 새우깡 씹을 수 있을 것 같냐?”

“아… 그건 내가 먹으려고 샀나 보다.”


그 말에 강현이 참지 못하고 피식 웃었다. 엄마도 잠깐 입꼬리를 누르시는 게 보였다. 정후는 머리를 긁적이며 침대 가까이 다가왔지만, 한동안 나를 똑바로 못 쳐다봤다.


“야…”

“왜.”

“미안하다.”


나는 바로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다. 노래방으로 오라고 한 것도 정후였고, 내가 그렇게 정신없이 달린 이유도 결국 그 호출 때문이었다. 물론 진짜 잘못은 내가 사고가 나도록 앞뒤 안 보고 밟은 데 있었지만, 지금 정후 얼굴을 보니 녀석은 그걸 머리로는 알아도 가슴으로는 도저히 못 넘기는 눈치였다.


“니가 차에 치었냐?”

“아니…”

“니가 나 밀었냐?”

“아니…”

“그럼 됐어.”


정후는 여전히 못 믿겠다는 얼굴이었다. 맨날 다른 애들한테 욕하고 어깨빵하고 다니는 놈이 병실에선 꼭 죄 지은 개처럼 서 있었다.

엄마가 정후를 보며 물으셨다.


“친구니?”

“아, 예. 안녕하세요.”


정후가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허리가 거의 반으로 접혔다. 그걸 본 나는 괜히 웃음이 나왔다가, 곧바로 갈비뼈 쪽이 욱신거려 얼굴이 찌푸려졌다.


“엄마, 얘는 문정후라고… 제 친구예요.”

“같은 반 친구야?”

“네, 1학년 때부터 친했어요.”


나는 잠깐 숨을 골랐다. 생각보다 말 몇 마디 하는 것도 힘이 들었다.


“신안 쪽 자라도라고 작은 섬 있는데, 거기 출신이라 별명이 자라예요.”

“자라?”


엄마가 살짝 웃으셨다. 정후 귀가 금방 빨개졌다.


“공부도 제법 하고요. 경찰대 간다고 맨날 그래요. 싸움은 좀 잘하는데, 나쁜 애는 아니에요.”

“야.”


정후가 작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너무 솔직하게 말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저한테는 잘해요.”


아버지가 그 말을 듣고 아주 잠깐, 정말 잠깐 입가를 풀었다.


“와줘서 고맙다.”


정후는 다시 한 번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아버지는 손목시계를 보시더니 엄마를 향해 조용히 말씀하셨다.


“나 이제 그만 가봐야겠어.”

엄마가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


“지금요?”

“오늘 오전 수업은 아예 다 빠졌고, 더는 비우기는 좀 그래서.”


그 말에 병실 안 공기가 잠깐 무거워졌다. 하지만 누구도 아버지를 붙잡지 못했다. 아버지는 원래 그런 분이었다. 무너지더라도 해야 할 일은 하고,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얼굴로 나가는 사람.

아버지는 내 쪽으로 한 걸음 다가오셨다. 손을 뻗었다가 잠깐 멈추시더니, 결국 이불 위에 드러난 내 왼손등만 조심스럽게 한 번 눌렀다.


“쉬어라. 괜히 이런저런 생각 많이 하지 말고.”

“네…”

“퇴근하고 다시 오마.”


나는 고개를 아주 조금 끄덕였다.

아버지는 엄마를 한 번, 강현을 한 번 바라보고는 아무 말 없이 병실 밖으로 나가셨다. 문이 닫히고도 한동안 와이셔츠 자락 스치는 소리 같은 게 귀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강현도 엄마 손에 이끌려 “나도 있다가 또 올게” 하며 마지못해 병실을 나갔다. 정후도 한참을 더 있다가 “내일 또 올게” 하고 돌아갔다. 병실에는 나와 엄마 둘만 남았다.


병실 안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복도에서 카트가 지나가는 소리, 멀리서 들리는 호출 벨 소리만 희미하게 들릴 뿐이었다.

엄마는 내 침대 옆 의자에 다시 앉았다.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내 손등만 조심조심 쓰다듬고 계셨다. 그러다 이불 끝을 반듯하게 펴고, 베개 높이를 괜히 살짝 만지고, 물컵 위치를 조금 옮겼다. 무슨 말을 하려는 사람처럼 보였는데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정현아.”

“응…”

엄마는 내 얼굴을 한 번 보고는 시선을 피했다.


“아까 아빠…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았지?”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늘 그런 사람이었다. 속이 어떻든 겉으로는 별일 아닌 것처럼 서 있는 사람.

“응…”


엄마는 잠깐 입술을 깨물더니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는 안 그랬어.”

나는 천장을 보던 눈을 엄마 쪽으로 돌렸다.


“너 수술실 들어갈 때 말이야.”

