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던
아빠의 폭력은 시도 때도 없었다.
우리를 한겨울에 내복 바람으로 내쫓는다던지, 우리와 함께 들어가서 식사하던 식당 안이던 바깥이던 가리지 않았다.
집 겸 가게 앞.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보도블록 앞에 우리를 '엎드려뻗쳐 '시켜 행인들이 말리기도 했지만, '남의 가정사에 신경 쓰지 말고 가라'는 말에 그들은 애써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렸다. 나는 조금이나마 시간을 벌 수 있게 해 줌에, 그들에게 마음속으로 감사했다.
아빠는 매일 말보로레드 담배를 두 갑씩 피우는 대단한 사람이었다. 심지어 천식약을 달고 살면서도 말이다. 그 덕분에 어려서부터 간접흡연을 할 수밖에 없었다. 술도 좋아하여 근처 슈퍼마켓에서 우리에게 술, 담배 심부름도 많이 시켰다. 나중에 제재 때문에 사장님이 안된다고 하여 빈손으로 돌아가자 우리는 '어떻게든 사서 가져와라' 소리를 듣고 다시 슈퍼로 향하였다. 그렇게 빌기도 하고, 가끔은 빈 손으로 가서 맞기도 했다.
우리에게 어린이날 선물이라며, 예상외로 '플레이스테이션 2'를 사 온 아빠는 본인이 더 많이 사용하였다. 우리의 선물을 빙자한, 본인의 게임 욕구 채우기였다. 전투 게임 등을 좋아하던 아빠는 게임 시청을 강요하였고, 응원을 할 것을 원하였다. 플레이가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우리에게 화를 내었기에, 나는 항상 아빠가 게임을 잘했으면 하고 마음속으로 빌었다.
가끔은 집에 여자를 데려 왔는데, 몇 달 지나면 다른 사람이 자주 놀러 왔다. 친하게 지내라 했지만 내 옷을 내어주기도 하고, 이해 안 가는 행동들을 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등교준비는 아침에 기상하여 밥을 챙겨, 아빠가 깨지 않도록 조용하게 tv를 틀어 동생과 함께 보며 밥을 먹은 뒤 학교로 향하였다. 귀찮아서 대부분 밥통을 열어 밥만 담은 뒤, 물에 말아먹거나 국에 말아먹었다. 아침에 보는 어린이 프로그램은 정말 재밌었다.
아빠가 그나마 때리지 않을 때는 우리가 자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늘 자는 척을 하려고 했으나, 한 동안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려' 들켜서 혼나기도 했다. 그 뒤 노력한 뒤에 티 안 나게 자는척하게 되었는데, 동생은 되지 않아서 한동안 열심히 가르치고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아빠는 낚시를 좋아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낚시터에 끌려 다녔다. 좁은 차 안에서 추위에 떨며, 밤새 잠을 자기도 하였다. 떡밥을 만지고 그 감촉이 너무 싫었던 나는 아무리 씻어도 그 기름기가 사라지지 않아 손을 계속 씻었고, 그때부터 약간의 결벽증이 생겨났다.
우리가 점점 크자 낚시터에 따라갈 의사가 있는지 물었고, 종종 내키면 우리끼리 집에 있으라고 하였다. 그때가 유일한 우리의 자유시간이었다. 그때서야 마음 놓고 컴퓨터 게임과, 플레이스테이션을 하고 먹고 자고 했었다.
그리고 다시 긴장되는 순간은, 아빠가 돌아오는 소리였다. 아빠는 열쇠를 많이 들고 다녔는데, 해제되어 있던 긴장모드는 외출 후 들리는 열쇠 꾸러미 소리에 다시 시작되었다. 아빠에게서 벗어난 이후에도 열쇠 소리 트라우마는 몇 년간 계속되었고, 내 심장을 철렁 내려앉게 하였다.
그러던 중 나는 의도치 않은, 제대로 된 가출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