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보다는 친구, 집보다는 학교

'가족 액자가 한 번도 없던 이십여 년'

by xohee

친구들 집을 놀러 가면 가족액자들이 걸려있었는데, 우리 집에는 없던 게 다른 집들에 다 있으니 뭔가 이질감이 들었다. 정말 한 번도 안 찍은 걸까? 아니면 아빠가 우리를 앞에 두고, 앨범을 모두 꺼내 사진마다 엄마를 모두 찢어낸 그날처럼 찢어버려서 없는 건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렇게 고통을 함께하던 하나뿐인 나의 남동생과는 잘 지내려 했던 편이다. 의지 할 곳은 둘 뿐이었으니.

하지만 동생은 어렸고 눈치가 없어서 둔했으며, 아빠의 의처증으로 인한 미움으로 너무 많이 맞아서였을까?

아니면 어린아이여서 당연한 언행이었을까? 점점 나의 말을 듣지 않고 나를 괴롭히기 시작하였다.


말을 듣지 않는 동생을 야단치면 나에게 돌아오는 동생의 말은 "네가 뭔데! 네가 엄마야?"였다.

그 말이 마음이 아프면서 화가 났다. 내 말을 들어야 우리 둘 다 덜 혼나고 안 맞는데

철이 일찍 들어버린 나에게는, 그저 한 없이 눈치 없게 느껴진 동생의 언행들은 덩달아 나도 아빠에게 구타를 당하게 만들었다.


당시 우리 아빠는 예습이랍시고 교과서를 종합장에 옮겨 적는 '빽빽이'를 시켰다. 무식할 정도로 2~3번씩 쓰게 시켰고 팔이 떨어져 나갈 거 같았다. 우리는 함부로 놀이터에 갈 수 없었다. 방과 후면 거의 바로 집으로 들어가야 했다. 친구의 생일 파티를 가본 적도 없다.


놀이터를 가려면 조건이 있었다. 아빠가 납득할만한 '적당한 학습량'을 채우고 조심스럽게 물어볼 것.

아빠는 기분에 따라 똑같은 양을 공부해도 말이 바뀌며 때릴 때도 있었기에 나는 늘 눈치를 보았고, 놀고 싶어도 참아야 했다.


하지만 동생은 달랐다. 늘 놀고 싶어 했고 아빠가 무서운 나머지 나에게 아빠에게 '놀아도 되는지' 물을 것을 강요하였다. 그것도 공부를 거의 하지 않은 채로 말이다. 그래서 '여기까진 풀어라', '조금 기다려라' 이런 말은 동생에게 통하지 않았다. 그저 놀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던 동생은 함께 공부하던 커다란 네모 책상 밑에서 나를 발로 차고 꼬집으며, 아빠 몰래 나를 괴롭혔다. 동생에게 그만하라고 하면서도 아빠가 이 모습을 보면 혼낼까 봐, 우리 쪽을 쳐다보면 사이좋게 공부하는 척을 하였다.


아빠를 무서워하던 동생은 '놀아도 되는지' 물어볼 것을 매번 나에게 시켰고, 본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내 물건을 가져다 숨기기도 하였으며, 부수거나 망가트리며 협박을 하기도 했다. 한 번은 내 어깨를 연필로 내리찍어 연필심 자국이 남아 점처럼 되었는데, 현재 피부과에서 제거하려는 중이지만 너무 깊어서 여러 차례 치료 중이며 흉이 더 심해지는 거 같아 화가 난다. 엎드려 누워 놀다가 동생이 들고 있던 연필에 발목이 찍혀 이 또한 연필심 자국이 나있어서, 두 배로 화가 난다.


정말 어렸을 때부터 동생이 글렀다고 생각한 건, 본인이 내 대신 설거지 한 번 했다고 500원을 달라했던 사건이었다. 대부분의 설거지를 했던 나는 장난인 줄 알고 웃으며 알겠다 했지만, 동생은 다음날부터 돈을 내놓으라고 강요했다. 그래서 '나중에'라고 했더니 3일 정도만에 이자가 붙었다며 몇천만 원이랬나? 말도 안 되는 금액을 말하며 내놓을 때까지 학교를 못 간다며 문을 막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래서 겨우겨우 따돌리고 달려서 학교까지 달려갔는데, 반까지 따라와서 소리 지르며 내 이름을 불러대서 숨었고 쉬는 시간마다 찾아왔다. 겨우 한시름 놓았나 싶던 나날. 안심할게 아니었다.


교실 TV로 조례 방송의 마지막, 분실물을 찾아주려고 보여주는 차례에 나의 운동화가 보였다. 당황한 나는 바로 찾으러 가서 어떻게 여기서 들고 있냐 하니, 학교 내에 덩그러니 놓여있어서 누군가 주워왔다고 했다.

이 사건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고, 나는 주인을 찾는 분실물들 차례에 내 운동화가 또 나오지 않을까 여러 날 마음 졸였다.


집으로 가는 나는 항상 보도블록을 보며 걸었다. 아니 땅을 보며 걸었다. 하늘은 본 적이 얼마나 되었을지.

한 발짝 한 발짝 내딛는 걸음이 무거웠다. 집으로 가기 싫었다. 가족들이 너무 싫었고 사라지고 싶었다.

집에 가면 오늘은 무사히 흘러 보낼 수 있을까. 아빠의 기분은 괜찮을까 늘 걱정하며 깊은 한숨을 달고 살았다. 덕분에 나는 '어린애가 무슨 한숨을 그렇게 깊게 쉬냐, 땅 꺼지겠다' 소리를 들을 정도로 한숨 쉬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keyword
이전 04화편식 없는 어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