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어진 결혼이 객관적으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찬스로 간다,.
엎어진 결혼식
엎어졌다.
뒤엎어졌다.
360도 아니 185도 정도로 엎어졌다.
왜 엎어졌을까?
한 사람이 아픈 바람에 같이 취침이 힘들어졌다.
하루에 2시간 자는 일이 많아지니 예민해졌다. 그렇게 한 달 세달이 지나갔다.
정신은 몽롱해지고 업무에 차질이 빚어졌다.
자존감도 하락되고, 모든 것에 너때문이잖아 라는 상대방 책임론이 들끓었다.
그렇게 다 힘들었다.
체력이 뒷받침 되지 않으니 정신적인 예민함이 극강을 달려가 마침내 내 밑바닥 모습까지
보였다.
엄마 아빠에게 배운거 라곤 서로 욕하며 서로 때리는 행동
어렸을때 죽어도 이 모양을 배우고 싶지 않았는데
나를 잃어버리고 내가 죽어간 그 자리에는 상대방에게 욕하고 내억울함을 그대로 표즐하는
쓰레기통에서 나온 내가 있더라 .
내 밑바닥은 엄마아빠 싸우는 그 모습을 닮고 싶었나보더라.
그 모습이 싫어 헤어지자고 했다.
이렇게 내가 힘들때 더러운 내 모습을 경멸하는데 상대방은 그냥 미인하다 라는 일관된 태도로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사랑에 빠져서 그사람을 이해는 내 모습이 아닌
엄마에게 맞고 얼룩덜룩한 12살짜리 내가 그 사람 앞에 헤어짐을 고하고 있었다.
그렇게 헤어지고 급하게 짐을 챙겨 원룸텔로 나왔다.
아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주 애메하게 헤어졌다.
몸과 체력은 너덜너덜했지만, 정신적으로는 그사람을 정말 많이 좋아했나보다 울면서 서로가
서로를 붙잡았다. 그렇게 우리는 장장 2주의 이별내기를 준비했지만 그만큼 많이 사랑함을 확인했다.
그래도 아픈 그와 함께 붙어있으면 또 잠도 못자고 서로가 날카로워져서 잠시 떨어져있자.
급하게 떨어져있어야 하므로 그 근방 35만원짜리 원룸텔로 1차 내 짐을 들고 나왔다.
2월이지만 추운 겨울옷과 잠온 이불 몇가지의 옷, 화장품, 생리대를 챙기고 한달 정도
머무를 원룸텔을 찾아서 나왔다.
나이 30대후반에 원룸도 아닌 고시텔 원룸텔이라니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남들은 이렇게 잘나가고 결혼도 곧잘해서 전세 집에 들어가는데
나는 뭐하는 꼴이냐며 울면서 원망하고 밥 먹다가 토하고, 울고 불고 욕도 하고
나를 인정하지 못했다.
이런 인정하지 못하는 내가 갑자기 나를 인정하게 되었다.
삶은 한번뿐이라는 마인드와 당시 2가지 폭탄 맞은 사건이 있었다.
첫번째는 엄마의 말
내가 결혼을 뒤엎을 당시 엄마는 창원에 내려와서 편히 쉬는것 보다 먼저 일자리를 찾으라고 했다. 슬픔에 빠져서 울고 있는 내게, 휴식을 갖기는 커녕 돈을 벌라고 말하는 엄마.
분명 어른인 나는 엄마를 애잔하게 생각했었지만 그 순간의 나의 모습은 엄마를 죽도록 싫어했던 중2의 내가 나왔다. 그렇게 돈이 좋은 것인가? 사람감정따위는 생각하지 않는 것인가?
두번째는 친하다고 생각했던 아이의 한마디
어? 언니 파혼했어? 어 그러면 내가 먼저 결혼하겠네
이 물론 다른 사람은 힘내라는 격려의 말을 해주었지만, 이 두 말에 인생 헛살았구나.
내가 잘됨을 응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저런 사람들도 있구나.
가까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배신감과 모욕감 그리고 외로움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러다가 갑자기 생각전환이 확 들어왔다.
내 인생에 위로를 바라는 내 행동을 바랬나?
내 인생은 내꺼야 더이상 저 사람들에게 들어올 틈을 주지 말자.
오롯이 나를 챙기자 라는 생각 때문에
얼른 원룸텔 예약하고 짐 챙기고 들어갈수 있었다.
내가 나락가면 다시 일어나면 되고 어차피 나는 내가 선책할 길이다.
힘들면 다시 쉬었다가 가면 된다. 천천히 하자 절대 급하게 하지말자.
어차피 인생은 길고 하니 굳이 남들과 비교하면서 하지 말자.
내 발길대로 하자 라고 내가 나를 믿으니 흙탕물인 내 상황에 과감히 발을 넣고 따뜻함을 느낄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