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마르 12,34)
봄비 흩날리는 아침, 문득 우산 너머의 연둣빛 나뭇잎들을 보았다. 그리고 잿빛 하늘 아래 뺨을 스치는 쌀쌀한 바람을 느꼈다. 감각이 살아있고 나는 그 감각들을 의식한다. 공기를 맡고 풍경을 보고 소리를 들으며 걸어가는 나 자신이 있다. 의식적으로 누군가를 향하고 내 온 감각으로 그를 느끼니, 사랑의 시작이다. 마음과 생각과 힘을 다할 사랑의 시작이다. 그러나 나의 감각은 이내 시들해질 것이다. 그를 향해 걸어갈 이 내 몸의 힘, 그를 그리던 기억의 선명함, 피부에 와닿는 따스한 느낌까지 모두 사라져 버릴 것들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모두 잃어갈 것들 뿐이다. 내가 가진 육의 한계에 따라서.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하고 이르셨다. (마르 12,32-34)
하느님을 사랑하고 또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계명이다. 내가 지켜야 할, 내 삶에서 실현시켜야 할 가치들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고 또 들리지 않는 하느님에게 나는 내 온 의식을 집중하여 그분을 느끼려 한다. 오늘 내가 가진 감각의 한계 안에서 최대한 손과 발, 귀와 눈, 그리고 마음과 생각을 뻗어본다. 그 감각의 끝에 닿는 것은 한 사람이니 그를 향한 사랑이 솟아난다. 사랑은 나를 열어 그에게 나아가고 또 열린 그의 안에 들어간다. 하느님이 애초에 나를 사랑하여 세상에 내었다. 그리고 내게 바쳐진 한 목숨으로 나는 살았다. 나를 안았던 부모의 품과 내게 웃었던 친구들의 미소와 나와 함께 노래했던 연인들의 음성을 이 순간에도 나는 느낀다. 희미해진 기억들 사이로 이 모든 경험은 사랑이라는 의미로 내 안에 남았다. 감각의 능력들은 사라져도 감각의 체험들은 내 안에 영원히 산다.
오늘이 허락하는 감각만큼의 사랑을, 내 최선을 다해 그 사랑을 하고 싶다. 그 최선이 그대를 그리고 하늘을 향한다. 감각의 한계를 치는 만큼 내 영혼의 사랑이 깊어지니 하늘로 향하고 싶은 만큼 땅으로 내려간다. 잃어버릴 순간이 언젠가는 올 것이다. 저 하늘의 빛깔을, 나뭇잎의 살랑거림을,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를, 내 뺨에 흐르는 뜨거운 눈물을 느끼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내 젊은 시절 뜨겁게 사랑했던, 나 자신 전체를 쏟아 사랑했던 그 순간들의 감각은 내 깊은 내면의 소중한 의미로 남을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여전히 당신에게로 흘러 넘칠 것이며 나는 그렇게 당신과 함께 한분이신 그분께 나의 마음, 생각, 힘을 다 드릴 것이다. 잃는 만큼 채워지는 사랑은 나를 풍요롭게 하리니, 초연히 나의 한계를 마주하고 싶다. 한계를 사는 것은 그리도 보람찬 일이다. 사랑의 의미는 봄비 개인 하늘이 아니라, 내가 낡는 시간 동안 깊어진 나의 땅, 즉, 내 세상에서 반짝거린다. 이렇게 하느님 나라가 더욱 가까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