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3주간 월요일] 드러나는 본질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루카 4,30)

by 어엿봄

내가 걸어온 길 그리고 걸어가야 할 길. 가끔 이 길에 서 있는 내가 누구인지 헷갈린다. 다시 본질에 대한 질문이다. 그 본질의 현현(顯現)에 관한 질문이다. 나는 나로서 존재하고 드러내기에 자유로운가에 관한 질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나자렛으로 가시어 회당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루카 4,24.28-30)


자그마치 20년 전에 한 사람을 사랑했고 아파했다. 사랑에 참 미숙했던 시절이었다. 보이는 내가 아닌 존재하는 나로서 이해받고 사랑받고 싶었다. 그러나 존재하는 나를, 그리고 내 안에 품었던 그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는 데에 실패했다. 그래, 그때의 이별을 나는 나의 실패라 믿었다. 다시는 실패하고 싶지 않았고 그리하여 다시는 한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언제나 사랑에 목이 말랐던 나는 실패하지 않을 다른 차원의 사랑의 삶을 선택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싶었다. 예수가 그러했듯, 모두를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자신을 바치고 싶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나는 나로 살지 않는 법을 배웠다. 나를 표현하며 타인에게 다가가는 것이 애초에 쉽지 않았던 사람이었기에, 모든 사람을 사랑하겠다는 명목하에 모든 이와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은 도리어 쉬웠다. 마음을 표현하면 이것이 혹 배타적인 친밀감을 낳을까 감추고 또 감추었다.


나를 지키기에 적당했던 그 거리에 안도하면서도 늘 외로웠다. 적당한 친절과 상냥함 속에 타인들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묻어두고 지내왔다. 때로는 나를 향한 고정된 시선에 답답했던 적도 있다. 나를 환영해 줄 고향을 잃어버린 느낌을 받았다. 그들의 편견에 내 책임을 묻지 않으련다. 그들이 한 경험, 이해, 판단, 그리고 결정의 몫이니 그들의 땅을 떠나고 싶다. 나 스스로 존재하며 표현하지 못했던 그 시절의 미성숙함을 단죄하지는 않으련다. 성숙하기 위해 통과해야 할 나의 역사였을 뿐이다. 나를 열지 못했고 또 나를 안아 주지 못했던 땅을 떠난 것이 실패를 뜻하지 않는다. 나는 나로 선다. 나를 그들에게 보인다. 나에 대한 경험, 이해, 판단 그리고 선택을 당신들 앞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당당하게 그 땅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난다. 그 좁고 작은 땅이 내 역사를 지배하지 않는다. 옛 것을 벗어던지고 새것을 향해 나아가니, 약속의 땅에 도달하리란 생각에 가슴 흐뭇하다. 나는 이처럼 자유로이 존재한다. 내 본질을 감출 까닭이 없다.


아름다운 생명은 사랑을 낳는다. 그 본질은 사라지지 않는다. 좋은 땅에 뿌리를 내려 풍성한 열매를 맺어 수확철에 우리 함께 축제를 즐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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