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면 나는 늘 화가 나 있었던 것 같다. 세상에 대한 화였다. 어른들에 대한 화였다.
어린 나의 눈에 세상은 무언가 크게 잘못되어 있었는데, 아이를 돌보아야 할 어른이었던 세상은 나를 아프게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런 어른 따위는 되고 싶지 않았다. 세상이 미웠다. 화가 많이 났다.
세상의 거친 모습이 무서워서였을까. 그에 화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화를 표현하지 않았다. 나는 그와 같아지기 싫었기 때문에 화를 내지 않는 방식으로 나의 화를 살아냈다.
내 안을 가득 채운 그 뜨거운 힘은 켜켜이 쌓여 두꺼운 회색 먼지층이 되었다. 그렇다. 참 무거웠다. 마음이 짓눌린 건지 몸이 짓눌린 건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짙은 먼지들에 눌려 가쁘게 숨을 쉬었다. 찬란했던 나의 세상이 빛을 잃었을 때 나는 그 빛바랜 먼지들을 뒤집어쓰고 주저앉았다. 몸무게가 늘지 않았어도 한 발짝 떼어 앞으로 나가는 게 어려웠다. 아주 깊은 우울감으로 변해 버린 나의 화가 나를 그렇게 붙들었을 것이다.
차라리 불이라도 붙어 다 타버렸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다면 가벼워진 재로 변한 그 마음들 훌훌 날려 버릴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습했다. 내 영혼을 완전히 적셔버린 눈물 탓에 불씨가 자라날 틈이 없었다.
손에 힘이 빠지고 또 얼굴이 굳어졌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고 내 눈을 바라봐 주는 것조차 힘들었다. 나에게 사과하지 않고 도리어 나를 나무라는 세상에 화가 났기에 나를 향한 외부의 그 어떤 것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땅속을 파고들어 나의 성을 짓기 시작했다. 어두운 곳에 견고한 성은 다름 아닌 나의 우울이었다.
때론 작은 불씨를 동력 삼아 남들보다 더 바쁘고 성실하게 일했다. 그러나 언제나 내가 돌아간 곳은 그 깊은 우울의 성이었다. 나의 울음만 메아리치는 견고한 성 안에 작은 불씨를 가두었다.
세상을 향한 불이 타올랐다면 좋았을까? 잘 모르겠다. 세상이 너무 밉고 화가 났는데, 역설적이게도 나는 내 작은 불씨가 행여 세상을 아프게 할까 두려웠다. 그렇게 나의 불쌍한 화는 제 구실도 하지 못한 채 깊은 우울의 성에서 외로이 목숨을 부지하였다.
우습게도 어차피 네가 아니었으면 존재하지 못했을 성이었다. 그러니 우울함으로 물든 성벽은 너의 다른 이름이었을지도 모른다. 허물어라. 그 모든 것을 허물어라. 그리고 너의 그 작음을 그러나 뜨거움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라. 타오르는 불인 너를 이제 내가 용서하오니, 모든 것을 태우고 허물어버려라. 그 누가 알겠는가. 마음대로 부는 바람이 홀연히 타고 남은 재를 날려버려 귀한 진주를 드러내게 할지.
작은 불씨야, 이 용서의 바람을 타고 마음껏 날아라. 그렇게 너 자신을 살아라. 너의 이름이 화든 아니면 분노든 다 괜찮다. 그 이름 불러줄 내가 있으니 모든 게 다 괜찮은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