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2주간 화요일] 나를 바라봄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마태 23, 12)

by 어엿봄

사진을 통해 본 내 어린 시절의 얼굴이 떠올랐다.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당당한 자세와 밝은 표정이 참 인상적이다. 그때는 부끄러운 것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남들 앞에서 노래하고 춤추면서 그냥 모든 게 즐겁고 신났다. 내가 받는 박수가 즐거움을 키운 힘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내 안의 즐거움이 터져 나오는 힘이었던 건지 확실치는 않다.

학창 시절에도 사람들 앞에 서는 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여전히 밝았고, 활동적인 학생이었다. 그러나 인생의 즐거움은 전과 같지 않았다. 아마도 어느 날 내 세상의 빛깔을 잃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세상의 어둠이 내 피부를 뚫고 들어온 이상, 벌어진 틈으로 새어나가는 빛깔을 붙잡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땐 그랬다. 돌아보면 난 참 의연했던 것 같다. 한층 어두워진 세상을 바라보며 다짐했다. 더 이상 어두워지게는 놔두지 않겠다고. 그러니 나는 세상을 지킬 힘을 가지리라고. 이름을 날려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힘 있는 여성이 되고 싶었다.


물론 꿈은 꿈일 뿐이다. 나는 세상은커녕 그저 나 돌보기에도 힘쓰기 바쁜 평범한 마흔이 되었다. 내 지나간 꿈이 부끄럽고 나를 열어 보이는 게 부끄러울 뿐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 터져 나왔던 인생의 즐거움이란 힘은 누군가를 위에서 누르는 성질을 지니지는 않았었다. 가장 작은 내가 되어 그 힘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다. 나를 낮추고 또 낮춰본다.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마태 23,9-12)


제일 작은 나, 흙으로 빚어진 내 시작에 하느님의 따뜻하고 고운 숨결이 있었다. 그리고 자라나는 내 여정에 나를 가르치고 이끈 스승 그리스도의 정겨운 동반이 있었다. 세상의 빛깔을 잃어버린 순간, 마치 나 자신을 모두 잃어버린 것과 같았던 그 순간에도 내 안의 숨결이 내 심장을 뛰게 했다. 그렇게 나를 살게 했다. 그러니 나의 작음은 참으로 귀했다. 부스러질 그 연약함을 내가 사랑한다. 모든 것을 잃어버려 아무것도 남지 않은 그 가난함이 좋다. 비워져야 채워진다는 진리로써, 주님의 힘을 받고 그 힘으로 자라나니 그분께서 나를 높이실 것이다. 그 높음은 힘으로 누르기 위해 누군가의 위에 있음이 아니요, 어쩌면 더 넓게 보고 끌어 안기 위한 높음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힘닿는 데까지 사랑하여 섬기는 일, 그 작고 연약함에 새겨진 강함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 하느님께 더 큰 영광이 되리라. 그를 위하여, 나는 다시 이 내 작은 얼굴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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