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에 찍힌 번호
호주머니를 뒤져 확인한 호출기 액정 화면에는 8282라는 숫자가 떠 있었다.
긴급호출이 필요할 때 자주 쓰는 은어였다. 정현은 얼른 주변을 둘러봤다. 마침 근처 슈퍼 앞에 공중전화가 하나 서 있었다. 그는 지갑에서 빨간 벌새가 그려진 전화카드를 꺼내 밀어 넣고 곧장 사서함에 접속했다. 안내가 끝나기도 전에 1번을 눌렀다.
곧 아버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정현아, 아빤데 어디냐? 서둘러 좀 들어와라.’
호출기가 생긴 지 벌써 2년째였지만, 아버지가 직접 호출기에 메시지를 남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무뚝뚝한 아버지는 웬만한 용건이면 집에 와서 말하거나 어머니 편에 전하곤 했다. 그런 아버지가 직접 남긴 메시지라니. 정현은 듣자마자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는 정후에게 먼저 집에 들어가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하고 급히 발길을 돌렸다. 혹시라도 김영광 일행이 복수하겠다고 어딘가에 기다리고 있을까 봐 골목 모퉁이마다 한 번씩 고개를 내밀며 갔지만, 의외로 그런 기색은 없었다.
집은 바닷가에 붙은 열다섯 층짜리 아파트 5층이었다. 바닷바람 특유의 짭조름한 냄새가 짙어질수록 집에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엘리베이터 앞에 섰을 때였다. 발끝 아래로 무언가가 쓱 움직였다. 내려다보니 아주 작은 게 한 마리가 타일 바닥 위에서 멈춰 서 있었다. 검지 손톱보다도 작은 게였다.
정현은 몸을 숙여 게를 손가락 위에 올렸다.
“넌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냐.”
비가 오거나 밀물이 높아지는 날이면 아파트가 바닷가에 너무 가까운 탓에 이런 작은 해양생물들이 종종 길을 잃고 단지 안까지 들어오곤 했다. 그는 게를 밖의 풀숲 쪽에 조심스레 내려놓고 다시 엘리베이터에 탔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기름 냄새가 확 올라왔다. 누가 막 치킨을 시켜 먹은 모양이었다. 정현은 자기도 모르게 코로 길게 숨을 들이켰다.
“아, 냄새 좋다…”
강현이가 며칠 전 치킨 사 달랬던가. 그 생각이 스치자 오래전 기억이 따라왔다.
큰아버지 사업이 부도가 난 뒤, 집안도 함께 무너졌다. 지금은 치킨 한 마리쯤 먹을 여유가 생겼지만,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몇 년 전 여름, 해수욕장에 갔을 때 바로 옆자리 가족이 먹던 치킨 냄새를 형제가 계속 힐끔거리던 기억이 있었다. 결국 강현이는 잠깐 자리를 비운 그 집 치킨 쪽에 손을 뻗다가 어머니께 꾸중을 들었다. 나중에 어머니는 그날을 떠올리며, 닭 한 마리 마음껏 사주지 못하는 형편이 너무 서러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정현은 그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이상하게 웃음보다 먼저 목이 멨다.
그가 아주 어릴 때 집은 한 번 크게 무너졌고, 강현이는 부모가 어느 정도 숨을 돌린 뒤에야 태어난 둘째였다. 그래서 형제 사이엔 다섯 살 터울이 생겼다. 정현은 장남이라 부모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었고, 강현이는 아직 어려서인지 필요한 게 있으면 바로 말하는 아이였다. 정현이 가끔 제 용돈을 떼어 동생에게 주는 건, 동생이 예뻐서이기도 했지만 부모 형편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 더 컸다.
엘리베이터가 띵 하고 멈췄다.
정현은 복도를 따라 걸어가 현관문 앞에 섰다. 잠시 숨을 고른 뒤 벨 대신 문을 두드렸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문을 열어준 어머니는 정현의 얼굴을 보자마자 표정이 굳었다.
