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것을 겪어냈음에
아빠는 우리의 학교 성적에 굉장히 엄격하였다.
원래도 승부욕이 있던 내가 상장을 타오면, 그날은 아빠의 기분이 좋아져 웬만해서는 때리지 않기에
대회에서 1등을 하고, 상장을 타려고 노력하였다.
내가 8살 때까지인가 구몬 학습지를 몇 달 했던 기억이 난다. 혼나지 않기 위해 열심히 하였고, 나름 흥미도 있어서 구몬 선생님이 잘한다고 칭찬하셨었다.
하지만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수록 기준은 높아져 갔다. 아빠 앞에서 동화책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면 글을 아직도 모르냐며 혼이 났고, 시계의 시침과 분침이 가리키는 곳을 바로 말하지 못하면 혼이 났다. 나는 그저 맞지 않기 위하여 미친 듯이 열심히 외울 뿐이었고, 긴장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통과하였다.
하지만 인생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법.
열심히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은 안되었다.
초등학생 고학년 무렵. 수학에 취약하던 나는, 시험 성적이 급격하게 낮아졌고 아빠에게 혼이 나다가 반복적으로 뺨을 맞았다. 순간 '삐-' 하는 이명이 들렸고, 귀에 물이 들어간 듯 먹먹하게 들렸지만 일단은 그 순간이 끝나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래서 참다가 귀가 잘 안 들린다고 하자, 조금 당황한 듯한 아빠가 폭행을 마무리 지었던 듯하다.
며칠이 지나도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고, 나는 물이 들어간 줄 알고 면봉을 사용하였지만 여전하였다. 병원 가는 것도 눈치가 보여 참다가 겨우 말을 하여, 병원에 가게 된 나는 고막이 파열되었다는 진단 결과를 듣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 무렵. 학교에서 체험학습으로 간 수영장에 혼자만 들어갈 수 없었다.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예쁘다며 입을 날을 기다려왔던 '형광 주황색 햄토리 수영복'도 입지 못하였다.
그리고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스피커와 같은 '큰 볼륨 소리'를 들으면, 고막 파열이 있던 곳은 이명과 함께 잘 들리지 않는다. 다행인 건 일반적인 청력은 괜찮다는 것. 하지만 그 후유증인지는 모르겠으나, 2년 전쯤에 전정기관에 염증이 생겨 치료를 받았었다.
당시 알림장에 부모의 사인을 받아가야 했는데, 아빠가 나중에 해준다던지 화가 나있는 날은 사인을 받지 못했다. 공란으로 제출하면 선생님께서 혼내시기에, 가끔 아빠의 사인을 따라 적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성적에 관하여 사인을 받아야 했는데, 아빠의 사인을 따라 하기가 어려웠던가? 지금 생각하면 '선생님도 어이없었겠다' 싶을 정도로, 다른 장에 적힌 아빠의 사인을 날렵한 가위로 세심하게 오려 붙였다.
선생님께 내밀 때까지 심장은 두근두근 터질 것 같았고, 당연히 티가 났기에 선생님은 이게 뭐하는거냐며 다시 제대로 사인을 받아오라고 하셨던 듯했다. 나는 창피하여 화장실로 숨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하여 친구들이 다 하교할 때까지 기다린 후, 선생님께 빌었다. '제발 이번만 넘어가주시면 안 되냐, 아빠에게 맞는 게 무섭다'라고 했던 듯했다.
선생님은 설마 했었는데 진짜 가정폭력이 있었냐며, 그동안 긴 청바지만 매일 입은 게 그 이유였냐고 하셨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지만, 긴 청바지가 피멍으로 가득한 우리의 하체를 가려주었기 때문인 듯하였다.
그 이후의 일은 정확히 생각나지 않으나, 선생님이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라며 넘어가셨던 것 같다. 그 시절답게 특별한 가정폭력신고는 이뤄지지 않았었다.
아빠에게 당한 폭력은 정말 수 도 없다. 집안에 죽도가 왜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죽도로 맞는 것은 기본이고 아빠의 손에 잡히는 대로 날아오는 물건에 맞기도 했다.
아빠는 종종 우리에게 '몇 대 맞을래?'라고 정하게 하였다. 적게 말하면 더 맞았던 기억이 있어서, 기본 10대 전후로 말했던 것 같다. 가끔 일부로 더 많은 횟수를 말하면 때리다가 본인이 지친 건지, '반성하는 거 같아서 이 정도만 때린다'며 원래 횟수보다 줄어들기도 했다. 나무판과 효자손 등으로 손바닥은 물론, 손등도 맞았는데 살이 적으니 너무나도 아팠다.
머리를 맞는 일도 일쑤였고, 손들고 앉았다 일어났다 n00번, 뒷짐 지고 엎드려뻗쳐 하기(이거 때문에 두상도 이상해진 것 같다) 도 자주 하였다.
특히 '엎드려뻗쳐'는 땀이 뚝뚝 떨어지며 힘들었는데, 그 상태에서 하체 여기저기를 죽도 등으로 때렸다. 그리고 종종 배와 명치를 발로 차서, 쓰러지고 숨 막혀하며 기절하기도 하였다.
기절한 뒤 잠깐 어두운 우주 탐험을 끝낸 후, 눈을 뜬 나에게 보이는 것은 내 뺨을 때리는 아빠의 손이었다. 아빠는 나에게 '이게 어디서 쇼하냐, 빨리 안 일어나냐'라고 하였다.
나는 느려진 몸을 움직여 다시 맞을 준비를 하였고, 한 번은 '숨을 못 쉬겠다'던지 '몸이 잘 안 움직여진다'하며 울어도 욕과 함께 뺨을 때리거나, 방치하거나 '물이나 마시라' 했던 게 끝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