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가해자

이해하기 싫은 상황들

by xohee

걱정 속에 학교 생활은 시작되었지만, 다행히도 좋은 친구들을 만나 잘 지냈었다. 사투리와 다른 문화에 적응하느라 조금 고생을 했지만 재밌는 추억이었다.


우리는 외가친척집에 잠시 얹혀살다가, 근처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바깥에서 열쇠 소리가 날 때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PTSD와, 중2병이 같이 왔던 걸까? 더 심각한 우울증에 빠져, 몸에 상처를 내기 시작하고 삶을 저버리려 노력하였다.


엄마는 나에게 동생 케어와 집안일을 맡겼고, 우리를 위하여 일하러 간 엄마 얼굴을 보기가 어려워졌다. 가뜩이나 서울에서도 말을 안 듣던 동생이 아빠를 떠나고, 엄마도 집에 있는 시간이 적어 둘이서만 남게 되자 더 멋대로 굴기 시작하였다.


정말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언행들을 하였다. 그래도 하나뿐인 동생이니까 잘 지내보려 조금이라도 노력했던 날은 얼마 가지 못하였다.


집안일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고, 집을 더럽히기 일쑤였다. 덕분에 나만 일이 늘어났고, 엄마는 나에게만 '누나니까, 여자니까, 딸이니까' 동생을 이해하고 엄마를 도울 것을 말하였다.


나는 솔직히 이해할 수 없었고 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혼자 고생하는 엄마를 보며 투덜거리며 집안일과 엄마가 시키는 일들을 해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동생을 더 나쁜 길로 인도하였고, 세상에 뭐 이런 사람이 있나 싶을 안하무인이 되었다.


어린 나이에 떼어놓고 온 동생이 안타까웠던지 엄마의 아들 사랑은 대단하셨다. 아무리 큰 잘 못을 하여도, 이사 온 초반에 철사 옷걸이로 몇 대 때렸던 것이 다였다. 나는 동생과 많은 것이 맞지 않았고, 훈육 차원에서 혼내고 싸우기도 했지만 항상 억울해지는 건 나였다.


동생은 완전채로 궤변과 가스라이팅을 잘한다. 매우 그럴듯하게 말을 잘하고, 말 꼬리를 잡고 늘어지며 논점을 흐려 공격해서 사람의 화를 돋우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한바탕 싸우고 나서, 엄마에게 이유를 말해도 누나가 그러면 되냐면서 혼났다.


그렇게 엄마는 점점 더 동생을 오냐오냐 키웠고, 엄마를 무시하는 언행들을 해도 엄마는 묵묵히 뒷바라지를 하셨다. 물론 그에 수반되는 집안일은 자연스레 나의 몫이었다.


식사 후 바로 설거지하지 않으면 나에게는 잔소리를 하였지만, 동생에게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동생은 매일 집에서 컴퓨터 게임하기에 바빴는데, 엄마는 그런 동생이 배가 고플까 걱정되어 쟁반에 상을 차려 갖다주었다. 심지어 다 먹고 책상 위에 그대로 두어도, 동생에게 달라고 하거나 방문이 열려 있을 때 가져와서 엄마나 내가 설거지를 해야 했다.


나는 그래서 현재 '네가 이해해'라는 말이 발작버튼이 되어버렸다. (물론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만)


keyword
이전 15화서울에서 타지로 전학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