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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10)

사고

by 마짝꿍텝
코너를 조금 급하게 돌던 나는 마찬가지로 맞은편 골목에서 급하게 우회전해서 오는 차량을 보고 급하게 왼쪽으로 핸들을 끝까지 돌리고 브레이크를 잡았다. 끼이이이 이 이이익~ 굉장한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야! 이 씨벌롬아! 뒤질라고 환장했냐?" 검은색 세단의 차창이 채 다 내려오기도 전에 몸을 반쯤 창밖으로 급하게 내민 채 차량 운전자가 소리를 빽 질렀다. 나도 서두르긴 했지만 차량도 살피지 않고 빠른 속도로 골목을 돌아 나온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지금 잘잘못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왼쪽 발목을 살짝 접질렸는지 아릿한 느낌이 올라온다. 손목시계를 보니 이제 8시까지 3분 밖에 안 남았다.


"죄송합니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하고 다시 자전거를 고쳐 잡았다. 본넷 위에 은색 새가 달린 검은세단은 짜증을 내듯 부와아아앙 소리를 내고 출발했고, 나는 길만 건너면 노래방이었기 때문에 근처 전신주에 자전거를 세우고 자물쇠를 걸었다. 잠깐 병원에 가는게 좋지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사실 마음은 벌써 노래방으로 달리고 있었다. 짧은 고민 끝에 몸을 노래방으로 옮겼다. 길 건너 간판에 "배트맨 노래방"이라는 글씨 아래로 노란 바탕에 검은 배트맨 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횡단보도는 멀고, 노래방까지 가는 직선거리는 가까웠다. 마침 양쪽에 차가 없다는 걸 확인한 나는 노래방을 향해 몸을 던지듯 도로를 건넜다. 빵~~~ 하는 경적소리가 귓전을 때렸고 나는 순간, 시간이 조금 느려지는 것 같았다. 나를 향해 달려오는 차량의 헤드라이트가 내 눈을 정면으로 찔렀고, 다음순간 나는 몸이 공중으로 던져진 듯 했고 바닥에 몸이 떨어지는 느낌을 받은 후 나는 잠시 정신을 잃었다.


얼마가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사고 직후였을 것이다.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고, 나는 바닥에 누워있었는데 다리쪽 감각이 이상해서 고개만 까딱해서 겨우 봤더니 왼발이 있어야 할 방향이 아니라, 어딘가 엉뚱한 방향으로 돌아가 있고, 상체를 조금 움직여보려 했는데 전에 단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통증이 밀물같이 나를 덮쳤다. 아마 갈비뼈가 죄다 부서진 모양이었다. 재밌는건 그 순간 나는 내 발과 다리를 보면서 '아, 이제 유도는 그만해도 되겠네?'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이후 구급대원들이 들것을 들고 달려오며 군집해 있는 사람들에게 비켜달라고 소리치는 장면이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다시 내가 정신이 돌아왔을 때는 무려 열 한 시간이 넘는 긴 수술을 받고 난 다음이었다. 눈을 떴을 때 엄마가 옆에 고개를 숙이고 울고 계시다가 눈을 급하게 훔치시며 내 얼굴을 어루만지시고는 "정현아, 정신이 들어? 엄마야."라고 말씀하시는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야? 병원?" 낯선 풍경을 확인한 나는 가장먼저 내 위치를 확인했다.


"응" 방금 전까지 울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는 엄마의 습기어린 목소리에 미안한 마음이 불쑥 올라왔다. 담담한 목소리를 가장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듯한 엄마의 어깨가 파르르하고 떨리는게 보였다.


"아빠는?"


"출근하셨지 어제 여기서 밤 새 수술방 앞에서 너 기다리시고, 너 수술 마치고 나온거 보고나서야 출근하셨어."


"아..."


"좀 어때?"


"몸에 힘이 안 들어가. 나 어디를 어떻게 다친거야?"


"음..."


"나 많이 안 좋아?"


"응... 너 전신골절에 오른쪽 다리가 심하게 부러져서 일단 핀을 여러개 박고 수술을 하긴 했는데... 재수술 해야할 수도 있다고 하시더라."


"나… 다른 데는 괜찮아? 얼굴이나… 팔이나…"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왠지 그걸 묻는 것조차 눈치가 보였다. 겁이 났다. 내 몸이 지금 어디까지 무너졌는지 상상도 되지 않았으니까. 엄마는 조금 망설이더니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응. 얼굴은 멀쩡해. 팔도 큰 이상은 없고… 팔목에 골절이 조금 있대. 걱정 마. 팔이랑 손은 다 쓸 수 있대."

"그럼…"


"…응 그 쪽 다리 말고는 괜찮아."


엄마는 그렇게 말하며 내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따뜻했다. 그러나 손끝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다행이다…"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였다. 하지만 정말 다행이라고 느꼈는지는 잘 모르겠다. 머릿속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사고 순간의 장면이 자동으로 대생되었다.

빵― 소리.

헤드라이트.

그리고 그 잠깐, 공중을 날던 기분.


"그래도… 나 운동 계속 할 수 있긴 할 수 있대?"

나는 엄마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내 질문은 너무 직접적이었고, 엄마는 눈을 피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건... 아직 몰라."


"아직 몰라?"


"응. 척추에 골절이 좀 있고… 오른쪽 다리가 너무 심하게 다쳐서 지금은 절대안정을 취해야 한대. 정확한 건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대." 엄마는 그렇게 말하며 내 이마를 쓰다듬었다.


"근데 정현아, 의사 선생님이 그러시더라. 머리도 굉장히 세게 부딪혔는데… 외상 정도에 비해 다행히 뇌에 큰 손상이 없다고. 하나님이 사고 가운데서도 너를 붙드셨는가 보..." 말을 다 끝맺기도 전에 엄마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밤마다 머리맡에서 우리 형제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엄마는 '우리 아들들 다치지 않게 하시고...'라는 기도를 빠뜨리는 법이 없는 분이셨기에


나는 그 말을 듣고 천장을 한참 바라보다가, 아주 작게 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뇌에 큰 손상이 없다'는 그 말 하나가 자꾸만 아득해 지는 나를 간신히 붙들고 있었다. 그 때 병실문이 우당탕 하며 열렸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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