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타지로 전학 가기

제2의 고향이 된 타지

by xohee

외갓집에서 학교를 다닌 지 얼마나 되었을까?

이제 조금씩 새 친구들과 적응해 가던 중, 엄마가 다시 우리에게 물어보았다. 엄마가 지내던 지역으로 내려갈 것인지 아니면 외갓집에서 지금처럼 학교를 다닐 것인지.


당연히 서울에서 나고 자란 우리는 가기 싫었지만, 엄마가 일하고 살던 곳은 다른 지역이고 우리가 현재처럼 지내면 엄마의 경제적 부담이 커 보였다. 하는 수 없이 엄마를 위해서 따르기로 하였다.


그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그렇게 엄마가 살던 지역으로 멀리 따라나섰다. 도착하니 외가 쪽 친척들이 모여있었고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서 당황하였다.


동생과 같은 나이의 남자아이가 엄마에게 '누나'라고 부르고, 나는 그 아이에게 '삼촌'이라고 불러야 하는 뻘쭘한 상황이었다. 내 나이 또래들은 다 남자였고, 삼촌이라고 불러야 했다.


그들은 처음에 하나뿐인 여자라고 나를 예뻐하는가 싶었지만, 시간이 흐르자 여자라서 집안일을 시켰다. 그리고는 게임만 하는 남자아이들과, 왜 어울리지 않냐는 소리를 내게 하였다. 적응하기 어려웠고 반발심만 생겨났다.


나는 전학 갈 학교를 고를 수 있었는데, 2곳 다 여중이었다. 공학이었던 서울과 달라 신기하였다.


그보다 문제는 내가 서울에서 중1 때 왕따를 당하여, 학교에 대한 거부감이 심하였다. 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하였고, 계속된 대치 상황 끝에 결국 학교를 가게 되었다.


가족보다 친구, 집보다 학교였던 나에게는 8살쯤부터 친하게 지내던 동네 친구가 있었다. 앞서 가출해서 설거지하겠다며 빌었던 집의 친구다.


그 친구와 같은 중학교에 입학하여 같은 반이 되었고, 나는 부반장이 되어서 나름 원만한 교우관계와 적극적인 학교생활로 인하여 선생님들에게도 좋은 이미지였었다.


허나 그 친구가 수련회에서 바닥에 떨어진 돈의 주인을 찾을 때마다, 자신의 것이라고 하는 등 도벽을 보여 학교로 돌아온 후 왕따를 당하게 되었다. 등하교를 함께하던 친구라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지만, 나도 따돌림을 당할까 싶어 어린 마음에 나도 학교에서는 멀리하게 되었다.


그 이후 같은 반 아이들이 나에게 그 친구와 친하지 않냐며, 친구의 가정사 등을 캐물었고 나는 일절 얘기하지 않고 직접 물어보라 하였다. 그러면서 내가 그 친구에게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하굣길에 사과를 하며, 그날 아이들이 뭐라 했는지 상황을 전달해 주는 것뿐이었다.

2학기가 되자 어느 무렵부터 그 친구가 반 아이들과 얘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쯤부터 나는 반 아이들에게서 서서히 무시를 당하기 시작하였다. 그제야 친구가 나를 대상으로 험담을 하여 그들의 관계가 회복되었음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어제까지 웃고 떠들던 친구들은 나를 막 대하였고, 일진 무리들의 따돌림보다 더욱더 마음이 아팠다. 편견 없이 장난치던 남자 애들과 잘 지내던 나는 반에서 여우짓 한다고 소문이 나있었으며, 부반장으로서 활동하며 여러 상을 받아도 험담의 대상이 될 뿐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건 그 친구의 태도였다. 1학기 때 내가 한 짓이 있으니 이해하였으나, 그 친구는 하굣길에도 그 어느 순간에도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였다.


너무 속상했던 나는 우울증이 심하게 왔었다. 당시 창가 자릴 배정받으면서 창밖으로 뛰어내릴까 라는 생각만 했던 것 같다. (이 친구와는 성인이 될 때까지 관계 회복을 위하여 몇 번이나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고 같은 무리였던 친구들도 그녀와 절연하였다고 했다.)


심각한 우울증 상태로 타지에 이사를 오니, 마음은 더 심란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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