엄마의 목소리가 조금 느려졌다. 그 장면을 다시 보고 있는 사람처럼.


“수술실 문 닫히고 나서도 네 아빠는 한참 그냥 서 있었어.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손만 꼭 쥐고.”

나는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나는 또 당신 성격에 그냥 그렇게 참고 계신 줄 알았지. 원래 사람들 앞에서 감정 티 잘 안 내시잖아.”

그건 맞는 말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어릴 때 넘어져 무릎이 깨져도 “괜찮다” 하고 저녁에 툭 하고 약봉투를 사다 던져주시던 사람, 시험을 망쳐도 큰소리치기보다 조용히 책상 앞에 앉혀 놓고는 아무말도 하지 않는 분이었다. 좋아하는 것도, 화나는 것도, 속상한 것도 대부분 얼굴에 많이 안 드러내는 사람.


“근데…”

엄마는 거기서 잠깐 말을 멈췄다.

그러고는 내 손을 조금 더 세게 잡았다.


“간호사가 보호자분들 잠깐 비켜달라고 하니까, 아빠가 갑자기 복도 벽 쪽으로 가시더라.”

내 목이 저절로 마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는 거기서… 그냥 주저앉으셨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모습은 아무리 상상하려 해도 쉽게 그려지지 않았다. 나한테 아버지는 늘 서 있는 사람으로만 기억됐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화가 났을 때도, 피곤할 때도, 아버지는 어떻게든 서 있었다.


엄마는 거의 속삭이듯 말을 이었다.

“나는 그때 진짜 놀랐어. 네 아빠가 그렇게 무너지는 걸 처음 봤거든.”


병실 안 공기가 묘하게 얇아졌다. 숨을 쉬는 것조차 조심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더라.”

엄마가 말했다.


“하나님… 차라리 제 다리를 가져가세요. 정현이 다리 대신 제 다리를 가져가시고, 우리 애는 다시 걷게만 해주세요…”

내 눈앞이 순간 하얘지는 것 같았다.


엄마는 눈시울이 금방 붉어졌다.

“계속 그렇게 기도했어. 몇 번이나. 목소리도 잘 안 나오는데… 계속…”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차라리 제 다리를 가져가세요.

그건 내가 아버지 입에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종류의 말이었다. 아니,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아버지다운 말인지도 몰랐다. 본인은 어떻게 되어도 좋으니 자식만 다시 걸었으면 좋겠다는 말. 그런 말을, 평생 무뚝뚝하게만 살던 사람이 수술실 앞 바닥에 주저앉아 하고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엄마는 결국 눈물을 훔쳤다.


“평소엔 기도도 짧게 하시고, 교회도 가끔 안 나가시는 분이… 그렇게 바닥에 앉아서 네 다리 살려달라고…”

나는 천장을 바라봤다.


사고가 나기 전까지 내 다리는 그저 내 것이었다.
뛰고, 자전거를 타고, 유도를 하고, 버스를 쫓아가고, 친구들이랑 싸울 때 버티고, 그런 데 쓰는 것.
있으면 당연한 것이고, 없어질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것.

그런데 누군가는 그걸 위해 자기 다리를 내놓겠다고 빌었다.
그게 내 아버지였다.


목 안쪽이 뜨거워졌다. 울고 싶어서인지, 아니면 너무 이상해서인지 잘 모르겠다. 사고 순간보다도, 수술하고 깨어난 직후보다도, 엄마가 지금 들려준 그 말이 더 견디기 어려웠다.

“아빠가… 진짜 그랬어?”


내가 겨우 묻자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몇 번이나.”


몇 번이나.

한 번 울컥해서 튀어나온 말이 아니라, 몇 번이나.
그 말은 내 가슴 어딘가를 아주 천천히 파고들었다.

병실 밖에서 누군가 카트를 미는 소리가 멀리서 지나갔다. 철컥철컥 하는 바퀴 소리가 괜히 크게 들렸다.

나는 오른쪽 다리 쪽을 보려 했지만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여기저기가 아파서 포기했다. 대신 이불 아래 감춰진 다리의 무게를 상상했다. 이제 전처럼 뛰지 못할 수도 있는 다리. 아버지가 자기 다리 대신 살려달라고 빌었던 다리.


엄마가 내 이마를 천천히 쓸었다.

“정현아.”

“응…”

“너는 그냥 살아만 있어도 돼. 다른 건 나중에 생각하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살아만 있어도 된다는 말이 위로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었다.

다만 한 가지는 알 것 같았다.


사고가 나기 전까지 나는 다리가 그저 달리고, 차고, 버티고, 도망치는 데 쓰는 것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자기 다리를 내놓고서라도 내 다리를 살려달라고 빌었다.

그날 이후로 내게 다리는 전과 같은 것이 아니게 되었다.



(다음에 계속)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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