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의 시간이 그리 오래 남은 게 아니란 생각이 퍼뜩 들었을 때, 일출을 꼭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ChatGPT에게 물었다. "로마에서 일출 보기 좋은 장소는?" 그는 우리 집 주소를 기반으로 세 군데를 제안했는데, 핀초 언덕과 오렌지 정원 그리고 콜로세오 근처 공원이었다. 아무래도 새벽에 도보로 이동하는 것보다 전철이 조금 더 안전할 것 같아 나는 핀초 언덕을 골랐다. 사실 살짝 의심이 들긴 했다. 왜냐면 이 세 군데 모두 저녁노을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다음 날 날씨도 맑을 것이기에 아름다운 아침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그의 말에 가슴 설레며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 6시 10분에 떠나서 근처 전철역에서 A선을 타고 이동하는 계획이었다. 5분이 늦어졌고 부랴부랴 집을 나서서 전철을 탔다. Spagna에서 내릴까 아님 Flaminio에서 내릴까 잠시 고민이 됐는데, 조금이라도 안전한 길을 택하는 게 나을 것 같아 Spagna에서 내렸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 스페인 광장 쪽으로 나오는 출구는 아는데, 계단 위 성당 쪽으로 나가는 출구가 헷갈리는 것이었다. 보르게제 공원 쪽으로 안내가 된 출구가 있어 가는데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게 더 무서움. 암튼 나를 앞질러 가는 운동복 차림의 젊은 여성 뒤를 살그머니 따라갔다. 그랬더니 스포츠 센터 주차장이 나올 기세. 시간은 점점 가고 안 되겠다 싶어서 얼른 방향을 틀어 다른 구멍으로 나왔는데 차도가 바로 보인다. 보르게제 공원으로 가는 도로에 한적한 길이라 뭔가 잘못됐다 싶었고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스페인 광장 쪽으로 나오니 이미 세상이 환하다. 환한데 하늘이 흐렸다. 나는 당황했지만 우선 계단을 열심히 올랐다. 하늘 한 구석이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는데 그건 역시나 광장에서 내려다본 방향이 아니라 내 등 뒤였다. 일출로 유명할 수 없는 위치였다.
웃음이 났다. "내가 그럼 그렇지!" 그래도 일단 목표지를 찍기 위해 핀초 언덕 쪽으로 급히 걷기 시작했다. 도착했는데 더 웃겼다. 진입로 공사 중. 하늘은 여전히 흐렸다. 하는 수 없이 스페인 계단 쪽으로 다시 돌아와 나름 위치를 잡고 아침기도를 올렸다. 그 아침의 하늘은 나의 인생과 참으로 닮아 있었다.
아주 오래전에 꾼 꿈이 있었죠.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낡은 성무일도서를 열고 아침기도를 나지막이 읊는 것이었어요.
그 꿈을 이루고자 바삐 움직인 아침이었습니다.
살짝 겁이 나기도 했지만 이른 아침 혼자서 길을 나섰어요.
안개가 자욱했지요. 분홍 빛으로 물든 하늘 한 켠은 새로운 하루를 여는 새 태양의 존재를 알렸어요.
시야가 가려지는 아침의 흐릿한 회색은 그러나 너무 우울한 빛깔은 아니었습니다.
깔깔깔 웃고 싶었어요.
설레는 마음에 밤잠도 설치고 기대감 가득 안고 나왔잖아요.
수틀린 나의 계획이 우스꽝스러워지는 순간이었지요.
당황스러웠던 그 순간 피식하고 웃는 게 어쩜 이렇게 나다울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완벽하지 않아 아름다울 때가 있었습니다.
뭔가 제대로 되지 않으니까 편했던 적도 있었죠.
최고의 멋진 장면을 보지는 못해도 크게 아쉽지 않은 것처럼요 나는 나의 삶을 즐긴 거죠.
그렇게 흐린 하늘을 보며 그래도 태양은 있다고 외치는 나의 삶을,
저 안개 너머의 가려진 진실을 향하며 그래도 진리에 가 닿으리라 소망하는 나의 삶을,
찬란한 아침 하늘빛으로 나를 물들이진 못했어도 오묘한 회색이 담아내는 가려진 가능성을 보았어요.
나는 늘 걸어갑니다.
꿈을 안고 걸어갑니다.
아침 하늘을 보고 또 담고, 담아서 닮고 싶었던 그 마음은 온전히 나의 것이지요.
사진으로라도 갖고 싶었던 그 하늘 향했던 마음이 참으로 소중했어요.
그러면 됐습니다. 이른 아침의 수고가 헛되지 않은 거예요.
비록 안개 낀 것처럼 앞이 보이지 않고 모든 것을 놓쳐 버린 것만 같은 허무함이 밀려 온대도
우리는 아직 아침을 살고 있고, 나의 하루는 그 무엇도 보여주지 못한 고운 빛깔들을 이미 잉태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