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2주간 금요일] 당신 몫의 소출

포도 철이 가까워지자 (마태 21,34)

by 어엿봄

뜨거운 여름 밭의 포도들이 영글었다. 탐스럽게 한 알 한 알 꽉 찬 포도들을 보자니 흐뭇하다. 올해 농사가 아주 잘 됐다. 이렇게 또 한 해를 무사히 넘기는구나. 포도넝쿨 아래서 잠시 해를 피하며 한숨을 돌린다. 여기, 인생의 행복이 있다. 이제 수확철이 되었으니 밭주인에게 소출을 바칠 때다. 감사한 마음이다.


어떤 밭 임자가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포도 철이 가까워지자 그는 자기 몫의 소출을 받아 오라고 소작인들에게 종들을 보냈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들을 매질하고 돌 던져 죽이기까지 한다. 더 많은 종들을 보내도 마찬가지다. 결국 주인은 자기 아들은 존중을 해주리라 기대하고 아들을 보냈으나 그들은 그를 죽였다. 주인은 소출을 낼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이다. (마태 21,33-43 참조)


주인은 땀 흘려 일했다. 정성스레 일군 포도밭을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그는 멀리 떠났다. 그의 정성과 땀이 포도밭에 스며들어있었다. 좋은 밭을 내준 주인은 소작인들에게 소출을 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오늘 비유에서 소작인들은 주인에게 정당한 값을 치르지 않고, 상상 못 할 폭력과 살인으로 그를 대한다. 주인의 사랑하는 아들의 목숨까지 빼앗다니 주인이 좋은 땅을 가꾸고 내어준 까닭에 받은 고통은 그의 하늘을 무너지게 한다. 소작인들은 날카롭게 신경을 세우고 포도밭의 울타리를 지켰다. 자신들이 농사를 지었으니 그를 통해 얻은 모든 소출은 자기 몫이다. 주인의 공과 따윈 잊어버린 지 오래다. 주렁주렁 열린 포도들을 보니 자신들이 갖게 될 부에 대한 집착만 더 커진다. 그들의 웃음은 그저 탐욕의 표현에 불과하지 않는다. 한치도 내어줄 마음 없던 그들의 끝은 결국 패망이다. 포도 한 알의 단맛도 느끼지 못하게 되리라. 땅과 하늘은 이제 그들에게서 등을 돌린다.


좋은 땅을 받았다. 주님은 "나"라는 밭을 당신 손으로 직접 일구셨다. 자라날 포도들에 대한 그분의 설렘과 희망이 땅속에 스며들었다. 내가 드릴 소출은 "기쁨과 감사"다. 내가 누리는 이 모든 것에 그저 기쁘고 감사하다. 기쁨과 감사에 나는 문을 활짝 연다. 지나가는 아이들이 마음껏 놀고 포도를 따 먹을 수 있도록 그들을 반긴다. 아이들의 함성이 무너진 하늘을 다시 일으켰으면 좋겠다. 애초에 온전한 내 포도밭은 없었다. 다만 밭에서 수확한 기쁨과 감사는 나만의 것이다. 나만이 드릴 수 있는 찬미의 노래다. 포도가 참 달다. 포도가 달아 기쁘고 내 인생도 달아 기쁘니, 이보다 더 감사한 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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