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신에게 빌어도 막을 수 없던 신체적, 정신적 폭력
중년 부부의 호의에 나와 동생은 오랜만에 따듯한 라면을 먹었다. 거실도 우드톤에 전구색 조명이 아늑한 느낌을 주었고, 밖에서 계속 긴장 상태였던 우리는 한시름을 놓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여전히 의심이 갔다.
그렇게 식사를 다 마쳤을 때쯤, 아니나 다를까 경찰이 왔고 나는 친구네 집으로 가출했을 때와 같은 배신감을 느꼈다. '아 여기 오는 게 아니었는데' 하는 후회와 아빠를 볼 생각에 두려움이 밀려왔다.
동생과 나는 그렇게 경찰서로 향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이름과 나이를 묻는 경찰들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동생에게도 절대 말하지 말라 하였고, 들고 있던 책가방 속의 교과서에 적힌 학번과 이름도 가리라고 말하였다.
입을 꾹 닫은 채 교과서를 가리는 나를 보고, 경찰은 '어린 게 어른 머리 꼭대기에서 노네'라고 하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계속되는 질문에 결국 어쩔 수 없어서 신상을 말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집 근처 파출소로 인계되었다.
설마 했지만 아빠와 친하시던 경찰 분이 우리를 집으로 안내하였다. 경찰차에서 얼마나 두렵던지.
두려움으로 가득 찬 발걸음. 같이 간 경찰 아저씨 덕분에 잠시나마 숨을 돌렸지만, 해프닝으로 여기며 웃으면서 대화를 마친 경찰 아저씨를 배웅한 아빠는 다행히 우리를 바로 때리지 않았다. 할머니가 걱정되었는지 집에 와계셨었기 때문이었다. 그걸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할머니가 가신 뒤 맞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동생의 행동이 아빠를 화나게 하였고, 아빠는 할머니를 방에 계시라고 말한 뒤에 주방 쪽에서 동생을 미친 듯 때렸다. 할머니도 와계신데 이게 뭐 하는 거냐면서.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안 나지만, 작은 실수였어서 '본인이 안 때리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아빠의 폭행이 끝난 후, 울고 있던 우리에게 온 할머니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내 자식이지만 답이 없다. 도망갈 거면 멀리 도망가라.'는 내용의 말이었고, 절대적인 압박이 느껴져 충격적이었으며 도망가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어린이인 게 한탄스러웠다.
아빠는 늘 우리를 때린 뒤 호랑이 연고를 발라주었다. 진짜 '병 주고 약 주고'였다. 무슨 심리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멍든 게 알려지면 안 돼서였을까? 우리의 하체는 항상 '파랑, 빨강, 보라'색으로 피멍이 들어 퉁퉁 부어 걷거나 앉기 힘들었다. 맞은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피부가 뜨거워서, 교실의자와 책상의 쇠 부분에 대며 시원함을 느끼기도 했다.
우리가 아프거나 가출을 하고 난 뒤면, 아빠는 무식하게도 우리를 이불로 감싼 뒤 다른 이불 아래에 넣었다. 보일러 온도를 뜨거울 정도로 올려, 몸을 지지게 하였다. 우리는 뜨거워서 괴로웠고 땀이 많이 흘러 힘들었지만, 말할 수 없었다.
가출의 긴장감이 풀린 나는, 한 때 잠을 많이 잤다가 아빠에게 '잠을 왜 이렇게 많이 자냐. 밖에서 임신해 온 거 아니냐'는 소리를 들었다.
어릴 때부터 춤추는 것을 좋아해서 가끔 거울을 보며 춤을 췄었는데, 그걸 걸린 초등학생 딸에게 '엄마처럼 몸 팔려고, 벌써부터 준비 중이냐'라고 폭언을 퍼붓던 사람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