“정현아, 늦게 왔네… 어머나, 이게 뭐야? 왜 교복이 다 뜯어져 있어? 얼굴은 또 왜 그렇게 됐어? 무슨 일이야? 또 학교에서 선생님한테 맞은 거야?”
‘또’라는 말에 특히 힘이 실려 있었다. 지난번 김재덕에게 맞고 돌아온 뒤부터 어머니가 그 일을 계속 마음에 담아 두고 있다는 뜻이었다.
정현은 신발을 벗으며 애써 가볍게 말했다.
“아니에요. 학교는 아니고요. 우연히 불량배들하고 좀 엮여서… 싸움이 있었어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제가 더 많이 때렸어요.”
“그래도—”
“그런데 왜 일찍 오라고 하셨어요?”
정현은 어머니의 말이 잔소리 쪽으로 기울기 전에 얼른 화제를 잘랐다. 어머니는 사랑이 큰 만큼 잔소리 주머니도 깊은 사람이었다.
마침 안방에서 검은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나오던 아버지가 헛기침을 했다.
“왔냐?”
아버지는 급히 옷을 챙겨 입느라 정현의 몰골을 제대로 볼 겨를도 없는 눈치였다.
“네. 어디 가세요?”
“명성교복 박사장님 오늘 낮에 돌아가셨다. 너 중학교 입학할 때 교복 지어주신 분.”
정현의 눈이 잠깐 커졌다.
“네?”
“엄마랑 장례식장 좀 다녀오려고 한다. 강현이랑 밥 챙겨 먹고 있어라.”
“아… 네.”
어머니는 이미 냉장고를 열고 반찬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콩자반 있고, 두부조림 꺼내면 되고, 냄비에 김치찌개 있으니까 데워 먹어. 콩나물 돼지고기 김치찌개니까 강현이도 잘 먹을 거야.”
동생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라는 말에도 정현은 반가운 기분이 들지 않았다. 교복점 박사장의 갑작스러운 부고가 먼저 가슴을 눌렀다.
“그런데 어쩌다가 돌아가셨어요?”
아버지가 넥타이를 바로잡으며 낮게 답했다.
“시내에서 음주운전 차량이랑 정면충돌을 했대. 상대는 외지인인데 크게 안 다쳐서 지금 덕포경찰서에서 조사 중이라고 하더라. 박사장님이 하필 안전벨트를 안 메고 있어서 현장에서 바로 돌아가셨다더구나.”
정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잠시 한숨을 쉬었다가 덧붙였다.
“그 집 사모님도 몸이 편찮으신데… 큰딸 민희는 작년에 내가 담임했던 반 학생이었고. 가난한 학생들 교복도 거의 원가만 받고 많이 해주신 분이라 더 안타깝다.”
“네…”
“아이고, 얼른 가봐야겠다. 강현이 숙제 좀 봐주고, 밥 챙겨 먹어라.”
“네. 잘 다녀오세요.”
무거운 현관문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닫혔다. 이어 찰칵, 잠금장치 내려가는 소리가 났다. 정현은 한 번 더 손잡이를 확인했다.
그러고는 동생 방 문을 벌컥 열었다.
“아니, 이놈은 아버지 어머니 나가시는데 코빼기도 안 비치고 뭐 하냐?”
강현이는 침대 귀퉁이에 누운 채 도로롱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정현이 엉덩이를 툭툭 두드리자 하품을 길게 하며 몸을 일으켰다.
“하아암… 형 왔어? 엄마는?”
열한 살밖에 안 됐지만 눈은 부리부리하고 영악하게 생긴 얼굴이었다.
“장례식장 가셨어. 형이랑 밥 먹고 숙제 하자.”
“나 오늘 숙제 없는데?”
“너 지난번에도 그렇다더니 있었다.”
강현이가 헤헤 웃었다.
“이번엔 진짜 없어.”
“그래. 그럼 일단 밥부터 먹자. 김치찌개 데워 줄게. 계란후라이도 해줄까?”
