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편에 서지 않는 자 (루카 11,23)
사람들이 갖는 선입견과 편견이 무서울 때가 있다. 그가 내 지향과 원의에 갖는 직감은 그의 것이지 나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가진 직감을 살며시 내려놓는다. 나는 옳지 않고 그가 옳은 것만 같다. 안타깝게 우리가 함께 한 시간과 쌓아온 경험들은 서로에 대한 앎이 옳음을 증명해주진 않는다. 애초에 그가 나를 바라보는 그 틀의 변형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내가 어떤 표징을 보인다 한들 그의 시선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게 조금은 서글픈 우리의 현실인 것일까.
기적을 행하는 예수님을 보고 군중은 놀라워하지만, 몇 사람은 그분이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라 한다. 그리고 또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느라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요구한다. 예수님은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서면 망할 터인데, 왜 사탄이 서로 갈라지려 하겠냐며 말씀하신다.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
(루카 11, 14-23 참조)
내가 느끼는 나와 남이 느끼는 내가 다를 때가 있다. 수많은 남들은 각기 다른 느낌을 내게서 얻는다. 그중 어떤 사람들이 갖는 나에 대한 표상의 힘이 매우 크다는 걸 발견했다. 그의 시선을 통해 나를 바라본다. 내가 잘못했다는 느낌이 지워지지 않는다. 나는 그의 사랑과 인정에 목말랐기 때문에 그 시선에 나를 맡기고 싶었다. 나에 대한 그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맞춰가는 게 내가 원하는 걸 그에게서 얻게 해 주리라 믿었다. 그는 좋은 사람이어야 했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어야 했기에, 나에 대한 그의 평가가 좋은 결과를 내어야 했다. 그 좋은 결과란 결국 그의 기준을 따라 열매를 맺고 검증받는 것이었다. 그러나 개인의 가치는 자기에게만 좋은 것일 수도 있으니, 자신의 선이 타인에게도 꼭 절대적인 선일 수는 없다. 따라서 그의 선이 나에게도 선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
내 편인 것 같은데, 나와 함께 모아들이고 있는 것 같은데, 그는 나를 반대하고 있고 나를 흩어버리고 있다. 그를 너무 갈망했기에 나는 그의 편에 서 있고 싶었고 그와 함께 모아들이고 싶었다. 그리함으로써 나는 내 편이길 포기했다.
폭풍우 속에 모든 것을 삼켜버릴 것 같은 파도가 몰아쳐온다. 그가 내 옆에서 나를 지켜주었으면 했다. 내가 느끼는 공포와 두려움을 온전히 느껴주고 나를 안아주었으면 했다. 적어도 그 한 사람만큼은 내가 바라는 사랑을 나에게 남김없이 주기를 갈망했다. 그를 갈망했다. 그러나 그는 너무 멀리 있다. 그의 선과 나의 선이 닿는 날이 오기는 할까. 마음이 쓰리다. 그렇다고 우리가 향한 하느님이란 절대적인 선 안에서 언젠가 만날 수 있으리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 또한 그 자신의 폭풍우 속에 헤매고 있는 것일 테니 말이다.
고요한 적막을 깨고 울리는 목소리들이 있다.
"괜찮아?"
"저 파도를 타고 확 넘어가버려!"
"몸이 많이 젖어서 많이 춥겠구나."
"힘내!"
"너를 꼭 안아줄게."
친숙하고도 낯선 목소리들이다. 분명 내가 들어본 목소리들인데, 이 따뜻함이 낯설다. 그들에게 갈망해 본 적 없었던 따뜻함이다. 낯선 목소리들은 내 안을 울리는 나의 목소리가 되었다.
폭풍우의 짙은 어둠이 지나가고 밝고 따뜻한 분홍빛 아침이 열렸다.
수많은 틀에 못 박혀 죽은 예수의 차디찬 몸이 빗물과 함께 다 녹아 땅 속으로 사라졌다. 모든 것이 평안을 되찾았다. 아니, 평안을 되찾은 것은 나 자신이다. 차분한 내 안에 스며들어 새겨진 주님의 이름을 본다. 새로운 내 마음의 이름이 나를 살린다.
반대를 넘어서야 하는 때가 있다. 흩어버리려는 힘에서 나를 지켜야 하는 때가 있다. 나의 힘은 밖에서 오지 않는다. 나를 향했던 날카로운 시선에 나를 맡기지 않아도 된다. 내 중심에 있는 이름을 향해 모여든 사랑이 있다. 작지만 강한 힘이다. 새로운 목소리들이 내 안에서 울린다. 같은 편의 목소리다. 나의 목소리다.
폭풍우는 몇 번이고 더 나를 거세게 흔들어 놓을 것이다. 그를 갈망했던 만큼 상처받은 나를 폭풍우는 가만두지 않고 삼키려 들 것이다. 나를 완전히 없애려 들 것이다.
다시 지새야 할 밤에 또 절망하고 울겠지만, 아침 해는 늘 그렇듯 떠올라 깊은 상처를 비출 것이다. 새롭게 밝히는 빛 아래 나는 나를 보고 그대들을 볼 것이다. 죽음을 통과해야만 부활할 수 있음을 믿는 나는, 새롭게 태어나는 내 사랑으로 다시 일어날 것이다. 나는 그렇게 그로부터의 자유와 구원을 쟁취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