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2주간 토요일] 함께하는 잔치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루카 15,32)

by 어엿봄

숨죽여 살았다. 나는 열심히 일하며 당신의 뜻을 거스르지 않았다. 불평하지 않았다. 최대한의 순종, 아니 복종으로 나는 내 자리를 지켜왔다. 내 힘을 다 쏟아버려 다리가 후들거려도 티 내지 않았다. 끝내 주어진 일을 모두 마치고는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신의 인정을 받지 못할 것이며, 내게 돌아올 몫이 없으리라 믿었다. 내게 당신은 자비가 아닌 권위의 상징이었다. 한 번도 내 의무를 종용하는 그 권위의 목소리에서 자유로웠던 적이 없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루카 15,29-32)


늘 큰 아들에 더 감정 이입이 됐었다. 아버지 유산을 미리 당겨 받아 먼 고장으로 가서 술노름에 탕진하고 돼지를 치다 그것도 마땅치 않자, 그제야 아버지 집에서 누린 부귀영화가 그리워져 용서를 청해야겠다고 다짐한 작은 아들. 작은 아들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달려와 팔 벌려 그를 안아 주고 귀한 옷과 반지를 끼워주며 큰 잔치를 베푼다. 큰 아들이 얼마나 화가 났을지 충분히 이해됐다. 큰 아들은 잔치가 한창인 집에 들어가지 않고 토라진 채 밖에 서 있다. 우리의 이 자비로운 아버지는 뒤늦게 반항하는 큰 아들을 위해 잔치 자리를 떠나 집밖으로 나온다. 작은 아들을 발견하고 먼저 달려 나와 안아준 것처럼, 이번에도 아버지는 움직인다. 그리고 아들의 이야기를 그 숨겨진 마음을 듣는다.


큰 아들이 어찌하여 스스로를 아들이 아닌 종으로 규정하고 그렇게 살아왔는지 그의 개인사까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내면화한 아버지의 상은 실제 아버지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자신이 그려 넣은 그 아버지 밑에서 평생을 종처럼 일했고 한 번도 명을 어긴 적이 없었으니 늘 화를 품고 살았다. 그의 머릿속에서 울린 권위의 목소리는 항상 엄격했다. 그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규율을 벗어나지 말 것, 언제나 복종하는 종으로서 주인을 섬길 것을 요구해 왔다. 자유롭게 숨 쉴 시간과 공간은 스스로에게 허락되지 않는다. 만일 이 틀에서 벗어난다면 결코 아버지에게서 유산을 받지 못할 것이라며, 스스로를 옭아맸다.


내가 그랬다. 내가 그렇게 살아서 큰 아들에게 마음이 더 갔다. 주어지는 일엔 늘 최선을 다했다. 내가 완벽함을 추구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만큼 완벽에 대한 기준은 드높았다. 그러니 만족하는 대신 어떤 부분이 부족했는지 따지는 일이 우선이었다. 내겐 그 모든 게 너무 당연한 일이라, 내가 큰 힘을 쏟고 긴장하며 살고 있는 것도 알아채질 못했다. 그저 살아온 방식대로 나는 내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거나 아프게 하지 않고자 했다. 그런데 왜 자꾸 화가 났던 건지...

며칠 전 꿈에 나는 사람들 앞에서 말할 기회를 얻었는데, 일장 연설 끝에 "나는 자유를 원합니다. 자유는 구원입니다." 하고 외쳤다. 자유와 구원, 그 무엇으로부터 내가 억눌림 당하고 구속받고 있는 것일까. 나는 어쩌면 내 안에 울리는 권위적인 목소리의 그로부터 자유로워져 진정한 구원을 얻길 원하는지도 모르겠다. 종이 아니라 자녀로서 내가 받는 모든 것들을 마음껏 누리고 싶다.


화가 난 큰 아들은 아버지에게 동생을 가리켜 "당신 아들"이라 칭하지만, 아버지는 큰 아들을 "내 아들"이라고 불러주며 작은 아들을 "너의 동생"이라고 비뚤어진 그 관계들을 바로잡는다. 아버지의 것이 모두 나의 것이니, 나는 모든 것을 누릴 자격이 있다. 저 망나니 동생마저 나의 것이니 그를 받아들일 자격이 있다. 잃어버렸던 동생을 되찾았으니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없다.


빼꼼히 문을 열고 눈을 마주치는 동생을 보니, 저절로 눈물이 핑 돈다. "야 인마, 너 여기가 어디라고 다시 기어들어왔냐. 그 꼬락서니를 하고!" 욕을 해대며 동생을 퍽 치니, 그도 배시시 웃는다. 동생을 잃어버리고, 그에게 미리 유산까지 떼줬던 아버지까지 잃어버렸던 지난 세월 간 참 팍팍하게 살아왔다. 사실 큰 아들은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언제든 청하기만 하면 들어줄 준비가 되어있었는데 말이다. 모든 것을 함께 누릴 자격이 있음을 그는 깨닫지 못했다.


참 이상하다. 화를 툭 내고 나니 속상했던 마음이 조금 가시는 듯하다. 동생 머리를 한 번 더 쥐어박는다. 아버지에게도 투정을 부린다. 이제는 자신의 엄격한 틀에 갇혀 아파도 울지 못하고 분노가 쌓여도 터트리지 못했던 아이의 목소리를 듣는다. 오늘 되찾은 것은 나의 동생만이 아니다. 나 스스로를 되찾는다. 갇혀 있던 틀을 깨부수니 이것이 바로 구원이고 자유다. 아버지에게 나는 다시 살아났고 그는 나를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오늘, 우리 모두에게는 즐기고 기뻐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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