“응. 형이 해주면 맛있어.”
“알았어. 그럼 너는 TV 뭐 재밌는 거 하는지 켜 봐.”
강현이는 일어나 거실로 나가다가 문득 뒤를 돌아봤다.
“형, 입에 피 난다.”
“어. 오늘 동네 양아치들이랑 싸웠어.”
“헐. 형이 이겼어?”
정현은 피식 웃었다.
“이겼지.”
강현이의 눈이 반짝였다.
“와, 우리 형 짱이다.”
“짱은 아니고. 우리 강현이 어디서 괴롭힘당하면 형이 지켜줄게.”
“그래~”
정현은 주방으로 가 프라이팬을 올리고 식용유를 둘렀다. 손바닥으로 팬 위의 온기를 가늠한 뒤 달걀 두 개를 탁탁 깨뜨렸다. 치익, 기름 튀는 소리가 났다. 한 방울이 팔등에 떨어지자 그가 작게 얼굴을 찌푸렸다.
“으뜨뜨…”
싱크대로 가 찬물에 손을 대고 있는데, 호주머니 속 호출기가 다시 울렸다.
웅— 우웅—
그는 젖은 손을 바지에 대충 닦고 화면을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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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의 눈이 순간 굳었다.
“헉, 뭐야…”
옆에서 TV 채널을 돌리던 강현이가 물었다.
“형, 왜?”
정현은 대답하지 않고 얼른 호주머니에 호출기를 넣었다.
“형?”
“아무것도 아니야.”
2학년 1반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몇몇 녀석들의 시선이 즉시 정현에게 꽂혔다.
입술 안쪽은 밤새 더 부어 있었고, 턱 밑의 상처에는 반창고가 비뚤게 붙어 있었다. 정후 역시 팔뚝과 목덜미에 멍이 퍼져 있었고, 뜯겨 나간 교복 단추 자리는 어머니가 급히 달아 놓은 듯 색이 제각각이었다.
“야, 뭐야.”
“둘 다 왜 저래?”
“너네 싸웠냐?”
교실 안 공기가 금세 수군거림으로 차올랐다.
정후는 그런 시선을 오히려 즐기는 얼굴로 가방을 툭 내려놓으며 말했다.
“고딩들이랑 한 판 붙었지.”
그 한마디에 반 애들 몸이 동시에 앞으로 기울었다.
공책 펴던 애도, 도시락 뚜껑 닫던 애도, 자습하던 척하던 애도 슬금슬금 두 사람 쪽으로 몰려들었다.
“진짜로?”
“어디서?”
“누구랑?”
“공고?”
정현은 가방을 의자에 걸며 한숨 비슷한 숨을 내쉬었다. 정후는 원래 이런 데서 입이 가벼운 편이었다.
그때 영재가 안경 코받침을 검지로 슥 밀어 올리며 끼어들었다.
“덕포공고?”
정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누군데?”
정현은 이름을 말하기 전에 아주 잠깐 망설였다. 괜히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일이 더 커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정후가 먼저 입을 열었다.
“김영광.”
그 순간 영재의 표정이 달라졌다.
조금 전까지는 그냥 구경하는 얼굴이었는데, 이름을 듣자마자 눈빛이 반짝였다.
“김영광?”
영재는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진게 신경쓰인다는 듯 흠흠 하고 목청을 가다듬었다. 그러곤 안경을 다시 한 번 추켜올렸다.
“야, 김영광 모르냐?”
그 한마디에 주변 애들이 더 바짝 모여들었다.
“또 시작이다.”
“누군데?”
“아는 척 좀 하지 마라.”
하지만 영재는 이미 탄력을 받았다.
“덕포공고 일학년. 싸움으로 이름 좀 있는 놈이야.”
“일학년이 세면 얼마나 세다고.”
누군가 툭 던지듯 말했지만 영재는 바로 잘라냈다.
“그냥 일학년이 아니라니까. 싸우는 방식이 더럽기로 유명해. 규칙 같은 거 없어. 눈에 보이면 그냥 닥치는대로 휘두른다던데.”
