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 (마태 5,19)
내 안에 따스한 사랑이 들어왔다. 누군가가 지불한 값으로 얻은 내 생명에 대해 감사하다.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낸 하늘이, 그 어마어마하게 넓고 큰 하늘이 나를 향해왔다. 그 하늘에 기대앉는다. 적막한 땅을 채우는 하늘의 고운 선율에 나를 맡긴다. 이 노래는 자신의 사명을 다할 때까지 그치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은 오늘 율법과 예언서의 폐지가 아닌 완성에 대해 말씀하신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마태 5, 17-19 참조)
내게 심어지고 또 전해진 가르침의 핵심은 사랑이다. 내가 지키는 계명을 통해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가에 대해 가장 먼저 존중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나는 당신을 존중한다. 횡단보도에서 녹색불로 바뀔 때 길을 건너고, 마트에서 빵을 살 때 정해진 값을 지불하고, 학교 수업 시작 시간을 지키고, 식사 부재 시 공동체에 미리 알리는 것 등등 내 모든 행위들에는 당신을 존중하는 내 마음이 있다. 내 기분이 상했다 하여 당신에게 욕하거나 때리지 않고, 불리함을 느낄 때 거짓말하지 않고, 나보다 더 가난하다 하여 무시하지 않고, 당신이 도움을 청할 때 손을 내밀고, 홀로 걸어가는 당신 곁에 가서 함께 걸어가고, 내가 아플 때 울어준 당신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존중의 표현이다.
나는 나를 존중하고 또 당신을 존중한다. 귀한 존재로 대접받아야 할 우리다. 존중이라는 행위의 주체와 객체 사이의 관계를 떠올린다. 우리가 살고 있는 관계들을 바탕으로 율법과 예언서의 진정한 가치가 빛을 발할 것이다. 내게 새겨지고 전해진 가르침을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친다는 것은, 내가 관계 안에 존재함을 전제로 한다. 당신과 나 사이에 분명히 그어진 선을 내가 넘어간다. 이것은 존중과 보전의 행위인가 아니면 침해와 폭력의 행위인가. 당신을 사랑하여 당신의 공간 안에 손을 뻗었다. 그러나 나의 존중은 들음이요, 따름이니 당신이 내게 내어주는 만큼의 자리에 손을 뻗는다. 존중은 다시 소통을 전제로 한다. 나에게 가치 있는 행동이 그대에게는 그만한 값어치를 하지 않을 수 있으니 나의 사랑과 그대의 사랑을 말하며 이해한다. 끝없는 나눔을 통해 나는 나에게서 나오고 당신은 당신에게서 나오니 함께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함께 나아가는 곳은 다름 아닌 善이다. 내가 좋아하여 기울게 되는 사랑이 점차 善이라는 어떤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가치과 닮아가니 내가 품는 사랑은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다. 당신을 다치거나 아프게 하지 않을 우리 모두의 사랑이다.
자신의 귀한 생명을 바쳐 타인의 귀한 생명을 살린 사랑을 떠올린다. 그 참된 선은 더 이상 멀리 있는 하늘이 아니다. 내 안에 울리는 하늘의 선율은 경계를 넘는, 당신에 대한 깊은 존중으로써 그 선을 지켜주는 사랑에 대한 초대다. 우리 마음에 새겨지고 또 전해져 온 가르침은 모두 이루어져야 한다.
당신의 얼굴을 떠올린다. 나는 오늘도 당신과 소통하여 당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련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사랑이 주는 기쁨은 나의 얼굴에서 빛날 것이다. 그 빛만큼 더 값진 증거도 없으니, 우리 서로의 모범으로서 사랑을 키워내자. 자신이 옳다고 믿으며 귀를 닫고 우리 소중한 땅을 전장으로 만드는 이들에게 마음껏 보여주자. 그렇게 사랑이 완전해질 때까지 함께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