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의 마지막
며칠간 이모, 삼촌과 함께 '아빠에게서 친권, 양육권을 어떻게 가져올지' 의논하는 것을 엿들었다. 당황스럽게도 아빠는 엄마에게 친권, 양육권을 넘기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는 말이 들리자 심장이 내려앉았다. '다시 또 아빠에게 가서 맞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자 공포감이 온몸을 감쌌다.
그렇게 모두가 고민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날, 임시로 나는 외갓집 근처에 있는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외갓집은 심한 오르막길이어서 엄마와 걸어 올라가던 중 엄마가 나에게 말했다. "그 신발 작아 보이는데 발 안 아프니? 걷는 게 이상해 보이는데"라고 하자 나는 안 작다고 우겼다.
왜냐하면 내가 중학교 입학한다고 작은엄마에게 처음으로 받은 큰 선물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아빠가 사주는 대로 입느라 예쁜 것은 꿈도 못 꿨던 나에게 처음으로 생긴 예쁜 신발이었다. 그래서 점점 자라는 발에 맞지 않는 걸 나도 알고 있었지만, 그 신발을 신기 위해 고통을 참아내었다.
그런 나를 데리고 엄마는 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받도록 하였다. 허리 검사를 했던가, 정확하게 기억나는 것은 척추 뼈 중 하나가 조각이 났다는 것. 네모 모양의 끝자락이 깨져 작은 세모 조각이 나있었다. 별 다른 통증을 느끼지 못했던 나는 덤덤했다. 엄마는 옆에서 눈물을 흘렸다.
엄마가 의사에게 아직 나이가 어린데 수술해야 하냐고 묻자, 어려서 함부로 수술하는 것은 권하지 않고 통증도 없으니 일단 지켜보자고 하셨다. 외갓집으로 가는 길 엄마는 아빠의 폭행 때문이라며 매우 속상해하셨다.
그 이후 엄마는 나의 디스크 조각을 폭행의 증거로 말하여, 친권과 양육권을 받아내는 것으로 합의를 이뤄냈다. 그전까지 완강하게 거부하던 아빠가, 나의 디스크 조각 사실에 바로 태도를 바꿨다고 하니 기가 찼다.
그렇게 잘 해결된 줄 알았는데, 며칠 후 아빠와 마지막으로 밥을 먹자고 하는 엄마의 말에 너무 놀랐다. 정말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다고, 무섭다고 하였으나 괜찮다며 나를 타일렀다.
반강제로 네 가족이 식사를 하러 모였다. 웃으면서 네 식구가 바깥에서 외식한 기억은,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돈가스를 팔던 양식집으로 기억이 나는데, 당시 맞을까 조마조마하던 나와 다르게, 철부지 동생은 신이 나서 아빠옆에서 맛있게 밥을 먹었다. 아빠의 가식적인 웃음과 말들에 속으로 헛웃음만 나왔다.
나는 아빠가 우리의 뒤를 밟아 데려와서 또 때릴까 봐, 아빠 차가 먼저 사라진 뒤에 이동하자고 우겼지만 '괜한 걱정'이라며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렇게 조마조마하게 지냈지만 다행히 그 이후로 아빠와의 질긴 인연은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