“누가 그랬는데?”
“우리 사촌형 친구가 공고 다니거든. 거기서 들었어.”
영재는 말할수록 신이 나는 눈치였다.
정현은 그 얼굴을 보며 속으로 피식했다. 영재는 원래 자기가 남보다 조금 더 많이 안다고 생각되는 순간, 마치 현장을 직접 본 사람처럼 말하는 버릇이 있었다. 사실 하나에 소문 몇 개, 과장 몇 개쯤을 넉넉히 섞어서 말하는 애였다.
그래도 전부 빈말은 아니었다.
“야, 그래서 뭐가 그렇게 유명한데?”
정후가 팔짱을 낀 채 물었다.
영재는 기다렸다는 듯 말을 이었다.
“예전에 공고 안에서도 선배랑 붙었다더라. 근데 보통 후배가 선배랑 붙으면 그냥 끝이잖아? 얘는 아니래. 사람이랑 싸우는 게 아니라 들개처럼 덤빈대.”
“들개는 무슨.”
“진짜라니까? 상대 넘어지면 끝까지 밟고, 일어나려 하면 또 차고. 이기고 지고를 떠나서 상대를 멀쩡하게 안 놔둔다고 하더라.”
“뻥이 좀 심한데?”
“내가 봤다고 했냐? 들었다고 했지.”
영재가 버럭하듯 말했다.
그러고는 한 박자 쉬며 덧붙였다.
“근데 소문이 괜히 도는 건 아니잖아.”
그 말은 나름 일리가 있었다.
정현도 속으로는 인정했다.
소문은 늘 부풀려지지만, 완전히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서 생기지는 않는다.
그때 정후가 불쑥 말했다.
“어제 붙어 보니까 정상은 아니더라.”
교실이 잠깐 조용해졌다.
정후는 허세를 부리지도, 겁먹은 티를 내지도 않은 채 계속 말했다.
“맞고 쓰러져도 바로 일어나고, 눈이 좀 돌았어. 아프면 물러나는 얼굴이 아니더라.”
영재가 그 말을 덥석 물었다.
“거봐, 내 말 맞잖아.”
“다 맞다는 건 아니고.”
정현이 조용히 잘랐다.
“근데 이름이 왜 도는지는 알 것 같긴 해.”
그 말에 영재가 씩 웃었다.
“그러니까. 내가 괜히 말하는 줄 아냐?”
그래도 교실 분위기는 완전히 영재 쪽으로 넘어가 있었다. 누군가는 겁먹은 얼굴이었고, 누군가는 괜히 흥분한 얼굴이었다. 별일 아닌 척하던 녀석들까지 “야, 그럼 너네 진짜 위험했던 거 아냐?” 하고 한마디씩 얹었다.
정현은 그 소란 속에서 이상하게 차분해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 일은 그냥 몸으로 겪은 싸움이었다. 맞고, 뛰고, 겨우 빠져나온 사건. 그런데 지금 영재의 입을 거치자 그 싸움이 자기들이 잘 모르는 바깥 세계와 연결된 일처럼 느껴졌다. 학교 담장 밖에도 이름이 있고, 소문만으로 사람을 움츠러들게 만드는 무리들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선명해졌다.
그때 영재가 뒤늦게 조금 진심인 얼굴로 물었다.
“근데 너네 진짜 괜찮냐?”
정후가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들썩였다.
“안 괜찮아도 어쩔 건데.”
“아니… 그냥.”
정현은 책상 서랍에서 공책을 꺼내며 말했다.
“일단 살아 있잖아.”
정후가 피식 웃었다.
“그렇지. 살아 있으면 된 거지.”
주변에서 웃음이 조금 터졌고, 교실 공기도 아주 약간 느슨해졌다. 하지만 정현의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무거웠다.
이상하리만치 김영광이라는 이름이 머릿속에 남았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냥 지나가지는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때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교실 문을 열었다.
아침 조회가 시작될 시간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