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2025)

by 최은영

OECD 국가 중 자살률 가장 높은 나라에서 내가 살아남는 방법은 좋아하는 것을 최대한 많이 찾아내 꼭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아침 뉴스를 보며 하고 있었다.


비슷한 실력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나를 구분 짓는 건 결국 내가 오래 가꾸어 온 취향이라는 말을 들었다. 취향은 단순한 좋아함이 아니라, 오랜 시간 관찰하고 경험하며 쌓아온 나만의 빅데이터라 했다. 남들이 흉내 낼 수 없는 건 기술이 아니라 결국 나의 취향이라나. 내가 좋아하는 것을 어떤 감각으로 해석하고, 어떤 방식으로 드러내는지가 경쟁력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 내가 좋아하는 것마저 경쟁을 해야 해? 하는 의문이 든다.


요즘 어떻게 하면 더 풍성하고 재미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끝없는 경주에서 벗어나 나에게 맞는 옷을 입고,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내가 원하는 경험을 쌓으며 살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이름이나 직업, 취미, 국적을 말하지 않고도 나를 설명할 수 있다면, 나는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까.


I am what I like.


먹는 음식이 신체를 만들고 건강을 결정한다는 히포크라테스의 말, “I am what I eat,” 은 단순히 음식이 몸을 이루는 차원을 넘어, 내가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곧 나 자신을 드러낸다는 뜻을 담고 있다. 마찬가지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정신과 정체성을 규정한다. 음악, 책, 계절, 색, 향, 옷, 말투, 사람들—그 모든 취향이 곧 내가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이 된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아는 일이 중요해졌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나. 무얼 더 좋아해 볼까.


나는 가을을 좋아한다. 첫 학기의 설렘, 생일을 기다리던 조바심, 서늘한 공기 속에 물들어가던 나뭇잎들, 대가족이 모여 북적이던 추석 풍경, 수확의 계절이 주는 충만함까지. 가을은 언제나 차분하고 아름다웠다. 세상의 좋은 것들이 가을에 있는 듯했다.


꽃도 좋아한다. 피고 지는 짧은 생애가 덧없음 속에서도 강렬한 순간을 남길 수 있음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가장 쓸모없는 선물이 꽃이라는 말은 나를 슬프게 한다. 또 노을, 별, 바다, 야경을 좋아한다. 하루 종일 하염없이 바라만 봐도 질리지 않는 심해를 닮은 커다란 탱크와 알록달록한 산호초들이 있는 수족관을 좋아한다. 서점을 좋아하고 책을 좋아한다. 특히 소설, 에세이, 만화, 동화, 그림책을 좋아한다. 좋은 이야기들이 담긴 뮤지컬과 영화, 그리고 드라마 역시 좋아한다. 따뜻한 어쿠스틱 기타 소리와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좋아한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경험을 함께 하는 것도 좋아한다. 혼자 있는 시간도 좋지만, 역시 혼자보다는 둘이 좋다. 경복궁을 좋아하고 산책을 좋아한다. 취향이 담긴 선물을 좋아한다. 첫눈 오는 날과 크리스마스를 좋아한다.


또 무너져 본 마음을, 상처가 아물고 흉터를 훈장처럼 지닌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다정함을 품은 사람들, 자기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에 마음이 끌린다. 그들에겐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깊이가 있다. 겉으로 빛나는 것과는 다른, 속에서 우러나는 아름다움도. 나는 그런 이들을 볼 때마다 일본의 도자기 수선 기법인 ‘킨츠기 (金継ぎ)’가 떠오른다. 금으로 깨진 자리를 이어 흠을 하나의 무늬로 새기는 기술이다. 상처를 숨기지 않고 품은 채 다시 하나가 되려는 그 태도에는 고요한 품위가 깃들어 있다. 그것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견뎌낸 시간으로만 얻을 수 있는 각인이자 면류관이다. 부서진 조각들을 다시 이어 붙이는 과정에서 생긴 이음선마다 말없는 결심이 흐른다. 그 결은 시간 속에서 단단히 굳어져 결국에는 분명한 생의 숨결로 남는다. 나는 그런 그들의 반짝이는 흉터를 좋아한다.


취향은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삶을 선택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하루의 작은 결정들 속에서도 내가 어떤 존재인지 드러난다.


얼마 전, 부모님과 춘천으로 2박 3일 여행을 다녀왔다. 숙소에서 바비큐와 수영을 즐기며 한적한 시간을 보냈다. 마당에 늘어선 밤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밤송이를 바라보며 연신 감탄하는 엄마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엄마는 고향을 떠올렸던 것 같다. 앞으로 이런 여행을 몇 번이나 더 함께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에 닿으면,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들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이 분명해진다. 그 망설임의 이유가 돈이라 해도, 결국 해보자는 쪽을 택해온 내 원칙이 틀리지 않았음을 이번 여행이 일깨워주었다.


쌀쌀해진 아침엔 이솝의 로쥬 향수가 잘 어울린다. 최근 가장 마음에 드는 옷차림은 크롭 니트에 흰색 오버사이즈 셔츠, 갈색 와이드 슬랙스, 아디다스 운동화였다. 출근길엔 차이콥스키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 Op.48, 제1악장〉을 자주 들었다. 비장한 기운이 감돈다. 퇴근길엔 라디오헤드의 〈Creep〉. 나다움을 찾아가는 길에 있는 나를 대변하는 듯하다. 쉬는 날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김창열〉 전시를 다녀왔다. 캔버스에서 또르륵 하고 흘러내릴 듯한 물방울을 보고 있으면 평생 한 대상을 탐구한 그의 집념이 깊은 울림을 주었다.


최근에 읽은 책은 소로의 《월든》, 배송을 기다리는 책은 찰리 맥커시의 《언제나 기억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아빠와 딸이 함께 쓴 《오렌지 베이커리》였다. 글은 혼잣말 같지만 동시에 가장 보편적인 대화다. 읽는 이가 자신의 경험을 겹쳐볼 때, 낯선 두 사람이 깊이 만난다. 글은 말보다 천천히, 그러나 더 깊게 연결한다. 그래서 책을 좋아하는가 싶기도 하고. 아껴두었다가 한 편씩 보고 있는 예능 〈장도바리바리〉에서는 장도연의 대화법에 빠져든다. 어떤 생각과 경험을 하면서 살아야 저런 유머를 가지고 깊이 있는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을까 자주 생각한다. 연말엔 최윤식 지휘자가 이끄는 〈캐럴 메들리〉 오케스트라 연주회을 꼭 가보고 싶다.


살면서 사랑하게 되는 것들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겨우 이런 것들로 행복해질 수 있다니. 이 ‘겨우’조차 지켜내려면 큰 결심이 필요하다니. 인생은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기에도 짧다. 그래서 오늘도 내일도, 나를 설레게 하는 것들로 삶을 채워 나가려 한다. 그때 내 두 손에 쥔 작은 기쁨들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나만의 것이 된다.


그 작은 기쁨들이 모여 결국은 나를 살아 있게 한다. 치열한 세상 속에서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힘도, 나를 나답게 지켜주는 품위도, 그 사소한 좋아함들에서 나온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묻는다. 무엇을 더 사랑할 수 있을까. 무엇을 더 품고 살아갈 수 있을까. 끝내는 그 질문이, 가장 오래 나를 지켜줄 대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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