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코너를 조금 급하게 돌던 나는 마찬가지로 맞은편 골목에서 급하게 우회전해서 오는 차량을 보고 급하게 왼쪽으로 핸들을 끝까지 돌리고 브레이크를 잡았다. 끼이이이 이 이이익~ 굉장한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코너를 조금 급하게 돌던 정현은, 마찬가지로 맞은편 골목에서 빠르게 우회전해 들어오는 차량을 보고 본능적으로 핸들을 왼쪽으로 끝까지 꺾고 브레이크를 잡았다.
끼이이이이익—
굉장한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야! 이 씨벌롬아! 뒤질라고 환장했냐?”
검은색 세단의 차창이 다 내려오기도 전에 운전자가 몸을 반쯤 내민 채 소리를 빽 질렀다. 정현도 서두르긴 했지만, 저쪽 역시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골목을 돌아 나온 건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지금 잘잘못을 따질 상황은 아니었다. 브레이크를 세게 잡는 순간 오른쪽 다리에 이상한 긴장이 확 몰렸고, 심장은 아직도 거칠게 뛰고 있었다.
정현은 손목시계를 봤다. 여덟 시까지 이제 삼 분 남짓이었다.
“죄송합니다.”
그는 얼른 고개를 숙여 사과하고 다시 자전거를 고쳐 잡았다. 본넷 위에 은색 새 장식이 달린 검은 세단은 짜증을 내듯 부와아앙 소리를 내며 출발했다.
길만 건너면 노래방이었다.
정현은 근처 전신주에 자전거를 세우고 자물쇠를 걸었다. 잠깐 병원에 가 보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긴 했다. 하지만 마음은 이미 노래방 쪽으로 한참 앞서 달리고 있었다. 길 건너 간판에 ‘배트맨 노래방’이라는 글씨 아래, 노란 바탕에 검은 배트맨 마크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횡단보도는 멀었고, 노래방까지의 직선거리는 가까웠다.
정현은 양쪽에 차가 없는지 빠르게 확인한 뒤, 거의 몸을 던지듯 도로를 건넜다.
빵—!
경적 소리가 귓전을 찢었다.
순간 시간이 조금 느려지는 것 같았다.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차량의 헤드라이트가 눈을 정면으로 찔렀다. 그다음 순간, 정현은 몸이 공중으로 들려 나가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이어 바닥에 몸이 내던져지는 충격이 왔고, 그 뒤로는 잠시 아무것도 몰랐다.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아마 사고 직후였을 것이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주변에는 걱정스러운 얼굴들이 겹겹이 둘러서 있었다. 정현은 바닥에 누워 있었다. 다리 쪽 감각이 이상했다. 그는 고개만 겨우 틀어 아래를 봤다. 오른쪽 다리가 원래 있어야 할 방향이 아닌 곳으로 꺾여 있었다. 상체를 조금만 움직여 보려는 순간, 살면서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통증이 밀물처럼 들이닥쳤다. 숨을 들이쉬는 것만으로도 몸통 안쪽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바로 그 순간 정현은 자기 다리를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아, 이제 유도는 그만해도 되겠네.
구급대원들이 들것을 들고 달려오며 사람들에게 비켜 달라고 소리치는 장면이 그날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다시 정신이 돌아왔을 때는 긴 수술이 끝난 뒤였다.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보인 건 고개를 숙인 채 울고 있던 엄마였다. 엄마는 정현이 눈을 뜬 걸 보자 황급히 눈가를 훔치고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정현아, 정신 들어? 엄마야.”
“어디야? 병원?”
낯선 천장을 올려다보며 정현은 제일 먼저 지금 자신이 어디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응.”
방금 전까지 울고 있었던 게 분명한 엄마의 목소리는 습기에 젖어 있었다. 담담한 척하려 애쓰는 것 같았지만, 어깨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이상하리만치 미안하게 느껴졌다.
“아빠는?”
“출근하셨어. 어제 여기서 밤새 수술방 앞에서 너 기다리시고… 너 수술 마치고 나온 거 보고 나서야 출근하셨어.”
“아…”
“좀 어때?”
“몸에 힘이 안 들어가. 나 어디를 어떻게 다친 거야?”
엄마는 잠시 머뭇거렸다.
“나… 많이 안 좋아?”
“응… 많이 다쳤어. 특히 오른쪽 다리가 많이 안 좋대. 수술은 일단 했는데, 경과를 좀 봐야 한대.”
정현은 잠깐 숨을 고른 뒤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 다른 데는 괜찮아? 얼굴이나… 팔이나…”
그 질문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 자체가 왠지 눈치 보이는 일이었다. 겁이 났다. 자기 몸이 어디까지 망가졌는지 상상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는 잠시 망설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얼굴은 멀쩡해. 팔도 크게 다친 데는 없대. 손목은 좀 다쳤지만, 손은 쓸 수 있대.”
“그럼…”
“……응. 오른쪽 다리 말고는 크게 괜찮대.”
엄마는 그렇게 말하며 정현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손은 따뜻했지만 손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다행이다…”
정현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하지만 정말 다행이라고 느꼈는지는 잘 모르겠다. 머릿속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사고 순간의 장면이 자동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빵— 하는 소리.
헤드라이트.
그리고 그 짧은 순간, 공중으로 떠오르던 감각.
“그래도… 나 운동 계속할 수는 있대?”
정현은 엄마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너무 직접적인 질문이었다. 엄마는 눈을 피한 채 입술을 깨물었다.
“……그건 아직 몰라.”
“아직 몰라?”
“응. 지금은 절대안정을 해야 하고, 시간이 좀 지나 봐야 한대.”
엄마는 그렇게 말하며 정현의 이마를 쓸어내렸다.
“근데 정현아, 의사 선생님이 그러시더라. 머리도 세게 부딪혔는데… 그래도 큰일은 피했다고. 하나님이 너를 붙들어 주신 것 같다고…”
거기까지 말하던 엄마는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밤마다 머리맡에서 형제를 위해 기도하던 엄마였다. ‘우리 아들들 다치지 않게 하시고…’라는 기도를 빼놓는 법이 없는 사람이었다.
정현은 천장을 한참 바라보다가 아주 작게 숨을 내쉬었다.
큰일은 피했다고.
그 말이 자꾸만 멀어지려는 자신을 간신히 붙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병실 문이 우당탕 열렸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