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감사한 선생님의 현명한 대처
다시 집으로 갈 수는 없었기에 일단 지하철을 타려고 하였다. 하지만 아직 첫차가 운행하기까지 1시간 정도 남아있었기에, 첫차 시간을 확인한 뒤 지하철 역 근처에서 행인들을 보면 걸어가는 척하거나 숨어서 시간을 보냈다. 일분일초가 너무나 느리게 갔다.
드디어 첫차 운행 시간이 가까워져 역사 내로 갈 수 있었다. 지하철을 기다렸고, 얼른 열차를 탔다. 목적지는 고민 끝에 이전에 가출했을 때 도움을 받았던 친구집 쪽으로 향하였다.
동생은 쏟아지는 잠을 못 이기며 피곤해하였고, 동생에게 어깨를 내어주며 일단 자라고 하였다. 나도 피곤했지만 두툼한 가방을 든 채 새벽에 지하철을 타는 두 초등학생이 수상하게 보이지 않을까 주변 시선을 살펴보느라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그렇게 역에서 내렸지만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에, 초등학생이 갈 수 있는 곳은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 계속 동네를 돌아다니며 시간이 흐르기를 바라다가, 겨우 밥을 먹거나 PC방을 갔던 것 같다.
친구가 하교할 때쯤이나 친구집에서 잠시 머물 수 있었고, 그 친구 집에서 먹었던 팥빙수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한 번도 우유를 넣을 생각을 해 본 적 없었는데, 친구가 우유를 넣어줬고 색다른 경험이었다. 너무 맛있어서 아쉬워했던 기억이 난다.
친구는 나에게 '반팔 후드집업'도 빌려줬었다. 당시 아빠가 사주는 대로 대충 입을 수밖에 없던 나는, 겉옷이 아니고 티셔츠처럼 바로 입는다는 설명에 충격이었다. 착용법이 이해는 안 갔지만 디자인이 예뻤던 그 옷이 꽤나 마음에 들었고, 친구에게 계속 신세를 지는 것 같아서 미안했었다.
그리고 '집 나온 거냐'며 묻는 카운터 직원의 말에 눈치가 보여, 더 이상 찜질방도 갈 수 없던 그때.
나는 고민하던 쪽지를 펼쳤다.
내가 가출을 하기 전 외갓집 식구들이 차례로 면담을 온 적 있었다. 이모, 외할머니, 엄마가 돌아가며 왔었다. 나에게 면담을 하러 가라는 담임 선생님의 말에 계속 거부하였으나, 선생님의 계속된 요청에 결국 상담실로 갔다.
나에게 계속해서 걱정이 되어 왔다는 등 말을 걸어왔지만 나는 다른 곳을 보았고 반응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꿈자리가 이상하여 무슨 일이 났는가 싶어 걱정했다고 하였다. 작은 선물을 주기도 하며, 아이스크림, 또는 번호가 적힌 쪽지도 받았지만 그들이 돌아가는 것을 보고 나면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이제 와서 나를 걱정하는 그들이 가증스러웠다. 나는 그날도 '집으로 돌아가면 언제 맞을지 모르는데, 찾아와서 걱정만 하면 뭐 하자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빠가 이 사실을 알면 미친 듯이 때릴게 분명하였기에, 찾아오는 것이 너무나도 싫었다.
담임 선생님께서 나에게 번호가 적힌 쪽지를 건네주셨다. 전달해 주라고 했다면서. 나는 계속 거절하였다. 선생님은 회유하였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선생님은 '그러면 본인이 번호를 가지고 있을 테니, 필요하면 졸업 후에라도 연락을 하라'라고 하시며 나에게 본인의 번호를 적은 노란 포스트잇을 쥐어주셨다.
그때 받은 쪽지를 가출할 때 중요하게 챙겨 나왔었고, 고민 끝에 공중전화로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은 무슨 일 있는 거냐며 걱정하셨고, 나는 그냥 번호를 받고 싶다며 안부인사를 하였다. 그렇게 받아낸 번호로 전화를 걸고, 떨리는 마음으로 통화가 연결되기만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