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고문이었던 편식 없애기'
아빠는 어린 내가 알약을 못 삼켜 약국에서 약을 빻아 가루약으로 타오는 것을 못마땅해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무조건 알약 그대로 가져오라고 엄마에게 엄포를 놓았고, 나는 두려워했다.
'못 먹는데 설마 정말 먹이겠어? 먹을 수 있을까?' 라고 생각했지만 나의 오산이었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가루약만 먹던 어린 나에겐 너무나 크던 알약을, 삼키지 못해 괴로워하던 순간이.
울면서 켁켁 거리며 못 먹겠다고 했지만, 그 약을 삼킬 때까지 나는 다른 것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입 안 속에서 약이 점차 녹아, 쓰고 이상한 맛이 느껴져 괴로워하였고 작아진 알약을 겨우겨우 삼켜냈다.
엄마와 떨어진 이후에도 아빠는 이것저것 우리에게 먹였다.
아직 어린이였는데 말이다. 아직도 생각나는 생생한 맛과 향과 식감.
'편식하면 안 된다, 음식 남기면 안 된다' 했지만 정도가 지나쳤었다.
성인도 싫어하는 호불호 강한 음식들을 애석하게도 우리 아빠는 잘 먹었고, 어린 우리에게 반강제적으로 먹게 만들었다. 먹기 싫어하며 머뭇거리면 아빠의 무서운 눈빛에 부딪혀, 바들바들 떨며 입 안으로 겨우 음식을 넣었다.
산초나무 가지의 열매를 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나는 어린 나이에 산초 열매를 보았고 먹을 것을 강요당하였다. 맛과 향이 특이하여서 신기했지만 계속 먹고 싶지는 않았고, 입 안이 껄끄러워지는 느낌이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아빠는 몸에 좋다며 생 마를 잘라서 주었다. 아직도 그 끈적임과 맛이 기억난다.
그리고 셀러리도 마와 함께 자주 주었다.. 마요네즈와 먹으면 그나마 먹을만했지만 그마저도 제지하여 너무 힘들었다.
아빠는 낚시를 좋아했고 종종 잡아 온 물고기를 요리할 때도 있었고, 사 온 생선을 손질해 요리해 준 적도 있었지만 비늘 제거가 제대로 되지 않아 먹기가 싫었는데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밥상에서도 아빠가 우리의 언행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국자나 수저로 머리를 때리고 그 이상으로 가면 밥상에 있는 것들을 던지고, 폭력이 시작되니까.
마음 편하게 밥을 먹은 적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마시듯이 음식을 삼켜 빠르게 식사를 끝냈다. 아빠와 한상에 앉아 먹는 것은 너무나도 불편한 일이었기에. 가끔 아빠가 좋은 일이 있어 기분이 좋은 경우에만 마음 편히 식사하였다.
그리고 정말 싫었던 홍어.
그것도 삭힌 홍어를 먹게 했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처음 보았을 때는 냄새가 심하여 뭐 이런 걸 다 먹지? 했고 설마 먹으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했는데
설마가 진짜였다. 아빠는 우리에게 삭힌 홍어를 먹게 하였고, 나와 동생은 머뭇거리며 젓가락으로 홍어를 잡아들었고 입으로 넣었다. 그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암모니아 원액 냄새와 맛 그 자체였고 씹어서 삼키라는 말에 뱉고 싶었지만 계속 오물오물 물고만 있었다.
정말 역겨웠고 속이 좋지 않아 토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정말 삼킬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리하여 화장실에 가서 변기에 뱉어 버리려고 화장실에 다녀오겠다 하였는데
눈치를 챈 아빠가 다 먹고 입 안을 보여주고 가라고 하여서 당황했다.
난감해진 나는 오물거리며 고민하다가 먹는 척하며 혀 밑으로 겨우 숨긴 뒤 허락을 받아
화장실로 가서 뱉어내었다. 다녀온 뒤 보니 동생은 곧이곧대로 먹은 듯하였다.
그 외에도 일단 먹으라며 보신탕을 먹인 뒤에, 보신탕임을 알려주며 반응을 보며 지인 아저씨들과 즐거워하던 아빠의 얼굴이 떠오른다.(정말 보신탕이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속이 안좋았다.)
양평해장국 선지를 먹게 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당시 어렸던 나는 선지를 보고 비릿한 냄새와 맛이 너무 싫었고 기괴한 모양에 더 거부감이 들었으나, 아빠는 나의 빈혈 치료를 위해 먹어야 한다며 계속해서 선지를 먹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해장국이 맛있어서 점차 적응이 되었다는 거.
그 외에도 닭발, 알탕 등도 먹였고..
덕분에 진짜 별에 별 음식들을 다 먹어보아서
성인이 된 이후에도 어지간하면 다 잘 먹는 사람이 되긴 하였다.
하지만 위에 적은 것처럼 생생하게 싫어진 것들은 성인이 되어도 마찬가지다.
맛을 알려주는 체험이었다면 좋았을텐데, 그는 막무가내였고 지속된 강요는 특정 음식에 대한 거부감만 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