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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영 Sep 17. 2024

놀란 자라 가슴에게 자비를

어떤 날들은 삶이 거대한 돌덩이가 되어 가슴에 쿵 하고 내려앉는다. 그 순간부터 숨 쉬는 것조차 버거워진다. 그 돌덩이는 단순한 무게가 아니다. 그것은 알 수 없는 불안, 두려움, 그리고 다가올 날들에 대한 무기력함을 안고 나를 짓누르는 무거운 담요 같다.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그 압박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하루를 그렇게 보내다 보면, 지칠 대로 지친 내 마음속에 ‘이젠 될 대로 돼라’는, 어쩌면 포기일지 모를 오기가 서서히 피어오른다. 그제야 돌덩이는 조금씩 가벼워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하루를 간신히 넘긴다.


몇 번이고 이런 날들을 반복하다 보면, 처음부터 ‘될 대로 돼라’고 외치며 이 무거움을 이겨낼 수 있는 내력이 생기는 걸까? 아니면 여전히 그 돌덩이 밑에서 버티다가 마지막에야 겨우 해방되어야 하는 걸까? 어쩌면 나는 매번 이렇게 지친 후에야 비로소 한숨 돌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불쑥 찾아오는 예기치 못한 상황들과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다. 벌써부터 수십 년 후의 일들까지 내 가슴에 얹혀 있다. 그 시간들이 실제로 찾아올지조차 모르면서도, 나는 마치 내일 당장 그 모든 일이 닥칠 것처럼 불안에 사로잡혀 있다.


오늘의 괴로움은 충분히 감당했다. 더 이상 짓눌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내일도 이런 순간은 찾아오겠지만, 오늘만큼은 이 무거운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싶다. 내일의 무게는 내일의 내가 감당할 것이니, 오늘은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눈을 감아도 괜찮지 않을까.


자정이 지났다. 오늘은 추석이다. 밤하늘에 걸린 보름달이 어둠 속에서 유난히 선명하게 빛난다. 속는 셈 치고 달에게 소원을 빌어볼까. 이루어지지 않아도 괜찮다. 잠시라도 마음이 가벼워질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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